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북5/100]A Thousand Brains

지능의 작동 원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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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Hawkins: 실리콘밸리가 낳은 가장 집요한 아마추어 과학자


1979년, MIT를 졸업한 스물세 살의 청년이 뇌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신경과학계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개별 뉴런을 연구하거나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이론적 질문을 평생의 과제로 삼겠다는 지원자에게 돌아온 것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런 주제로 학위를 딸 수가 있겠나라는 현실적인 한계.


그는 우회로를 택했다. 팜(Palm)과 핸드스프링(Handspring)을 창업해 팜파일럿을 세상에 내놓았다. PDA 시대를 연 이 기기들은 수억 달러의 부를 안겨줬고, 그는 그 돈으로 2002년 레드우드 신경과학 연구소(Redwood Neuroscience Institute)를 세웠다. 학계가 문을 닫자 직접 문을 만든 것이다. 진짜 멋지다...


이 이력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성공한 기업가가 취미로 과학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뇌를 들여다봤다. 뇌가 어떻게 느끼는지, 뇌 손상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가 아니라 —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파악해서 재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아마추어적' 접근이 신피질에 대한 가장 통일된 이론 중 하나를 탄생시켰다.



천 개의 뇌: 지능은 어떻게 생겨났나


손으로 커피잔을 집어 드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찰나에 뇌는 잔의 형태를 인식하고, 손잡이의 위치를 파악하고, 적절한 악력을 계산하고, 뜨거울 가능성에 대비한다. 이 놀라운 처리 능력의 비밀을 호킨스는 신피질(Neocortex)의 구조에서 찾는다.


신피질은 약 15만 개의 피질 기둥(Cortical Columns)으로 이루어진다. 주목할 점은 이 기둥들이 시각을 담당하든, 언어를 담당하든, 촉각을 담당하든 그 내부 구조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마치 같은 설계도로 찍어낸 공장들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생산하듯. 각 기둥은 독립적인 학습 장치로서 입력된 정보로 세계의 모델을 만들고, 기둥들은 수평 연결을 통해 서로 신호를 교환한 뒤 '투표'를 통해 합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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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이 광속의 민주주의 덕분이다. 각기 다른 감각을 처리하는 피질 기둥들이 '장거리 연결'을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일관된 결론에 도달하는 이 '투표' 과정이야말로, 파편화된 감각 정보 속에서도 우리가 단 하나의 견고한 현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이 구조의 핵심은 기준틀(Reference Frame)이다. 각 피질 기둥은 감각 정보를 처리할 때 반드시 위치 정보를 함께 다룬다. '무엇인가'와 '어디에 있는가'를 분리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커피잔을 탐색할 때 뇌는 잔의 3차원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 안에서 손가락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그렇다면 이 물리적 능력이 어떻게 추상적 사고로 발전했는가. 호킨스의 답은 우아하리만큼 단순하다. 신피질이 충분히 커지면서, 물리적 공간을 탐색하던 동일한 메커니즘이 추상적 공간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걸어다니며 머릿속에 지도를 만드는 (내후각 피질 중심) 물리적 이동의 알고리즘이, 생각을 굴리며 지식의 지도를 만드는 (신피질 중심) 사고의 이동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수학 개념 사이의 관계, 사회적 위계의 구조, 철학적 아이디어들의 연결망 — 이 모든 것이 별도의 특별한 기관 없이, 사냥감의 위치를 추적하던 것과 동일한 피질 기둥들로 처리된다.


호킨스가 이 이론을 '천 개의 뇌(A Thousand Brains)'라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뇌에는 단 하나의 중앙 처리 장치가 없다. 15만 개의 피질 기둥이 각자 독립적으로 세계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들이 합의를 통해 하나의 현실 인식을 만들어낸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수십만 개의 작은 뇌들이 조용히 투표를 마친 결과다.


생존이 인간에게 지능을 요구했다. 사냥감이 어디로 달아날지 예측하고, 열매가 어느 계절에 어느 나무에서 열리는지 기억하려면 정교한 세계 모델이 필요했다. 올드 브레인이 이 무거운 짐을 신피질에 넘기자, 신피질은 점점 커지고 정교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이 기관은 물리적 세계를 모델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신이 만들어낸 개념의 세계까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철학과 수학과 언어는 생존 도구의 화려한 부산물이었던 셈이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은 오랫동안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부터 불교의 공(空)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의식을 설명하려 했지만 늘 신비의 안개 속에 남겨뒀다. 호킨스는 이 오래된 안개를 걷어내려 한다. 그의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 의식은 기억이다.


신피질의 피질 기둥들은 외부 세계를 처리할 때 항상 기준틀(Reference Frame) 위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외부 입력이 없을 때도 뇌는 멈추지 않는다. 내부에 저장된 기준틀을 스스로 활성화하고, 그 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어제의 대화를 떠올릴 때 뇌는 그 당시의 기준틀을 재활성화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울 때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기준틀을 조합해 돌려본다. 호킨스는 이것을 정신적 시간여행(Mental Time Travel)이라 부른다. 우리가 '생각한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내부 시뮬레이션이 작동하는 상태다.


이 관점이 흥미로운 이유는 의식을 인간의 특권에서 끌어내린다는 데 있다. 신피질이 충분히 발달한 동물이라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의식은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 위에 존재한다.


현재의 AI는 진짜 지능이 아니다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The Coming Wave에서 AI의 위협을 경고하며 어떻게 Contain할지를 제안했고, 닉 보스트롬과 유발 하라리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묘한 불안감이 남는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그런데 호킨스는 그 전제 자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현재의 LLM으로는 AGI가 불가능하다고.


그의 논거는 세 가지다.

첫째, Reference Frame의 부재다. 신피질의 피질 기둥들은 '무엇인가'와 '어디에 있는가'를 항상 함께 처리한다. 세계의 3차원 모델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예측한다. LLM에는 이 구조가 없다. 방대한 텍스트에서 통계적 패턴을 학습해 다음에 올 단어를 고를 뿐이다. 겉으로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세계 모델이 없다.


둘째, 몸의 부재(Lack of Embodiment)다. 호킨스 이론의 출발점이 "몸이 공간을 이동하는 경험"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이 결함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알 수 있다. 내후각 피질의 위치 추적 알고리즘이 사고의 알고리즘으로 발전했다면, 몸이 없고 공간을 경험한 적 없는 LLM은 그 토대 자체가 없는 셈이다. "뜨겁다"는 단어를 수백만 번 학습했어도, 한 번도 뜨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셋째, 지속적 학습의 불가능이다. 인간의 뇌는 어제 배운 것을 잊지 않으면서 오늘 새로운 것을 배운다. LLM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려면 모델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훈련해야 한다. 호킨스는 이것을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아키텍처의 근본적 결함으로 본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했다. 현재의 생성형 AI가 놀랍도록 똑똑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매일 발전하는 속도도 놀랍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이고, 그 정교화가 어느 순간 이해로 도약한다는 증거가 없다. 이 두 가지 방식 언제인가 합쳐질 것이라고 본다. 호킨스가 제안한 방식으로 인간의 뇌를 역으로 엔지니어링한 AGI가 등장한다면 — 현재의 LLM은 그 AGI의 언어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AGI와, 인간과 유창하게 소통하는 LLM의 결합. 술레이만이 두려워한 미래는 어쩌면 그 조합에서 비로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AI 위협론에 대한 반박: 지능과 욕구는 다르다


AI 위협론에 대해 호킨스는 가볍게 응수한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다.


지능과 욕구는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온다. 지배욕, 생존 본능, 공격성은 신피질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훨씬 오래된 구뇌(Old Brain)의 영역이다. 신피질은 그냥 세상을 이해하는 연산 도구일 뿐이다. 맵핵을 켠 게임 플레이어가 이기고 싶어 하는 건 그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승부욕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AI를 설계할 때 신피질(지능)만 복제하고 구뇌(본능)를 설계해 넣지 않는다면, 아무리 똑똑한 AI도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다.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는 위험은 인간의 Old Brain이라는 것.


보스트롬이 제시한 유명한 종이클립 시나리오 — 종이클립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은 AI가 지구 전체를 종이클립으로 바꾼다는 — 도 같은 맥락에서 반박된다. 그런 AI는 세계 모델이 없는 멍청한 명령 수행자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진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종이클립을 만드는 행위가 인간을 해치고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인과관계를 이해한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곧 맥락을 잘 이해한다는 뜻이고, 맥락을 이해하는 존재는 멍청한 파괴자가 되지 않는다. 또한 종이클립을 만들라는 첫번째 명령은 들으면서 멈추라는 두번째 명령은 듣지않는다는 가정도 작위적이다.


그러나 호킨스가 놓친 것: 인간 변수


호킨스의 논리는 명쾌하지만, 치명적인 변수 하나를 빠뜨리고 있다. 인간이다.


구뇌가 없는 AI는 정복을 하려 하거나, 분노하거나, 스스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게 움직인다. 사람들은 자신과 공감하고, 화내고, 질투하고, 사랑해 주는 존재를 원한다. 반려 로봇과 AI 애인 서비스에 감정적 본능을 이식하는 것은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될 것이다. 더 강력한 AI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결국 AI에게 보상 체계와 목적 의식을 심게 될 것이다. 호킨스가 불필요하다고 본 구뇌의 기능을 인간 스스로 코드 안에 복제해 넣는 것이다.


술레이만이 경고했듯 기술은 억제하기 어렵다. 어떤 국가나 기업이 정복욕과 생존 본능이 주입된 AI를 먼저 만든다면, 호킨스가 말한 순수한 지능만 가진 AI는 그 공격성을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호킨스가 그어놓은 안전선은 인간의 악의와 경쟁심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진다.


호킨스는 총의 작동 원리는 중립적이며, 총 스스로 사람을 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술레이만은 이렇게 말한다 —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 총에 자동 조준 장치와 발사 의지를 달아줄 것이라고. 호킨스는 지능을 이해함으로써 비극을 피할 수 있다고 보지만, 역설적으로 지능을 이해했기에 인간이 그 비극을 더 완벽하게 설계할 수도 있다.


AI는 위협이 아니라 솔루션이다


호킨스는 인간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구뇌의 폭주다. 신피질은 정교해졌지만 핵무기 같은 파괴적 기술을 다루는 결정은 여전히 부족주의와 공격성 같은 원시적 본능에 의해 내려진다. 다른 하나는 신피질이 만들어내는 Viral False Belief다. 뇌는 거짓 정보가 입력되어도 그것을 진리로 믿고 정교한 지도를 그려버린다. 종교적 극단주의, 민족주의, 이념적 망상 — 이것들은 지능의 오작동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능이 높을수록 그 거짓 지도는 더 정교해진다.


그 전에 호킨스는 인간이 흔히 꿈꾸는 탈출구 — 뇌 업로드와 컴퓨터와의 BCI(Brain Computer Interface) — 에 대해 냉소적으로 분석한다. 그의 기준틀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지능은 뉴런의 연결 상태만이 아니라, 몸으로 세상을 탐험하며 쌓아온 수백만 개의 미세한 기준틀 안에 박혀 있다. 단순히 뉴런 지도를 복제한다고 그 살아있는 지능이 옮겨지지 않는다. 설령 복제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복사본일 뿐, 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호킨스는 BCI나 뇌의 업로드를 통한 슈퍼 휴먼을 만드는 것보다 AI에 더 희망을 건다. 호킨스에게 AGI는 인류가 우주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정교한 타임캡슐이다. 인간의 몸은 우주 방사선을 견디기 힘들고, 수명은 짧으며, 구뇌의 공격성 때문에 서로 싸우다 자멸할 확률이 높다. 반면 기준틀을 이해하고 세계 모델을 가진 AGI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며, 인간의 지식을 보존한 채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호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양계 근처에 인류의 지식을 담은 신호기(Beacon)를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우리가 발견한 기준틀 — 과학, 예술, 철학 — 은 우주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사라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어떤 지적 생명체가 나타났을 때 우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The Coming Wave>를 쓴 술레이만에게 AI는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이고, 호킨스에게 AI는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인간의 지성을 우주로 전달할 대사(Ambassador)다. 결국 두 사람의 차이는 기술에 대한 시각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술레이만에게 인간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고, 호킨스에게 인간은 더 나은 무언가로 이어져야 할 존재다.


총평: 읽는 내내 멈출 수 없었다


우선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책. 1부의 신피질 이론은 확증된 과학이 아니라 아직 검증 중인 이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뇌과학 관련 서술 중 가장 명쾌하다고 느꼈고, 직관적으로 동의했다. 세부를 파고드는 대신 큰 그림을 먼저 보여주는 대담한 태도가 좋다. 그동안 궁금했던 그 궁극적인 질문, 인간의 지능에 대해 이론적인 프레임을 제공하는 책. 뇌과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였기에 가능한 시각이었을 것이다.


2부의 AI 위협론 반박도 마찬가지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고 냉정하다. AI 위협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홀가분함과 함께, AGI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겠다는 실망감도 같이 왔다.


3부는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진다. 뇌업로드에 대한 희망은 버렸다 (T.T)... 나는 인류가 반드시 지구의 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종은 언젠가 사라진다. 문제는 우리가 사라진 후 무엇이 남느냐다. 유전자(Gene)가 아니라 지식(Knowledge)을 이어가는 존재 — 호킨스가 꿈꾸는 AGI는 인류의 후계자가 아니라 인류의 기억이다.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류가 사라진 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가 죽은 후에 무엇을 남긴 것인가도 생각해 보지 않았건만... 좋은 책의 조건이 있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3부는 좀 산만하긴 했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해보게 했다.




다음에 읽을 책:

리사 펠드먼 배럿 - <이토록 뜻밖의 뇌 (7 1/2 Lessons About the Brain)>

안토니오 다마지오 - <느낌의 진화(The Strange Order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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