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로 본 그리스 여성의 모습

호메로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한스 판 베이스의 <여성 정신의 발명: 고대 그리스의 여성, 재산,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논문을 발견했다. 이 논문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나타나는 그리스 여성들은 지적으로 남성과 대등하게 묘사되는데, 왜 몇백 년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발육이 덜 된 남성"이라고 규정했을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던 호메로스의 시대


초기 그리스에서 여성은 외모, 기술, 지성 세 가지 모두로 평가받았다. 특히 고품질 직물을 생산하는 능력은 가문의 명성을 좌우하는 실질적 경제력이었다. 모든 자존심 있는 가계는 최고 품질의 천을 대량으로 필요로 했다 — 손님 접대를 위한 침구, 선물용 옷, 죽은 자를 위한 수의까지. 이 모든 직물은 전적으로 여성의 가내 노동으로 생산되었다. 남성들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 아내, 딸, 여종들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호메로스 시대의 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공동 관리자였다. 아내는 창고 열쇠를 보관하며 가계 자원을 통제했다. 여성이 가계에 기여하는 한, 그들의 능력은 인정받았다.


오디세이에 묘사된 그리스 여성들


호메로스의 페넬로페는 창고 열쇠를 쥐고, 구혼자 20명을 20년간 조종하며, "훌륭한 마음"으로 칭송받는다. 수아르(구혼자)들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낮에 짠 수의를 밤에 다시 푸는 장면과, 귀환한 오디세우스를 시험하는 장면이 가장 유명한 구절들이다.

image.png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Penelope and the Suitors 1912


오디세이아의 파이아케스 왕국에서 만난 아레테 왕비는 남편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오디세우스는 먼저 딸 나우시카 공주를 만난다.


나우시카 (Nausikaa)

파이아케스의 왕 알키노오스의 딸이다.

난파 후 표류하던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 해변에 쓸려올 때 처음 만나는 인물이 나우시카다. 그녀는 시녀들과 빨래를 하러 나왔다가 벌거벗은 채 쓰러진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시녀들은 모두 겁에 질려 도망치는데, 나우시카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오디세우스를 맞이한다.

나우시카는 낯선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상황을 독립적으로 읽고, 그를 왕궁으로 안내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제안한다. 호메로스는 그녀를 단순한 공주가 아니라 지혜롭고 자기 주도적인 인물로 그린다. 오디세우스는 그녀를 처음 보고 "아르테미스 여신 같다"고 경탄한다.

image.png 나우시카를 만난 오디세우스 1888 painting by Jean Veber

아레테 (Arete)

나우시카의 어머니, 파이아케스의 왕비다.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여성 인물 중 하나이다. 알키노오스 왕은 아레테를 백성들이 "신처럼 존경한다" 고 묘사하고, 그녀가 분쟁을 중재하고 사람들의 호소를 받아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왕궁에 도착해 귀환을 도와달라고 청할 때, 나우시카와 아테나 여신이 그에게 조언하는 말이 이것이다.

"왕에게 먼저 말 걸지 말고, 왕비 아레테의 무릎을 먼저 잡아라."

실질적인 결정권이 아레테에게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실제로 오디세우스의 귀환이 결정되는 장면에서 아레테의 발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레테는 왕보다 큰 권위를 가진 왕비로 묘사된다. 나우시카는 위기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공주로 묘사된다. 호메로스가 이것을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당연한 것으로 서술한다.


기원전 600년, 무역이 바꾼 것


변화의 방아쇠는 기원전 600년경 무역 확대였다. 밀레토스와 리디아산 수입 직물이 들어오면서 여성의 직조 기술은 경제적 가치를 잃었다. 여성의 기술이 가문의 명성을 만들던 시대에서, 남편이 사다 주는 외제 사치품이 부를 증명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폴리스의 탄생 — 공적 영역의 제도화

호메로스 시대의 권력은 오이코스(가문) 중심이었다. 아레테가 왕궁에서 실질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이 아직 가계(household) 단위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권위는 곧 가문의 권위였고, 왕비는 그 가문의 공동 관리자였다.


기원전 7~6세기에 폴리스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아고라, 민회, 법정, 군사 조직 — 이 모든 공적 제도가 남성만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권력이 오이코스에서 폴리스로 이동하자, 오이코스에서 권위를 행사하던 여성은 자동으로 권력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의 발전이 여성 배제를 심화시켰다. 시민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여성을 명시적으로 외부화하는 장치였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완성될수록 "시민 = 성인 남성"이라는 등식이 더 공고해졌다.


같은 시기 스파르타는 달랐다. 남성이 평생 군사 훈련에 전념하는 구조였기에, 가정의 자산 관리와 농지 경영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스파르타 전체 토지의 약 40%를 여성이 소유했다. 경제를 쥔 여성들은 목소리도 컸다. 반면 아테네 여성은 독립적인 법적 주체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계약도 재판도 반드시 남성 보호자(Kyrios)를 통해야 했다.


화폐경제와 무역의 확대

한스 판 베이스가 논문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기원전 6세기부터 화폐가 도입되고 지중해 무역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직조 기술의 탈가치화. 또 하나는 부의 생산 방식 자체가 오이코스 바깥으로 이동한 것이다. 교역, 은행업, 제조업 — 새로운 부의 원천들은 모두 공적 영역에 있었고, 여성은 접근할 수 없었다. 경제적 기여의 통로가 막히면서 가계 내 협상력도 함께 증발했다.


전쟁의 성격 변화 — 호플리테스 혁명

기원전 7세기에 전쟁 방식이 바뀐다. 귀족 전사 개인의 싸움에서 중장보병(호플리테스) 밀집대형으로. 이것은 단순한 전술 변화가 아니었다.


호플리테스는 자기 갑옷과 무기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중산층 남성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이 폴리스 방어의 주체가 되면서 정치적 발언권도 함께 요구했고, 이것이 민주주의 확대의 한 동력이 되었다. 폴리스를 지키는 남성 =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등식이 강화되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여성의 시민적 지위는 더 취약해졌다.


철학이 그 뒤처리를 했다


위의 변화들이 먼저 일어났고, 철학은 그것을 자연의 질서로 설명하는 작업을 나중에 했다.


플라톤은 복잡하다. 〈국가〉에서는 수호자 계급에 여성을 포함시키고 능력에 따른 역할을 주장했지만, 〈티마이오스〉에서는 겁쟁이 남성이 다음 생에 여성으로 환생한다고 썼다. 일관성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훨씬 체계적이었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는 여성의 열등성을 생물학적 사실로 격상시켰다. 여성은 "발육이 덜 된 남성"이고, 여성의 이성은 존재하지만 "권위가 없으며(akuron)", "본성적으로 지배받아야 한다"고 썼다. 〈정치학〉에서 스파르타 토지의 약 5분의 2(40%)가 여성의 소유라고 기록하며, 스파르타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방종하게 굴었기 때문(Gynecocracy)"이라고 맹비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을 폄하한 방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편견을 넘어, 자신의 생물학, 형이상학, 정치학 체계 전체를 동원해 여성을 '자연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치명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 주장은 과학적 사실의 지위를 얻었고, 이후 2천 년 넘게 서양 사상을 지배했다.


여성의 열등성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


한스 판 베이스의 논문이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여성의 열등성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발명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경제 구조가 먼저 바뀌었고, 철학은 그 변화를 자연의 질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후 작업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사회의 편견을 깨는 대신, 철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 편견을 영구적인 진리처럼 포장했다.






논문요약

여성 정신의 발명: 고대 그리스의 여성, 재산,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

The Invention of the Female Mind: Women, Property and Gender Ideology in Archaic Greece


https://classics-at.chs.harvard.edu/wp-content/uploads/2021/05/ca1.2-vanWees.pdf

한스 판 베이스 (Hans van Wees)


서론


초기 그리스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전형적인 그리스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자질들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남성들의 눈에 비친 여성의 주된 미덕은 (다소 과장을 보태자면) 적법한 후계자를 생산하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여종이 자신의 아내보다 "체격과 신체 조건", 기술, 그리고 정신적 자질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그리고 그들의 영웅들은 일상적으로 외모(beauty), 기술(skill), 정신(mind)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했다.



이 논문에서는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세모니데스와 같은 초기 시인들이 묘사한 여성상이, 여성이 가계(household)의 지위에 적극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에 그 모든 자질을 높게 평가받았던 사회를 반영하고 있음을 논한다.


이후 그리스의 사회적 변화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베짜기 기술의 가치 하락을 가져왔고, '지적 평등함' 대신 '여성 정신의 선천적 열등함'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젠더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여성의 역할은 엄격히 제한되었고, 가계 재산에 대한 여성의 기여와 통제권은 축소되었다.



1. 아름다움 (Beauty)


아내의 비용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시인 세모니데스가 묘사한 '말(mare)에서 태어난 여성'은 전형적인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다. 그녀는 노예가 하는 고된 일이나 맷돌질, 청소 등 가사 노동을 거부하지만, 매일 몸을 씻고 향료를 바르며 긴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여 남편이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다. 이러한 아내는 귀족들에게 부를 과시하는 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이었다.



초기 시인들이 묘사하는 구혼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헬레네, 페넬로페, 나오시카 같은 여성들은 그들의 아름다움 때문에 수많은 구혼자의 목표가 되었다. 경쟁적인 구혼에서 승리한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파트너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prize)'으로서의 위신을 얻게 되었다.


딸의 가치


여성은 남편에게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반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는 부를 얻는 수단이었다. 오디세우스의 부모는 막내딸을 시집보내며 "수많은 것들"을 받았고, 제우스조차 아프로디테를 대가로 결혼 선물을 받았다. 결혼할 나이의 소녀들은 "가축을 물어오는 처녀들(alphesiboiai)"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족에게 가축 선물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존재였다.



초기 그리스의 결혼은 신랑 측이 신부 측 가족에게 주는 선물(hedna)과 신부 측이 가져오는 선물 사이의 교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신랑이 주는 선물의 가치에 훨씬 더 큰 강조점을 둔다. 신부의 가족은 딸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경향이 있었다.



2. 기술 (Skill)


호메로스 시대에 고품질의 가내 생산 직물은 주요한 지위의 상징이었으며, 여성의 베짜기는 가문의 명성에 필수적이었다. 옷은 입는 사람의 정체성과 지위를 강력하게 나타냈다. 예를 들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입고 있는 남루한 옷 때문에 20년 만에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모든 자존심 있는 가계는 최고 품질의 천을 대량으로 필요로 했다. 손님 접대를 위한 침구, 선물용 옷,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수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물은 전적으로 여성의 가내 노동으로 생산되었다. 남성들은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 아내, 딸, 여종들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기원전 600년경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치스러운 옷들이 점차 가내 생산이 아닌 해외 수입(밀레토스나 리디아 등)을 통해 조달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기술이 가문의 명성을 만들던 시대에서, 남편이 사다 주는 외제 사치품이 부를 증명하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의 기술적 가치는 하락했다.



3. 정신 (Mind)


초기 서사시의 여주인공들은 아름다움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mind)'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페넬로페는 "훌륭한 마음과 영리한 계획"으로 칭송받았으며, 그녀의 명성은 이상적인 왕의 명성에 비견될 정도였다. 초기 시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을 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여성의 지능은 때로 '속임수(deceptiveness)'라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을 능가하는 꾀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다. 헤라가 제우스를 속이는 장면이나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을 조종하는 모습은 그들의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고전기 문헌에서 흔히 보이는 "여자치고는 똑똑하다"거나 "여성의 지능은 낮다"는 식의 비하 발언은 초기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4. 가계, 재산,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


호메로스 시대의 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공동 관리자였다. 아내는 창고 열쇠를 보관하며 가계 자원을 통제했고, 남편은 아내와 상의 없이 창고 물건을 마음대로 쓰기 어려웠다. 이러한 공동 stewardship(관리직)은 부부간의 "마음의 일치(homophrosyne)"를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가 국가(state) 체제로 발전하면서 남성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남성의 '물리적 힘'이 가문을 보호한다는 점이 지배의 명분이었으나, 국가가 보호 기능을 대신하게 되자 새로운 명분이 필요해졌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남성의 지적·도덕적 우월성' 이데올로기다. 남성은 이성적이고 자제력이 있는 반면, 여성은 감정적이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발명함으로써 여성의 외부 활동을 제한하고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결론


결국 '여성 정신(의 열등함)'은 사회 변화 속에서 남성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발명된 산물이다. 여성이 가계 자산에 기여하던 실질적인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그들의 지적 능력 또한 폄하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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