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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올디 Sep 10. 2024

현장은 떠나는 게 답일까?

설비 직무는 떠나는 게 좋은가? 남아있는 사람들은 왜 남았을까?

 요즘 여러 미디어 매체들을 보다 보면 직장인들의 다양한 힘든 점에 대해서 많이들 다루고 있다.

이 또한 내가 그런 것들을 많이 봐서 알고리즘이 형성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은 저마다의 힘든 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후배들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얘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야 이래저래 정신이 없겠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보통 2~3년 차 정도 된 후배들은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물론 예전의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선배님은 왜 아직 설비 직무를 하고 계세요?'

 이전 글에도 밝혔듯 나는 설비 직무에서 일을 하고 있고, 우리 회사의 경우 설비 직무 엔지니어들은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대졸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이전에는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실제로도 직무에 불만족하던 참이라 

'능력이 없어서 그냥 입사한 대로 있지. 너도 얼른 탈출해!'

라고 대답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부서를 이동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차에 후배들에게 다시 질문을 받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아직도 설비 직무를 떠나지 못할까?'

 한 2~3년 전에는 나도 다른 직무로 이동을 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하고 있는 영어공부도 그때 시작했고, 실제로 직무 이동을 한 동기들을 찾아가서 실제로 이동하니 어떤 지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동기들이나 다른 회사 친구들과도 만나서 대화를 많이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스스로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수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옮기지 않는다'였다. 이전 글에도 밝혔던 것처럼 블루칼라로서 가지는 장점이 좋았던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직무로 옮기자고 보니 설비 직무가 나에게 더 잘 맞는 직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부터는 후배들이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좀 더 확실하게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우선 후배들은 왜 옮기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물어봤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크게 3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었다.


1. 입사 때 생각했던 것과 업무가 너무 다르다.

 으레 인사팀에서 대학교 리쿠르팅을 돌게 되면 회사의 장점만을 돋보이게 설명하기 마련이다. 몇몇 친구들은 이 점에 마치 속아서 입사한 기분이라는 말을 했다. 입사만 하면 설비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하고 엔지니어링 하는 업무를 할 것 같았는데, 현실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이 점에 크게 동의한다. 대게 인사부서의 경우 현장의 업무가 정확히 어떤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홍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하는 위험하고 한편으로는 더럽기도 한 업무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홍보가 신입사원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모양이었다.

 실제로 설비 직무의 경우 엔지니어링도 하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설비 유지보수를 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때로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업무도 많이 하게 된다. 사실 일정 부분은 군대와 같다고 보는 게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의 경우 엔지니어링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는 유지보수의 반복과 직접 설비를 뜯어보며 몸으로 체득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좀 더 인정받는 업무를 하고 싶다.

 이전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신입사원으로 갈수록 고착화된 현장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대부분의 기존사원들도 이해를 한다기보다는 익숙해져 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현장은 항상 불만이 많고 징징거리는 사람들로 표현되고, 학벌이 낮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를 하는 사람들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회사를 오래 다니며 이런저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만, 신입사원들이 느끼기에는 아직도 현장 경시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후배들은 좀 더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고 일하기 위해 직무 이동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3. 업무적으로 발전을 하고 싶지만 설비 직무는 한계가 있다.

 일부 욕심 있는 후배들의 경우 현장 직무의 한계 때문에 직무 이동을 희망한다고 했다. 우리가 많이 하고 듣는 말 중 하나가 '부서의 선배가 내 미래다.'인데 선배들을 보면 무언가 정체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배로서 나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고, 동시에 나와 생각이 가장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사실 설비 직무의 한계 때문에 설비 직무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커리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자주 온다. 설비 직무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게 되면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기에 더 이상의 자기 발전보다는 현재 있는 것들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나는 그 부분에서 워라밸을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현재 부서에 남아있기로 했다. 쉽게 말해 회사에 큰 뜻을 두지 않고 내 생활을 좀 더 챙기고 싶어서 현장을 택한 것이다. 열정이 넘치는 후배들이 보기에는 이 지점이 안 좋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비겁해 보이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 내에서의 성장보다는 회사 밖에서의 성장을 택했고, 그러기에 설비 직무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위 3가지 이유를 들으면서 나는 후배들에게 설비 직무를 계속할 것인지, 직무 이동이나 이직을 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면 이 한 가지의 질문에 고민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고 있다.

'나는 회사 내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가? 아니면 회사보다 밖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가?'

회사 내에서 성공을 하기에 설비 직무는 좋은 선택이 아닐 확률이 크다. 현장 출신 임원도 손에 꼽게 적고, 이미 현장이 높게 올라가지 못하는 구조에서 그것을 뚫고 올라가서 성공을 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회사 내에서 무엇을 얻기를 원한다면 설비 직무를 계속하기보다는 직무 이동이나 이직이 더 좋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나와 같이 회사 밖에서의 생활, 이를테면 가족이나 개인적인 성취 등이 더 중요하다면 직무 이동을 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보다는 현재의 설비 직무가 가지는 직무적 이점을 충분히 누리는 게 더 좋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타 직무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현장 직무와 사무실 직무는 아예 업무를 하는 프로세스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무를 이동하게 되었을 때 아예 모든 것을 새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고, 그만한 각오가 없다면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 또한 설비 직무를 유지한다면 기존에 익힌 것을 조금씩 발전시키며 커리어를 쌓아 나가면 되기에 훨씬 회사에서 느끼는 부담이 적다.


 내가 했던 질문에 후배들이 고민하면서 실제로 직무 이동을 한 후배들도 있고, 직무 이동을 다시 생각해 보는 후배들도 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한 끝에 떠난다면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자발적인 이동일 것이다. 회사 내에서 성공을 하거나 회사 밖에서 성공을 하거나 둘 중 정답은 없다. 성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어딘가로 이동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순간의 감정이 아닌 스스로와 깊은 소통 끝에 결정을 내려 만족할만한 이동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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