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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un 14. 2018

그 눈물에 담긴 것은

영화 <허스토리>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6년의 시간 동안 시모노세키에서 진행되었던 이른바 ‘관부재판’. 총 10분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고가 되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지난한 법정 투쟁이 벌어졌다. 이 영화의 겉은 관부재판을 다루지만, 표피를 들추어내면 재판에 임하는 할머니들과 원고단 단장인 문정숙 사장, 그리고 그들을 변론해주는 변호사까지.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관부재판이라는 ‘사건’보다, '사람'에 있다.


 

‘내 똥 굵고 내 오줌 폭포다’를 아무 거리낄 것 없이 외치는 문정숙은 부산 여성 경제협의회(부경협) 회장이자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그러던 중 부경협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돕자는 뜻이 모이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접수할 수 있는 창구를 문정숙 사장의 여행사에 차리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머리 조아릴 일 없이 당당하고 자신 있던 문정숙은 그녀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했던 배정길 할머니(김해숙)가 피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며, 힘이 닿는 한 그들을 도우려고 발 벗고 나선다. 그러던 중, 일본 교포인 이상일 변호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무료변론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들과 함께 부산과 시모노세키(하관)를 총 6년 동안 왕복하며 23번의 재판을 벌인다.


 



사실, 영화 <허스토리>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영화 초반 문정숙 사장(김희애)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하필 배정길 할머니(김해숙)였던 것, 딸이 엄마 문정숙 사장과 다툰 후 무심결에 틀었던 TV에서 하필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인터뷰가 나온다는 것, 문정숙 사장이 탄 택시에서 역시 하필 위안부에 관한 라디오 뉴스가 나오며 또 하필 택시기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지나친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까지. 반복되는 ‘하필’의 지나친 남발은 돌출되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유연하고 매끈하게 연결해나가려는 의도였지만, 그 의도가 조악하게 도드라져 스토리의 핍진성에 대해 갸우뚱하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하나같이 훌륭한 배우들을 모셨지만, 주고받는 연기 앙상블에서가 아니라 독백일 때 그들의 진가가 더욱 발휘된다는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음악 역시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지시적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어도 여전히 민규동 감독의 영화 <허스토리>는 매력적이자 훌륭하다. ‘허스토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그녀들'의 이야기이자, 그녀들의 '이야기'다. 영화 <허스토리>는 ‘그녀들’(여성-위안부)과 ‘이야기’(관부재판)이라는 두 가지 씨줄과 날줄로 서로를 엮고 엮으며 촘촘하고 단단하게 주제의식을 밀고 나간다. 일본의 광기 어린 위안부 사건을 통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여성이지만, 또 그 피해를 앞장서서 해결해주는 사람 역시 여성 문정숙이라는 점은 바로 이 점에서 이 영화가 훌륭한 페미니즘의 성취를 이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사건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휴머니즘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극을 대하는 태도가 사려 깊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건 그 끔찍한 사건을 단 한차례의 플래시백 없이 오직 피해 당사자들의 현재의 ‘상흔’으로만 묘사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끔찍한 비극을 다룰 때,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줄 것인가,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피해자 중심으로 깊게 해야 한다.)     

 

사실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아픔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에서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때로 절대악인 상대편보다, 내부에서 오는 공격이 아닐까. ‘위안부 접수센터’를 운영하던 문정숙에게 온 전화에서 ‘주둥이 그만 놀리고 조용히 살아라’고 일갈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여성이었고, 갑자기 날아들어 창문을 깨트리고 바닥에서 나뒹굴던 돌을 던진 사람 역시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영화 <허스토리>는 바로 이 점에서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무심했던 관객들을 정중하게 꾸짖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희망이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그들을 이끌던 문정숙 사장과 이상일 변호사를 위시한 변호단까지, 그들이 총 6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던 힘과 23번이라는 길고 긴 법정투쟁을 치를 수 있던 인내와 부산과 시모노세키 사이를 시종 오고 가게 했던 동력은 바로 희망이었다. 결국 재판정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판결문 일부에 ‘여성 차별이자 민족 차별, 즉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 사건’이라고 명시된 것은 바로 이 희망이 성취해 낸 영광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정길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와 춤은 그 어느 때보다 힘 있고 단단하다.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누군가는 그날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픔을 앓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평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살아가지만, 이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은 일으키고, 움직이게 하며, 새로움을 향해 달리게 한다. 이 영화에서 흐르는 그 눈물에 담긴 것은 비극의 페이소스(Pathos)가 아니라 희망의 카타르시스(Katharsis)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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