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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Nov 29. 2022

무르다시(Murdash) 마을에서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6

    1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     

 

  키졸 쿠르간(Kizöl-kurgan)을 지나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동네의 경사면에 자리한 아이잣의 외할아버지 집은 목조주택의 본관과 황토와 돌로 쌓아 올린 사랑채 그리고 헛간과 창고가 있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 형태의 가옥이었다. 

  집 앞의 뜰에는 접시꽃, 장미, 샐비어, 금잔화, 산나리, 제라늄과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앞마당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사촌 오빠와 그의 어린 아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윤 선생이 알려준 대로 우리는 “살람 알레쿰”이라고 이슬람 방식으로 인사를 드렸다. 

  갈색 피부에, 순박한 얼굴을 한 아이잣의 외할아버지와 친숙한 표정의 외할머니는 마치 나의 옛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연상시켰다. 아이잣과 사촌오빠는 집과 정원을 우리에게 안내해주었다. 여러 칸의 방으로 이루어진 집의 내부에는 복도와 방, 벽까지 카펫으로 둘러쳐지거나 깔려 있었다. 앞마당을 지나 과수밭에는 자두, 살구, 사과나무들이 가득 열매를 매단 채 있었고 목책으로 둘러싸인 텃밭에는 감자가 심겨 있다.

집에서 바라본 앞산

  앞을 바라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멀리에는 가파르고 높은 산이 시야에 가득 차오른다. 앞산에는 산 구릉을 타고 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집 뒤는 멋진 돌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생김새와 색감이 생경한 아름다운 산들…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는 구절이 떠오른다. 파미르의 산군(山群)에 둘러싸인 이 마을이야말로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이 아닐까?

집 뒤의 뒷산

  아직 오전 11시이지만 만찬이 차려져 있다. 바나나, 포도, 사과, 자두와 같은 과일에서부터 호두, 캐슈너트의 견과류 그리고 비스킷, 초콜릿, 사탕과 빵과 삼사(만두), 고깃국까지 진수성찬이다. 마치 잔칫상 같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오랜 전통 중 하나는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손님은 신이 보낸 사람’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이란 그 먼 거리에서 날아와 첩첩산중의 산골 마을에서 서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참을 배부르게 먹은 뒤, 집 앞 정원으로 나섰다. 호두 알만한 아직은 덜 익은 풋사과, 붉은 자두, 여러 종류의 살구들… 우리는 과일마다 맛을 보았다. 그중에서 살구는 특히 맛이 달고 향기롭다. 한국에서 먹었던 살구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마치 잘 익은 자두 같은 맛이 난다. 햇빛과 온도 습도, 토질과 공기가 다른 환경에서 무디게 자란 살구는 파미르의 향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상큼하면서도 당도가 높은 살구를 반으로 갈라서 먹으며 잠시 생각한다. ‘살구와 자두나무들이 가득한 이 마을, 봄이 되어 그 꽃들이 필 때면 어떤 경치일까? 하고…’ 

  집 앞 정원에는 지붕이 씌워져 있는 높은 들마루가 하나 있다. 한국의 정자와 들마루의 기능을 합친 것 같은 그곳에도 카펫이 깔려 있고 베개와 쿠션이 놓여 있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먼 산들을 바라보았다. 종일토록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알라이(Alay) 계곡에서 산책을     


  우리는 아이잣의 외할아버지가 운전하는, 낡은 아우디 승용차를 타고 인근 계곡으로 산책하러 갔다. 뜨거운 대낮의 열기가 느껴진다. 집 뒤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지나자 맑은 물이 소리치며 흐르고, 계곡 양쪽으로는 산이 펼쳐져 있다. 햇볕은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작은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가파른 산자락 아래에는 호두나무 외에도 이름 모르는 작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 야생 베리 종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우윳빛 계곡물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가파른 돌산 아래의 능선에는 키 작은 관목들과 풀이 자라고 산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계곡 사이로 푸른 숲이 이어져 있다.

  일행이 폭포가 있다는 알라이 계곡의 고갯길로 가는 동안 아이잣의 외할아버지와 나는 그늘에 자동차용 카펫을 깔고 앉아 쉬었다. 역사 선생님이셨다던 외할아버지와 원만한 의사소통은 힘들다.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몸짓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더우니 그늘로 오라.” “카펫 위에 앉아라.” “고맙습니다. 이곳 경치가 좋아요.” 이런 메시지였다. 

  돌산 아래의 그늘은 마치 초가을의 날씨처럼 서늘하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향기가 난다. 아는 내음 같기도 한 향기는 머리를 맑게 한다. 박하 향 같기도 하고, 고수 향 같기도 한 그 내음은 아마 계곡의 햇빛과 물, 토양이 만들어낸 자연의 향수일 것이다.

  계곡의 냇물을 따라 한참 걷자. 햇볕이 환하게 비치는 산 능선 아래 두어 채의 집이 보인다. 축사가 있는 것을 보니 가축을 기르는 전형적인 유목민의 집일 것이다. 집 근처에는 꺽다리 백양나무가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들꽃이 만발한 계곡 옆의 바위에는 이름 모르는 달팽이가 살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에는 도롱뇽 알이 돌들에 붙어 있다.

산 밑의 농가

  산책을 마친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무르다시, 이곳은 아이잣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아이잣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서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입학한 뒤 2년 동안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 적이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적적하니, 손자 하나를 보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형제 중 넷째인 내가 선발(?)되어 천등산 다릿재 밑 오지 마을에서 외로이 보낸 것이다. 

  친구가 없어서 어린 새와 여치를 키우고 숲과 들길을 돌아다녔었다. 등교할 때면 늘 구름이 걸쳐 있는 산 너머를 바라보고 걸었다. 먼 산을 보고 걷다 보니, 자주 넘어져 무르팍이 성할 날이 없었다. 어릴 적 나의 이 버릇은 산 너머의 세계가 늘 그립고 궁금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런 호기심이 나를 이곳 파미르 고원의 산자락에까지 이끈 것 아닐까? 어릴 적의 ‘동경과 그리움’이란 낭만주의적 기질은 이후에 나를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한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여전한 현실과 일상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 세상 밖의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나의 정신적 편력은 이때쯤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르다시의 학교 건물

  아이잣이 부모와 떨어져 무르다시에서 학교에 다녔다는 말에 마음이 저려온다. 그녀에게 묻지 않았지만 아마 그녀도 나처럼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곳의 풍습에 의하면 친척은 친가와 외가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계 가문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오히려 모계 쪽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해, 외가가 오히려 친가보다 친밀하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과 교감하며 자라서인지 아이잣은 늘 선하고 밝다. 아마 순박하고 정이 많은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을 것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임에도 그녀가 대학까지 졸업했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고 다행한 일이다. 아이잣은 우리 일행을 안내하느라 입술이 다 부르텄음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녀는 이곳의 산과 들, 나무와 꽃을 닮은 것 같다.   

       

    봄이 되면 다시 오고 싶은     


  잠깐 들마루에서 쉬고 난 다음 우리는 마을을 구경하러 나섰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냇물 덕인지 수목이 푸르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따라가자 1층으로 된 소담한 학교 건물이 보이고 철망이 쳐진 작은 구장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더 걷자 소담한 이슬람 사원 앞에는 2차 대전에 순직한 무명용사들의 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리스칸 타워’라고 써진 작은 종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윤 선생님이 뒷산에 가보자고 제안한다. 그곳에는 작은 폭포도 있다고 아이잣이 말해준다. 우리 일행은 마을 집들의 앞마당과 텃밭 사이의 길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이잣의 친척이라는 아주머니가 일행을 반기며 그냥 가서는 안 된다며 빵과 치즈를 내왔다.

  검붉은 암석과 회갈색 봉우리가 두드러진 뒷산은 가까이 다가서자 오밀조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계곡을 따라 소리치며 흐르는 맑은 시냇물 가에는 버드나무도 몇 그루 보이고 산자락 아래의 능선은 개간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능선에는 이곳에서 자주 보았던 노블야로우, 가시엉겅퀴, 분홍바늘꽃 외에도 하얗게 꽃을 피운 키 큰 접시꽃들이 보인다. 멀리 바라보니 접시꽃은 산 능선 위에까지 자생하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 햇살은 먼 산의 이마를 비추고 있다. 붉은색이 감도는 햇빛이 비치는 앞산은 마치 웅크린 스핑크스 고양이 같다. 나무가 없는 산의 능선이 마치 털이 없는 고양이의 굽은 등과 주름처럼 보인다. 황톳빛이 감도는 산은 옅어진 햇빛 속에서 제 몸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 순간의 정경을 사진에 담았다. 아름다운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기기묘묘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산, 맑고 신선한 공기, 노래하며 흐르는 깨끗한 냇물, 즐겁게 노래하듯 피어난 들꽃 무리…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감싸고 있는 대지 위에는 청정한 하늘과 선명한 흰 구름…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봄이 되어 살구꽃 복숭아꽃이 피면 이곳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꽃 피는 봄에 아내와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즉흥적으로 만든 들꽃다발을.....

  키 큰 백양나무들이 둘러싼 동네를 내려오다 우리는 촬영팀과 마주쳤다. 아이잣의 통역에 의하면 키르기스스탄의 국영방송팀이라고 한다. 잘생긴 PD 카즈벡(Казыбек Мамасадыков)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잠시 방송 녹화에 동참했다. 이 교수가 일행을 대표해 인터뷰에 응했다. 키르기스스탄과 무르다시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는 영어로 이야기했다. 

  저녁을 먹고 나자 금세 오후 9시가 넘었다. 나는 잠시 틈을 내어 이곳에서의 느낌을 글로 썼다. 무르다시의 형상과 색감과 향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짧은 단상들이지만 귀국 후 정리하면 어쨌든 한 편의 글이 될 것이다. 내가 노트북을 켜고 정리하는 동안 일행들은 하나, 둘 잠자리에 든다. 내가 허리가 온전치 못하다는 아아잣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녀의 새 언니는 카펫 위에다가 요를 세 개나 더 깔아준다. 그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져 온다.

  해발 2,000미터는 넘을 듯한 무르다시의 겨울은 아마 매우 추울 것이다. 실내의 벽까지 카펫으로 둘러놓은 것이 이곳의 겨울을 상상하게 한다. 겨울이 되면 무르다시로 오는 험난한 고갯길에는 많은 눈이 쌓일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마을은 인적이 끊겨 더욱 고적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몇 달쯤 살아보고 싶다. 욕망도 근심도 모두 버리고 키 큰 포플러처럼 조용히 선 채로 눈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눈이 푹푹 쌓이는 외진 산골을 내가 잠시 꿈꾸는 것은 백석의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시구절과 같은 의미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귀국한 뒤 나는 한 편의 시를 썼다. 수작은 아니지만 무르다시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쓴 여러 편의 시와 함께 시 전문 잡지 『시와 경계』 가을호 특집에 발표한 작품이다.           

무르다시를 떠나며 

 


            

                                       무르다시에서 

                                                        -길 위에서 쓰는 편지. 2          


  앞산은 높고 뒷산은 기기묘묘한데 마을은 고요하다. 발밑에서 피어난 낯선 버들바늘꽃, 노블야로우, 붉은토끼풀. 어쩌다 오다 보니 파미르 고원의 산자락 아래에 닿았다.


  강강술래 하듯 둘러싼 산들이 흘려주는 시냇물의 맑은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를 들으며 살구와 풋사과가 익어가고 검붉은 흙 속에서 감자들이 꿈을 꾸듯 자라고 있는데 나는 또다시 떨리는 가슴으로 네게 편지를 쓴다.

 

  따가운 여름날의 햇볕이 고원의 생명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지난겨울의 폭설이 목마름을 가셔 주고 있는 것을, 목책 너머의 초원을 펼쳐 놓은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이었다.


  황토와 돌들로 벽을 세우고 한 겹 슬레이트로 지붕을 삼은 첩첩산중의 오두막집. 내가 아는 이름은 접시꽃, 금계국, 장미뿐인데 앞마당에 한 무리의 꽃밭, 산 능선을 따라 이름 모르는 들꽃들이 열어놓은 또 다른 세상을 본다. 


  홀로 묶여 있는 당나귀마저 잠이 든 고적한 마을에서 나는 별을 헤아리다 돌아와 눈을 감는다. 내가 잠든 사이 만년설은 녹아 까마득한 평원을 적시고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첩첩산중에도 반달은 뜰 것이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인적이 끊길 때쯤 다시 돌아와 키 큰 포플러처럼 서 있고 싶다. 자잘한 걱정거리로부터 두려움까지, 슬픔으로부터 그리움까지 모두 내려놓고 눈사람처럼 온전히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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