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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Apr 28. 2020

제니, 캐나다로 다시 안올거야?

#1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새로운 회사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않아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여러가지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 임시 중단 되었다.

연 휴가를 자유롭게 많이 쓸 수 있는 복지를 갖춘 좋은 회사에 들어온 덕분에, 캐나다에 한달정도 다녀올 계획을 했었지만 그것 역시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임시 중단이다.


#2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이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들은 캐나다에 다시오라며 여러가지 방법들을 알려주기도 했고 내가 캐나다에서 많은 투자를 했던 그 시간과 가치를 생각해서 다시 캐나다에 오는 방향도 꼭한번 고려해 보라고 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처음 영어공부+테솔수료를 목표로 갔을 때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책에서든 강의에서든 "인생에서 무언가에 미쳐 최선을 다 해 본적 있는가? 가장 큰 노력을 쏟아부었던 적이 있는가?" 라는 말을 들었을 땐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 오랜만에 열정이란게 또 찾아왔고 다시 캐나다로 떠났다.

스스로 무언가에 미쳐 그것을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졸업을하고 취업을 했던 바로 그 순간이라고 이젠 답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내게 그랬다.


"제니 나 아직도 기억나. 너에겐 영어가 제2외국어고 전공도 다른 분야로 와서 힘든 순간 많았을텐데 항상 학교에서 머리 쥐어짜며 열심히 하던 그 모습 하하. 너 투자한게 이렇게 많은데 캐나다 다시 오는것도 한번 생각해봐!”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고 아련한(?) 감정이 드는 순간이다.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어떤 집에선 매번 내방에 쥐가 나와 맘고생했던 적도 있고 다른 집에선 극심한 잔소리와 집주인과의 트러블, 어떤집에선 바퀴벌레가 득실득실, 그렇게 맘고생하며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혼자 계약을 하고 이사를 여러번 하며 땀흘리며 짐을 낑낑대며 옮기던, 침구와 여러 집안용품들을 사러 급히 뛰어가던 그런 순간순간들.


우여곡절끝에 입학과 동시에 학교앞으로 이사를 갔고 다운타운이나 놀거리나 먹거리가 많은 곳에선 멀어졌지만 덕분에 학교에 자주 가게됐고 학교친구들과 가장 많은 추억을 쌓게 됐다.


영어권에서 온 친구들, 석사까지 다 마치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했고 매번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과제도 하며 추억을 쌓았다.

눈폭풍이 올때마다 부츠가 푹푹 빠지는 집에서 학교로 가는 공원에 있는 지름길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가족같은 친구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동기부여가 되어 졸업하고 좀 쉴법도 한데 졸업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아니 그전부터 시간날때마다 취업준비에 또 달리기 시작했다.


비자 기간은 얼마 남지않았고 생활비는 다 써가고 점점 초조해 지는 마음으로 매일 열심히 이력서를 수정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루 두세곳 면접을 본적도 있고 외곽으로 왕복 다섯시간이 걸려 면접을 보러 다녀온 적도 있었다.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해와서 취업준비를 하는 기간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렇지않았기에 장기알바는 취업하면 그만둘거기 때문에 단기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마트 시식알바, 고객상담, 데이터입력알바, 꽃집알바 등 짧지만 틈틈히 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결국 영국계 이벤트 마케팅 회사에 취업해서 캐나다 내에서 출장도 다니며 토론토, 밴쿠버, 캘거리에 많은 다양한 이벤트를 주최하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슴뛰는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항상 영감을 주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건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학교공부부터 여러가지 영향을 끼친게 있었지만 정말 열심히 살고 항상 격려해주던 친구들 덕분에 나는 생각도 안해봤던 취업준비를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영주권준비란 것도 했었다.


힘든 시간들이 많았는데도 그땐 매일 아침 "행복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었다.


학교다닐땐 매일 시험과 과제에 치여 힘들었고, 취업해서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일 적응과 동시에 방 계약부터 계속 오르는 렌트비에 식비에 생활비 아끼자고 거의 매일 요리해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끝이없는 집안일에 장보는건 또뭐그리 무거운지 낑낑대며 오다가 쉬다가 또 다시 걷길 반복이었고 은행이나 비자업무에 게다가 영주권준비까지 겹쳐 여러가지 신경써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었는데도 그땐 참 정신이 맑았고 마음이 편했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꿈’과 ‘희망’이 커졌다.


캐나다는 내게 처음으로 많은 기회를 주었고 캐나다에선 하고싶은게 많아졌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나를 위한 삶을 진짜 나로서 내가 되어 살아갔었다.

매일 맑은 하늘과 공기에 감탄했고 어딜가든 아름답고 평화로운 캐나다의 모습과 자유롭고 밝은 사람들 그리고 누구든 차별없이 존중해주는 그런 모습들 워라밸이 존중되어 가족적인 문화가 자리잡혀있던 것들까지 그 속에 속해있다는 것에 매일 감사했다.


자유롭기도했고 편하고 좋은사람들과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내가원하는 즐거운 시간을 웃으며 나답게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됐고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항상 마음이 편했으며 밝아졌다.


그냥 매일 편한 티셔츠에 부츠를 신고 배낭을 맨 채 어디든 바쁘게 다녔고 스스로 해쳐나가야 할 일이 많았던 만큼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와동시에 책임감과 성취감은 물론 나 자신이 발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힘든 순간이었지만 고생했던 때 마저 모두 추억이 미화된건지 그저 그립기만 한 캐나다.


다시 캐나다에 살러 간다는 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할 일이 되어버렸지만, 언제든 고생끝에 낙이온다는 말이 있듯 그때를 떠올리며 웃고 있는 걸 보니, 그래도 나 캐나다에서 잘 살았고 지금도 나 잘 하고 있는거겠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마트 시식 단기알바를 하면서 생각했던 그때 느꼈던 마음가짐.


“하루종일 서서 고기굽는거 만만치않네. 아 진짜 힘드네.

그치만 외국인들한테 맛있는 한국고기를 선사하고 가끔 애기들이 와서 감동적인 말도 해주니 얼마나 근사한 경험이겠어!

그리고 여기 일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잘해주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야.

지금 힘들지만 좋게생각하고 즐기자.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내게 더 좋은일이 다가올거는 확실하니까! 나를 믿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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