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정문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미술관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예술에 대한 안내서라기보다 인간이 상실을 통과하는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에 가깝다. 저자는 잡지 뉴요커에서 일하던 촉망받는 직장인이었지만, 사랑하는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삶의 방향을 잃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속도로 살아갈 수 없었고, 결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는 선택을 한다. 겉보기에는 후퇴처럼 보이는 이 선택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멈춤이자 숨 고르기였다.


미술관 경비원의 일상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그는 같은 자리에 서서 작품을 지키고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반복적인 시간 속에서 저자는 점차 미술 작품을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기 사작한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작품 앞을 빠르게 지나가며 정보를 소비하듯 감상하는 것과 달리, 그는 종일 한 작품과 같은 공간에 머문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은 작품을 단순한 시각 대상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저자에게 미술관은 더 이상 작품이 전시딘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 된다.


특히 덴두르 신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이 신전은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며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저자는 이 공간에서 근무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공간의 분위기를 관찰한다. 조용히 앉아 쉬는 관람객들의 모습,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가는 하루의 정적 속에서 그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동시에 얼마나 지속적인지 체감한다. 신전은 오래 버텨 왔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삶과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떠나간다. 이 장면은 예술이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잠시 멈추고 바라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렘브란트는 평생 자신의 얼굴을 반복해서 그리며 삶의 흔적을 기록했다. 젊은 시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부터 노년의 지친 얼굴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화상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 그림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실패와 쇠퇴가 결코 삶의 가치와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히려 삶의 흔적이 축적된 얼굴은 그 자체로 한 인간이 살아낸 시간의 증거가 된다. 이는 형을 잃은 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저자에게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지속성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브뤼헐의 곡물 수확 역시 책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들판에서 일하고 쉬는 농부들의 모습은 영웅적이거나 극적인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로 평범함 속에서 저자는 삶의 본질을 발견한다. 인간의 삶은 특별한 순간들보다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의 축적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경비원으로서의 자신의 노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그가 선택한 삶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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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헐의 곡물 수확. 계절마다의 모습을 담은 사계 시리즈 물로 총 6점이 있고 이 그림은 그중의 하나, 추수하는 계절의 모습이라고 한다. 웅진 지식하우스 출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언급하는 모든 예술품을 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함께 실어놓았기 때문에 글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예술품을 볼 수 있어 책 읽는 재미가 더 높아진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슬픔을 극복하는 서사를 보여주지 않은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상실을 극복하거나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은 시간이 지나며 형태를 바꾸고 삶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예순은 그 과정을 촉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곁에 존재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작품들은 저자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지만,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현실을 바꾸거나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작품 앞에 서서 머무는 시간은 일종의 사유의 시간이며, 그 시간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저자가 미술관에서 경험한 변화는 작품 자체의 의미를 해석한 결과라기보다 작품과 함께 머문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내면의 변화였다.


이 책은 결국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삶을 살아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빠른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저자는 멈추고 바라보는 시간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외부에서 보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에게는 삶을 다시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예술은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백 년 전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과 이어지며, 그 연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이 슬픔과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술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 머무르며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는 존재로 남는다. 책을 덮고 나면 작품의 의미보다, 한 인간이 상실 속에서도 삶을 계속 이어가려 했던 태도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예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삶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더라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작년 여름,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마음이 어려웠을 때 찾아갔던 도쿄역 근처의 Artizon 미술관을 떠올렸다. 그림을 보러 다니는 걸 평소도 좋아했지만 그날은 좋아서라기보다 뭔가 내 시선을 분산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여러 작가의 그림 중 유독 발걸음을 붙잡는 그림이 있었다. 모르는 화가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중국의 화가였다. 제목도 특이한 그 그림이 무얼 그린 것인지, 어떤 의미를 지닌 그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어떤 그림을 보고 이렇게 큰, 알 수 없는 힘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참을 그림 앞에 서서 보고 또 보면서 그야말로 예술이 주는 특별한 어떤 힘에 반응한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책의 한 부분 (저자가 처음 브뤼헐의 곡물 수확 이라는 그림을 보았을 당시를 회상하며 쓴 것) 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내가 작년 여름 그림 앞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한 것이라, 읽으면서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모른다.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지닌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 위대한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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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속에 퍼덕이는 새 한 마리를 남겨준 그림, Zao Woo-ki作 1.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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