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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 차이와 사이를 걷다
for Bleisure

1장. 베이징 고궁 산책이 가져온 영감

by 정민영

1장. 베이징 고궁 산책이 가져온 영감


베이징 출장 중 구중궁궐 고궁(자금성)의 동쪽 담장 길을 천천히 걷던 날, 나는 익숙한 회색 도시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바쁜 일정이 끝난 오후, 드물게 비어버린 시간을 핑계 삼아, 택시에서 내려 자금성 북문부터 천안문까지 길게 이어진 고궁 둘레길로 들어섰다. 고궁을 처음 만났던 순간, 높게 솟은 붉은 담장과 황금색 처마가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멈춘 듯했다. 지난 수백 년의 역사가 켜켜이 붙어있는 벽, 그 위로 날아다니는 까마귀들, 미묘하게 일렁이는 먼지 속의 햇빛,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공기에는 특별한 무게가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첫 번째 문, 오랜 시간과의 조우

자금성의 거대한 문루를 바라보며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경외감이었다. 명나라 영락제가 1420년에 완성했다는 이 궁전은, 24명의 황제가 거쳐 간 권력의 중심지였다. 탁 트인 광장과 웅장한 문루, 바닥의 커다란 화강암 석재, 담장 곳곳에 붙은 오래된 철제 문고리까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누군가는 단순한 벽돌더미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앞에 서면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나는 늘 숫자로만 보고서에 적었던 '중국 시장'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추상적이었는지 그때 깨달았다. GDP 성장률, 인구수, 시장 규모 같은 데이터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진짜 중국이란, 이처럼 손에 닿을 것 같은 역사와 시간의 층위 속에서만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오문(午門)을 지나 태화전 광장에 들어서니 그 규모에 압도되었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 광장에서, 나는 한 개인의 작음을 실감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광대한 공간을 설계하고 건설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곳에서 황제의 즉위식을 목격했던 신하들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붉은 담장 아래서 느낀 시간의 흐름

고궁의 담장을 따라 걸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색채였다. 붉은 벽과 황금색 지붕, 하얀 대리석 난간, 푸른 하늘의 조화가 완벽했다. 이 색깔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붉은색은 권력과 번영을, 황금색은 황제의 존귀함을, 하얀색은 순결과 정의를 상징했다.

담장 아래 조용한 길에는 관광객이 드물었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순간 내 걸음걸이도 어느새 느려졌다. 서두르던 걸음을 멈추고 부서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한 발 한 발마다 다른 생각을 담았다. 천 년을 견뎌온 이 담장은 수많은 권력의 교체, 애증과 배신, 환희와 절망을 바라봤을 것이다. 사소한 작은 벽돌 틈에도, 과거 수많은 삶과 시간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

중국 고전의 구절이 떠올랐다. '궁중에 매화가 피어도 놀라지 않고, 궁루에 쌓인 눈은 아직 깊지 않구나.' 수백 년 전의 시인이 이 고궁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어느 출장자보다 오히려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건축의 철학, 조화와 균형

고궁의 건축을 자세히 관찰하며 나는 중국 문화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건물이 남북축을 기준으로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각 건물의 크기와 높이도 엄격한 위계를 따르고 있었다. 이는 천지인(天地人) 사상,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중국 철학의 구현이었다.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을 걸으며 나는 이 공간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관을 표현한 것임을 깨달았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天子)로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였고, 고궁은 그 상징적 공간이었다.

각 건물의 처마 끝에 달린 신수(神獸) 조각들도 흥미로웠다. 용, 봉황, 기린 등 상상의 동물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런 세부적인 장식 하나하나가 모여서 고궁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제의 일상을 상상하며

양심전(養心殿)과 건청궁(乾清宮) 등 황제의 생활공간을 둘러보며, 나는 권력의 최정점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해 봤다. 화려한 장식과 귀한 보물들로 둘러싸인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엄격한 예법과 규칙에 얽매인 답답한 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황제의 서재였다. 수많은 고서들이 정리되어 있고,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황제들은 정사를 돌보고,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을 것이다. 권력자라고 해서 단순히 호화로운 생활만 했던 것이 아니라, 깊은 교양과 학식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궁의 삶, 권력 뒤편의 그늘

고궁의 뒤편, 후궁들이 살았던 공간들을 걸으며 나는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보았다. 화려하지만 폐쇄적인 공간, 아름답지만 자유 없는 삶. 수많은 여인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경쟁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음모와 질투, 사랑과 이별의 드라마들.

어느 한적한 정원에서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고,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역사의 이면에는 항상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보물들이 말하는 문화의 깊이

고궁박물관의 진귀한 보물들을 보며 나는 중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에 감탄했다. 청화백자, 칠기, 옥기, 서화 등 각 분야의 최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청나라 시대의 도자기들은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 점의 산수화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먹과 붓만으로 이토록 깊은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서양의 유화와는 전혀 다른 미감이었다. 여백의 미, 은유적 표현, 절제된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중국 문화의 특징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고궁의 표정

나는 고궁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봄에는 정원의 목련과 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어 궁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무더위를 식혀주고, 연못의 연꽃이 아름다웠다.

가을의 고궁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황금색 지붕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단풍이 든 나무들 사이로 고궁의 붉은 담장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겨울에는 눈 덮인 고궁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얀 눈과 붉은 담장의 대비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본 과거

고궁을 걸으며 나는 현대와 과거의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디지털 가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600년 전의 공간에서 21세기의 기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는 마음, 역사의 웅장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의지. 이런 인간의 보편적 감정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비즈니스에 주는 통찰

고궁 산책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한 문화 체험 이상이었다. 중국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중국인들의 장기적 사고,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가치관 등이 현대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면자(面子)', 즉 체면의 중요성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궁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문화가 현대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상대성과 영원함

고궁에서 보낸 하루는 시간의 상대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바쁜 출장 일정 속에서는 1시간도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고궁의 정원에서는 1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의 선물이었다.

동시에 영원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600년이라는 시간이 인간의 일생에 비하면 매우 길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한 순간에 불과하다. 고궁도 언젠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과 가치는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예술과 권력의 만남

고궁은 예술과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이 황실의 권위를 뒷받침했다.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예술 분야의 정수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예술품들이 단순히 권력의 도구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작품을 만든 장인들의 혼과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그것을 감상한 황제들의 안목과 교양이 스며 있었다. 예술과 권력의 복잡한 관계를 고궁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

고궁은 또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한족의 전통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만족, 몽골족 등 다른 민족의 문화적 요소들도 받아들였다. 청나라는 만족이 세운 왕조였기 때문에 만족의 문화가 궁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문화적 융합은 현대 중국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56개 민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 중국의 원형을 고궁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중국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고궁이 준 인생의 교훈

고궁 산책을 통해 나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권력과 부의 무상함, 시간의 흐름 앞에서의 인간의 작음, 그러면서도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의 위대함. 이런 상반된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교차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중용(中庸)'의 가치였다. 고궁의 모든 것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고, 웅장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균형감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감의 씨앗

해질 무렵, 고궁을 나서며 나는 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이 심어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경외감이었고,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였으며,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 체험이었다.

고궁에서 얻은 영감은 이후 내 삶과 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비즈니스를 할 때도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에 있는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또한 급한 성과를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만만디(慢慢地)'의 지혜를 배웠다. 모든 것을 급하게 처리하려 하지 말고, 때로는 천천히, 깊이 사색하며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고궁의 붉은 담장이 600년의 세월을 견뎌온 것처럼, 진정한 가치는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새로운 출장을 준비하며, 고궁에서 얻은 영감을 마음에 품는다. 어떤 도시를 가든,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리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그 도시가 주는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여유로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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