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젓지 말고 흔들어서-
오전 느지막이 눈을 뜬다.
(프리랜서, 새벽에 잠들었음)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다음 단계의 어느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스레 냉장고로 어기적 기어간다.
전 날 잠을 설쳤는지 때꾼한 얼굴의 동공마저 구겨진 듯한 느낌이다. (앞이 흐릿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해
머릿속으로 주문 외우듯 냉장고 문을 연다.
바로 보이는 P사의 콜드 브루 원액이 '또 왔니~?'
하며 한 얼굴을 하고 내게 인사한다.
갈증 난 좀비처럼 원액 통을 들어 올린다.
바로 옆 싱크대에 잠시 내려 둔 후, 컵을 가지고 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위한 잔은 길고 넉넉한, 많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커피를 물 대신 먹는 악습을 가지고 있다.
목이 마를 때마다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아휴 이렇게 글로 적으니, 건강에 안 좋은 행동을 한다고 고해성사를 해버리는 기분이 든다. 묘하게 시원하네.) 이러한 나의 악습에 최적의 핏을 자랑하는 S사의 크리스마스 시즌 컵. 친절하게도 473ml이 들어간다 알려준다. 이 잔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세 잔 정도 마신다.
이미 전 날 마시다 남은 커피가 약간 담겨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위로 커피를 제조한다. 콜드 브루 원액 통에 적절한 용량이 적혀있지만 알게 뭐람. 문자 그대로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걸? 무수한 아메리카노 복용 경험을 토대로 최적의 눈대중을 한다. 원액과 물 1:5 정도? 묽었던 베이지색 물에 커피 원액이 섞이며 갈색으로 빠르게 변한다. 이내 짙어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물이 된다. 얼른 마시고 싶어 목구멍이 따끔따끔하다.
그렇지만 얼음 몇 알 넣지 않으면 커피가 커피 맛이 아닌 게 되니, 얼른 얼음을 넣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얼음을 넣지 않은 커피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냥 까맣고 쓴 물로 느껴진다.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고 향을 즐긴다는 사람이 있지만 난 대부분의 경우에 뜨거운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친히 세상에서 태깅도 해주었지 않나. 이른바 '얼죽아'. 나는 아주 추운 겨울에도 (실외 아닐 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완성된 아메리카노를 들고 007처럼 흔들며(젓지 말고 ㅋㅋ) 책상으로 돌아온다.(꼴값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도 이해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컵 안에서 얼음들이 노는 소리가 유리구슬 소리 같다. 모니터 전원을 켜니 웬 좀비가 있나 싶어 흠칫 놀란다. 얼른 인터넷 창을 열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발끝부터 피가 솟구치며 뇌로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내 몸 신진대사 전원도 다시 on. 자, 일하자.
지금까지 30대 프리랜서 커피 중독자의 하루 시작을 직관하셨다. 어릴 때는 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커피 왜 먹어?를 외치던 평범한 어린이였다. 나는 왜 이렇게(중독자가) 되었을까? 적어보다가... 아닌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얼마나 좋은데? 하며 예찬하는 쪽으로 -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장점을 영업해 보기로 맘을 고쳐 먹었다. 자 영업 좀 해보겠습니다. 뜨아 쪽 의견도 존중하지만 들어보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떤 음식과도
대충 다 어울린다.
정말 그렇다. 단 음식, 짠 음식, 기름진 음식 모든 음식에 얼추 괜찮다. 나는 치킨과도 먹는데(친구들이 이상하다 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서 먹는 것이다.
취존 바람..)
이렇게 거의 모든 음식을 아우른다 할 수 있다.
특히나 단 디저트를 먹을 때, 빛을 발한다. 디저트의 단 맛을 더욱 좋게 느끼게 해 주며 물림을 방지 하기에 이만한 음료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마카롱, 쿠키, 심지어 과즐, 쌀과자, 고구마까지 안 어울리는 간식이 없다. 실로 고칼로리 간식의 동반자라 말할 수 있다.
칼로리가 거의 없다.
살도 안 찐다. 이렇게 완전할 수가!!
(물론 살찌는 음식과 함께 먹기에 별 의미는...)
어떤 상황이든 다 잘 어울린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일해야 할 때(선택이 아닌 필수. 수혈이다.), 친구와 전화할 때, 슬픈 영화를 볼 때, 더울 때, 목마를 때, 자다 일어났을 때(나는 카페인의 영향을 별로 안 받는다), 일이 끝났을 때, 화가 날 때,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그 밖에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때. 자기 직전! 말고는 안 어울릴 때를 찾기 어렵다.
(사실 나는 자기 직 전까지 커피를 마시는 중독자의 길을 걷고 있기에 앞의 문장을 적을 때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커피 중독자이자 예찬론자라 해도 자기 전 커피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흑..)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골라 만드는 재미가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aka. 아아. (이제 아아라고 하겠다.)는 적정한 용량의 물, 커피, 얼음 이렇게 아주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만드는 방식이 아주 다양하며 그 방식에 따라 재미와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아아를 제조하거나 사 먹거나 다양한 복용 방식이 있을 거다. 나의 경우는 집에서 일을 하기에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샷을 내리는 방식은, 사 먹는 방식 말고는 선택할 수 없다. 카페에도 자주 가지만 집에서 조제하는 방식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 모카포트로 내려먹기
가장 귀찮지만, 가장 뿌듯하고 크레마도 느낄 수 있다. '가장 카페 느낌의 홈커피'라 할 수 있다.
모카포트용으로 알맞게 갈린 원두가루를 조심스레 모카포트 하단, 원두가루를 적재하는 동그랗고 작은 공간에 넣는다. 표시된 곳까지 물을 받고 상단과 하단을 돌려 잘 맞물려 닫는다. 이때 제대로 닫지 않으면 물이 끓을 때 엄청난 재난이 벌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잘 잠그지 않으면 원두가 융기하고 폭발한다. 나의 경험을 풀어보자면 가스레인지 구석구석 주변의 양념통까지 물에 뭉친 원두가 튀어 있었다. 실제 수류탄이 터진 모습을 본 적 없지만 대충 이런 모습 아닐까? 하고 멍 때 리던 그날의 좌절이 아직도 선하다. 가스레인지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싱크대 전체 청소를 하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위험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추출을 하면, 머신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진한 샷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추출된 커피는 물에 타면 아아, 우유에 섞으면 라테가 된다.
처음 모카포트를 샀을 때는 에스프레소를 집에서 뽑을 수 있다는데 너무 흥분하여 바닐라 시럽을 만들고 난리를 쳤었다. 이 시절엔 잠시지만 아아대신 아바라(아이스 바닐라 라테)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래도 돌도 돌아 첫 사랑, 아메리카노에 다시 정착.
2) 핸드드립
**미리 말하지만 난 엉터리 방구석 핸드드립러다. 그냥 내 입맛대로 얼렁뚱땅 조제하듯 만드는 드립방식이니절대 따라 하지 마시길.
핸드드립은 두 번째로, 아니 사실 모카포트랑 비등하게 귀찮다. 원두를 갈고 드리퍼와 서버와 컵을 모조리 꺼내, 커피 거름종이(?)를 드리퍼에 깔고 원두를 담는다. 물을 끓인 후 드립용 주전자에 옮겨 담고 조금 물을 부어 원두를 불리고 데운다. 30초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한 방향으로 물줄기를 균일하게 돌리며 붓는다. 물이 다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한다. 원하는 만큼 커피가 찰랑거리면 마시면 된다. 전동 그라인더가 없으면 너무너무 (사실 모카포트도 마찬가지다) 팔도 아프고, 설거지 거리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핸드드립을 한 번 해보면 이 과정도 즐겁고, 커피 맛도 확실히 다르다. 모카포트에서 뽑히는 에스프레소는 진하고 머신에서 뽑는 샷의 느낌에 가깝다. 핸드드립은 모카포트에 비해 조금 더 빛깔이 영롱하니 호박빛이 얼핏 비치는 색감을 지녔고, 맛 또한 좀 더 순하고 깨끗하다. 특히나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이미 커피 향을 듬뿍 맡을 수 있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역시나 시간이 많을 때 가능하기에 자주는 못한다.
3) 액상 포션커피, 콜드 브루 원액, 카*
자 이제 가장 간편한 방식이자 데일리 방식인 '그냥 타 먹기'다. 액상으로 된 포션커피나 위에서 설명한 콜드 브루 원액을 사 두면 굉장히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냥 정해진 용량에 맞춰 물만 타서 얼음을 넣으면 끝. 이보다 간편할 수 없으며 맛 또한 훌륭하다. 나는 P사의 콜드 브루 원액을 사용하지만 새벽 배송을 해주는 여러 마켓 어플만 해도 유명 카페 콜드 브루를 손쉽게 고를 수 있다. 이 방식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어쨌든 간에 좀 비싸다는 것이다. 내가 마시는 P사의 콜드 브루를 기준으로 잡으면 한 잔 용량이 1400원 정도 꼴이다. 캡슐머신 쓰시는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거기도 하나에 천 원꼴이니, 그리 비싼 건 아닌 것도 같고.
그래도 비싸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으면 역시 종착역은 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 문구에서 신뢰감을 불러일으킨다. 애정에 마지않는 공유 배우님과(❤) 프리미엄 가루커피의 선봉장 같은 괜찮은 맛.
물에 잘 개어 얼음을 넣으면 뭔가 거품스러운 게 살짝 일어나는데, 너 설마 크레마...? 하며 눈으로 맞이하는 약간의 설렘이 포인트. 물에 갠 다는 과정이 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원액으로 넘어갔는데, 아이스용 제품도 나왔다니 나중에 한 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카*에서 아무것도 받은 것 없다. 그저 개인적 선호니 오해 마시길.)
4) 커피머신, 캡슐커피 기타 등등
나는 머신류를 구매하지 않아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요즘엔 가정용 커피머신도 워낙 보편화되어 있고, 캡슐머신은 심심찮게 하나씩은 다 구비하고 있는 거 같다. 나는 기계 들이는 것에 있어 보수적이라 조금 주저하고 있다.
이렇게 총 4가지의 방식 중에 원하는 방식대로 제조할 수 있는 아아. 이밖에도 기타 등등에 다양한 커피 제조 기법들이 있을 테지만 굳이 다 적진 않겠다. 이렇게나 다양한 방식으로 제조할 수 있으니, 기분 따라 상황 따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덕질을 골고루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맛.
커피가 맛있다 느껴질 때 우린 비로소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쥐게 된 것이다.
쥐고 싶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다.
커피의 맛을 알게 된 당신,
다시 이 전으로 못 돌아가리라.
자 어떻게 영업이 좀 됐을지 모르겠다.
봄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는 춘풍이 분다.
날 좋은 요즘 창문을 반틈 열어본다.
한 손에 책 한 권,
다른 한 손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