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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Nov 01. 2024

웃지 않는 여자

나는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빌런이다.

"사람 좋게 생겼네."


흔히들 말한다.


'관상은 과학이라며.'


관상은 오랜 세월 축적된 일종의 빅 데이터일 것이다.

관상이라는 빅 데이터 따라 우리는 종종 생긴 대로 논다거나 어떠어떠하게 생겼다고 말하곤 한다.

관상이 맞는 경우, 거 보라며 관상은 역시 과학이라고 자신 있게 재차 말한다.

물론 틀리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또 할 말이 있다.

생긴 것관 다르네, 특이한 경우라며 굉장히 의외라는 말을 한다.

사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말이다.


관상.

사람의 생김새로 운명, 성격 등을 파악하는 일을 뜻한다.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얼굴로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다.

바람기가 다분하게 생겼다거나, 인상이 선하다거나, 피도 눈물도 없게 생겼다거나.

어떤 식으로 생겼다는 말은 참 많기도 하다.


그런 말 중에 사람 좋게 생겼다는 말은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된다.

링컨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말과 함께.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마흔이 넘으면서 이마 주름이 부쩍 늘어 거울을 자주 보게 되었다.

어쩌다 휴대폰 갤러리를 정리하거나 혹은 구글 타임 라인 알림에서 몇 년 전 사진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몇 년 더 젊은 내 모습과 거울에 비친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젊음이 주는 싱그러움과 보기 좋게 빵빵한 볼은 어디 가고 자글자글해진 이마 주름과 푹 꺼진 눈 밑이 나이를 실감 캐한다.

주름은 언제 이만큼이나 생겼고, 얼굴 피부는 왜 이렇게 계속 처지나, 피부과라도 가봐야 하나 생각하다가...

표정이라곤 사라진 차가운 얼굴을 마주한다.


젊거나 늙거나 예쁘거나 안 예쁘거나와 관계없이 너무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다.

'살벌한' 인상은 아니지만, 다소 '냉담한' 혹은 '차가운' 얼굴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왠지 지난 세월이 후회되는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


거울을 보며 억지로 한 번 웃어 본다.

내가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웃는 얼굴은 어색하고, 근육도 잘 안 써진다. 입가가 부들부들 떨린다.

입꼬리가 떨릴 만큼 웃어 본 적이 없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얼마나 안 웃고 살면 이럴까 생각하니 착잡하다.  


피부나 주름이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이는 계속 먹을 것이고, 노화는 이제 시작일 뿐, 어차피 점점 더 안 좋아질 일만 남았다.

의학으로 조금 더 팽팽하고 주름이 조금 덜 생길 순 있어도, 결국에는 점점 더 자글자글해질 것 아닌가.


간혹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나이가 많은데도 웃는 모습이 아이처럼 티 없이 맑은 분들이 있다.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천진하다.

엄마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고단한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삶의 굴곡보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웃는 모습의 천진함을 결정하는 것 같다.

삶이 쉽다고 천진해지는 것도 아니며, 삶이 어렵다고 천진해지지 못할 일도 아니다.

주어진 인생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역시나 삶의 태도에 웃음과 천진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분들은 나이나 생김과 관계없이 얼굴이 맑아 보이고 웃음이 깨끗하다.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에도 환하고 투명한 웃음이 어울린다면 그게 멋진 얼굴이지 않을까.

내가 책임지고 싶은 얼굴은 그런 얼굴이다.

고달프고 힘든 삶이지만, 소녀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엄마 같은 얼굴.

나는 그런 웃음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던가... 고민해 보지만.

의문과 동시에 답을 떠올리고 만다.


'아니요.'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 어쩐지 살짝 화도 나 있는 것 같은 얼굴.

내가 책임져야 할 얼굴을 마주하니, 망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심술보에 그득한 심술과 싸늘한 눈빛, 주인공보다는 빌런에 어울리는 표정이고 얼굴이다.


나는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빌런이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빌런에 어울리는 표정이다.

어떤 근육이나 많이 사용할수록 그 근육의 힘이 점점 더 커진다.

얼굴 근육도 마찬가지다.

내 얼굴 근육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인상 쓰는 부분은 쉽게 쉽게 힘이 들어가지는데, 입꼬리는 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복근 운동을 할 때처럼 안쓰러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린다.

내 얼굴이 습득한 근육의 움직임이란 대체로 온기가 없는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다.


책임을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미숙한 어른에서 벗어나 제대로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로 이전 책에서 말해놓지 않았나.


이미 습득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상쇄할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훈련해야겠다.

그냥 마음먹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라, 특별히 강도 높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만들고 싶은 얼굴은 주름이 가득해도 웃는 게 멋진 얼굴이다.


나는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고, 비록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빌런이더라도, 멋진 빌런이 되고 싶다.


잘생기고 착한 영웅 주인공에게 총 맞아 죽는 그냥 그런 뻔한 빌런 말고,

한 장면 정도는 멋지게 씬을 스틸할 수 있는, 씬 스틸러.

빌런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간지 나는 빌런이 되고 싶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쿠루지도 심술궂은 스쿠루지에서 개과천선하지 않았는가.

마흔에 와서 이미 이렇게 얼굴 표정이 굳어져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 한 40년쯤 웃는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면, 80대가 되어서는 웃는 게 멋진 얼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가서 어르신 인상이 참 좋으세요, 그런 말을 들을지도.

그것은 모를 일이다.


인간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변화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변화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쯤은 고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상 전부는 아니더라도, 웃는 표정 정도는.


거울 보며 연습을 하다 보니, 주름이 자꾸 보인다.

아아...

피부 관리도 아예 손을 놓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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