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모든 공격이 막힙니다. 공격이 막히니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뒤로 밀리면 밀릴수록 불안해져서 어쩔 수 없이 쫓아오는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입니다."
감독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모든 공격을 다 막아내진 못한다. 왜 너의 공격이 막히는지 한 번 고민해봐라."
보통 펜서들은 좌우를 흔들고 들어가는데 반해 나는 상하 콤비네이션을 자주 쓴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를 번갈이 찌른다. 대부분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가는데 상대가 나의 검을 쫓아 팔을 아래로 내리면 손목을 시계 방향으로 틀어 어깨를 찌른다. 상대가 너무 오른쪽 방어에 신경을 쓴다 싶으면 가끔씩 왼쪽 가슴이나 명치를 기습적으로 노리기도 한다.
이론적으론 완벽한 패턴이다. 상하 콤비네이션에 좌우 페인팅까지 섞으면 말 그대로 동서남북을 다 둘러싼 형국이다. 그런데 모조리 막힌다. 이렇게 해도 막히고 저렇게 해도 막힌다. 공격이 깊어 균형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반격을 당한다. 공격이 얕으면 상대는 거짓임을 금방 파악하고 죽어라 쫓아온다. 기세 좋게 시작을 하지만 어느샌가 흐름은 상대에게 넘어가 있다. 상대의 공격 패턴은 뻔하다. 냉정하게 보면 다 막을 수 있는 공격들이다. 하지만 쫓기는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상대의 공격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비바람이 심한 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위태위태한 나의 시합을 바라보던 감독님은 나를 불렀다.
"상대가 공격할 때 버릇을 찾아냈나?"
"네."
"상대가 방어할 때 버릇을 찾아냈나?"
"네."
"그러면 공격을 할 때 너의 버릇은 찾아냈나?"
"네?"
감독님은 검을 들어 나를 겨냥했다.
"펜싱은 둘이서 하는 게임이야. 남의 것만 보면 안 되지. 지금 자네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어. 근데 그걸 자네가 몰라. 바로 이게 그 문제야."
감독님은 검을 가볍게 돌리며 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다. 내가 자주 쓰는 기술이었다.
"자네는 할 게 없으면 이걸 해."
아차 싶었다.
"자네는 할 게 없으면 발을 질질 끌면서 시간을 끌다가 무조건 이걸 하는 거야. 자네가 기술을 골라 쓰는 것 같지? 아니야, 자네는 이 기술 하나밖에 없어. 나머지는 전부 다 운이야. 그냥 우연히 얻어걸리는 거라고."
감독님은 나의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를 번갈아 겨냥하며 검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오른쪽을 찌르고 싶으면 왼쪽을 봐야 돼.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흔들어 놓고 서쪽을 쳐야 되는데, 자네는 그게 불안한 거야. 오른쪽을 찌르고 싶은데 검이 왼쪽에 있으면 멀잖아. 그러니까 불안한 거야. 그래서 검을 오른쪽에 놓고 위, 아래로만 까딱거리고 있으니까 어디를 찌를지가 뻔하다는 거지. 자네는 무조건 아래로 와. 그렇다면 상대는 어떻게 할 것 같나?"
"아래를 막을 것입니다."
"그렇지, 아래로 올 걸 아니까 아래를 막겠지. 그러면 자네는 방향을 틀어서 위를 찌르는데 그게 들어가는 건 순전히 운이라는 거지. 상대가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아래를 막는 척하다 위를 막을 거야. 그러면 자네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오른쪽 아래, 그게 막히면 자네는 끝인 거야."
혼란스러웠다. 내가 몇 년을 노력해서 만들어낸 기술인데 그게 나의 약점이라니.
"자신만의 기술은, 그러니까 필살기는 그것조차 계산에 넣어야 하는 거야. 상대가 막든, 막는 척 하든 그것마저 뚫어낼 순발력을 갖춰야 필살기가 되는 거야. 대충 던져 놓고 휙휙 돌리는 건 누구나 다 해. 그게 통하는 상대는 자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뿐이야. 그런 상대한텐 그 기술 안 써도 이겨."
감독님은 검을 들어 명치를 겨냥했다.
"펜싱은 일단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해. 남을 백 번 연구해봐야 그건 절반밖에 안돼. 내가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버릇이 나오는지, 어떤 상대를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를 알아야 해. 펜싱은 늘 고민해야 해. 그래야 늘어."
감독님은 검을 뻗어 가볍게 명치를 찔렀다.
"그게 쌓이면 그냥 꾹 찔러도 이길 수 있어."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걷을 수 있게 된 지 몇 년이나 되었느냐고. 나는 걷게 된 지 36년이 되었다고 답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6년이나 걸었으니 이제 당신은 걷기의 전문가겠네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