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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Dec 09. 2024

나의 바퀴벌레 탈출기

Stories: Pastel Tones


Stories: Pastel Tones
나의 바퀴벌레 탈출기



유니콘과 요정, 신비한 동화 속 세계. 우리에게 파스텔컬러는 그저 단순한 색이 아니다. 언제나 동경해오던 환상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색이다. 이런 파스텔컬러와 함께하는 겨울이라면 매서운 한파도 전혀 두렵지 않을 것!




순수한 색에 빛 한 방울 추가


순수한 색, 즉 원색의 계열이 강렬한 생동감을 준다면 파스텔 컬러는 이와는 정반대. 화이트 한 방울 만으로도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음에 매번 감탄할 따름이다. 덕분에 이 소중한 컬러는 패션에서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다. 때로는 로맨틱하게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천진한 느낌으로의 변신도 문제없으니.


색감 맛집으로 소문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6) ⓒpinterest


하지만 되려 이러한 느낌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스한 봄이 되어서야 파스텔 컬러를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겨울 내내 걸쳤던 어둡고 두툼하고 묵직한 아우터들을 훌훌 벗고, 화사한 이너를 뽐낼 수 있는 순간이 드디어 왔다며 신나 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 해묵은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한 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밈이 있다. 지하철 역사와 거리에 모인 인파들이 모두 짠 것처럼 검은 아우터를 입고 있는 모습이 찍힌, 그 문제의 사진 말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국민에겐 세계에서 블랙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란 칭호와 동시에 바퀴벌레란 웃픈 별명이 붙었다. 물론 블랙이 가진 압도적인 실용성과 친화력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겨울 패션이 고프지 않는가? 그렇다면 답은 파스텔컬러에 있다.


RICK OWENS(25SS)의 블랙. 어쨌든 블랙에겐 죄가 없다. ⓒcollectibledry.com





바퀴벌레 탈출기



조금 화사해져도 되지 않을까


겨울 + 파스텔컬러의 조합이란 이런 것이다. 올해 FW 시즌 AURALEE와 DRIES VAN NOTEN은 은은한 빛깔의 낭만을 고스란히 담아낸 컬렉션을 선보인다. 단언컨대 파스텔 톤을 활용한 겨울 코디의 바이블로 여겨도 충분할만큼 알찬 구성.

먼저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담아낸 DRIES VAN NOTEN의 컬렉션을 살펴보자. 선두에 나선 파스텔 핑크와 옐로빛이 살짝 가미된 민트의 조합은 우리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고 남을만큼 조화롭다. 또한 퍼 재질에 아우터에 보다 따스한 느낌을 주는 킥으로 파스텔컬러를 가미하는데, 소재에서 오는 강렬하고 묵직한 느낌은 반감됨과 동시에 포근하고 편안한 무드는 배가 된다.


DRIES VAN NOTEN 24FW ⓒvogue.com


무채색과의 만남 역시 환영이다. 화사한 아이템들이 본연의 색감으로 온전히 빛나게 해주면서도 블랙과 그레이 등으로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춘, 절제된 원터룩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DRIES VAN NOTEN 24FW ⓒvogue.com


AURALEE는 어떨까. 싱그러운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컬러 팔레트를 기본으로, 살짝 빛바랜 민트를 키컬러로 배치한 그들의 컬렉션. 옐로 베이스의 카멜을 적재적소에 첨가해 내추럴한 느낌을 살리면서 파스텔 컬러 이너와 액세서리를 더해 지루하지 않은 코디를 이어간다.


AURALEE 24FW ⓒauralee.jp, ⓒvogue.com


무엇보다 감탄했던 건 파스텔 퍼플의 등장이다. 그 다루기 어렵다는 퍼플의 채도를 완벽히 조절하여 아우터와 셔츠로, 이에 화룡점정으로 베이비 핑크를 얹어주니 진귀한 겨울 룩이 탄생했다.


AURALEE 24FW ⓒvogue.com


파스텔컬러 아우터에 관심이 간다면 눈여겨 보아야 할 조합들은 이 외에도 한가득이다. BOTTEGA VENETA의 스카이 블루 코트와 MIU MIU의 재킷처럼 말이다. 특히 MIU MIU는 재킷은 물론, 이너와 글러브까지 다채로운 색감으로 마음껏 배치해 버리고서는 결국 블랙 슈즈로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어준다. 세상에. 나무랄 데가 없다.


BOTTEGA VENETA 24FW
MIU MIU 24FW
Stella McCartney 24FW ⓒvogue.com



얼굴에 조명판 효과 주기


하지만 옷장에 가득한 무채색의 아우터들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 그래도 방법은 있다. 니트나 셔츠 등 파스텔 계열의 이너 웨어를 선택해 보는 것. 접근도 쉽고 마치 얼굴에 조명판을 댄 듯한 효과까지 덤으로 챙겨가니 무조건 시도해야 한다. 게다가 아우터를 벗었을 때 반전의 무드까지 연출할 수 있음을 계산하면... 흠,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LOEWE 24FW
PRADA 24FW, Kiko Kostadinov 24FW ⓒvogue.com


게다가 데님과의 궁합도 찰떡이다. 데님과 파스텔 블루의 넘치는 케미를 보여준 Hed Mayner의 착장처럼 말이다. 자칫하면 냉랭해 보일 수 있는 데님 컬러의 한기를 따스한 색감으로 중화시키는 게 인상적.


Hed Mayner 25SS ⓒwwd.com


보다 우아한 분위기가 추구미라면 색감이 있는 컬러보단 한층 더 차분하고 깊은 크림 컬러를 추천한다. 발랄한 옐로우 톤의 베이스를 가져가면서 부담스러운 채도는 한껏 낮춘 게 포인트. 어떤 피부톤이나 어울리는 건 당연한 데다 어떤 컬러와 매칭해도 어긋나질 않으니 안전성은 보장된 아이템이다.


Sandy Liang 24FW, Elie Saab 24FW
Maison Mihara Yasuhiro 25SS ⓒvogue.com



연말 파티 룩을 고민 중이라면


아무리 파티라도 꾸꾸꾸룩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어떤 자리에서도 주목을 잃지 않으면서 은근히 멋을 낸 듯한 코디가 필요하다면, 드레시한 느낌의 파스텔컬러 룩을 주시할 것.

요새 한창 노를 젓는 중인 Chloé의 보헤미안 무드.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이 아름다운 드레스가 은은한 살구빛의 컬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이토록 아련한 느낌을 이처럼 완성도 있게 재현할 수 있었을까? 나아가 피치 플러스 브라운의 포텐을 여실히 보여주는 룩이기기도 하다.


Chloé 24FW ⓒvogue.com


페미닌함의 정석인 Simone Rocha와 Cecilie Bahnsen의 런웨이 역시 연말 파티룩에 신선한 영감을 줄 것이다. 실크나 메쉬 등 겨울엔 도통 손이 가질 않는 소재들을 어떻게 하면 겨울 아이템과 산뜻하게 매칭할 수 있을지 안내하는 좋은 지침서.


Simone Rocha 24FW
Cecilie Bahnsen 24FW ⓒvogue.com


이러한 아웃핏의 장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티룩의 공식을 꺠는,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실루엣에 죽고 사는 이들이라면 아마 이러한 코디를 지나칠 수 없을 듯. 실외에선 두툼한 외투로 무장태세에 돌입했다가 따스한 실내에 도착하면 전혀 다른 무드로 변신하는 게 참으로 영리한 패션 공략이다.


Holzweiler 24FW ⓒvogue.com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마지막으로 룩의 정점. 액세서리의 차례다. 이 지점에서 파스텔컬러는 아주 강력한 마력을 지니게 되는데, 바로 스카프나 가방, 모자 등 어떤 아이템이던 착용하는 이를 러블리하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다.


Louis Vuitton 24FW ⓒvogue.com


포멀한 카멜 스웨이드 재킷에 레몬빛 스카프로 포인트를 준 GUCCI의 룩이나 클래식한 무드에 파스텔컬러의 백과 글러브로 낭만을 입히는 CHANEL처럼, 작지만 큰 역할을 해내는 게 바로 액세서리의 맛이다. 착장이 눈에 띄지 않아도 얼마든지 존재감 있는 코디가 가능함을 톡톡히 증명해 낸 셈.


GUCCI 25SS
CHANEL 24FW ⓒvogue.com


파스텔 블루가 머금은 하늘빛의 잔재, 방긋 웃는 아이의 복숭아 색 두 뺨, 수많은 집사들을 홀리는 고양이의 밀키한 핑크 젤리 발바닥. 이처럼 파스텔컬러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그런가. 파스텔컬러와 함께라면 차디찬 일상도 금세 포근한 꿈결처럼 다가올 것만 같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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