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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19. 2022

해외 학술지에 투고를 성공하다

2년의 여정,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

본 글은 Jeong-Woo Lee (2022) "Electoral competition and government health expenditure in electoral autocracies: A pessimistic View", International Area Studies Review, OnlineFirst, https://doi.org/10.1177/22338659221112997의 투고 완료 과정을 담은 것입니다.


  "논문을 처음 쓰는 당신에게"를 탈고하고 벌써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비교정치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두 학기가 지났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빠르고도 느린 시간이었다. 수입은 반 이상 줄었지만 그만큼 내가 내 연구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었고, 이런 생활에 적응하면서 나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습관으로 공부할 방법도 찾게 되었다. 내가 공부와 연구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대학원에서 좋은 동료들도 만나서 연구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최근엔 지도교수와의 사이가 좋아졌다. 지금 나의 삶은 모두 평탄하다.

  다만,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는 내가 하고 있는 노력에 대해 스스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왔다면, 대학원에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2021년 2학기에 쓴 국문 논문을 투고했는데, 익명 심사자의 코멘트에 난도질을 당해 돌아왔다. 그리고 수업에서도 텀페이퍼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제를 정하고 이 논문이 기존 연구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찾아서 읽어야 한다. 저자에 의해서 논문의 중요성과 적실성이 부여되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2022년 5월 23일, 투고했던 저널의 편집진으로부터 심사 결과가 도착했다. 심사 결과는 "수정후 재심(Major revision)"이었다. 해외 학술지의 심사 결과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수정 없이 받아들이는 "Accept",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major revision", 조금의 수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minor revision", 탈락이라는 "reject"으로 나뉜다. 나는 이제까지 리젝을 세 번이나 받았으니까 이번에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였다. 구글링을 해보니 major revision이라면 수정 결과를 보고 편집진에서 이후에 리젝을 내릴 수 있다는 소리를 발견하기도 해서 아직까진 불안하기도 했다.




  지도교수에게도 물어보니 major revision 이후에 리젝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잘 고쳐서 내라고 했는데, 불안했다. 이 학술지에서는 심사자를 두 명만 선정해서 결과를 보내줬다. 두 번째 심사자는 칭찬의 연속이었다. 그의 첫 문장은 "I like this paper (나는 이 논문이 좋다)"이었다. 내 논문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도 내 의도를 받아들여서 이렇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나는 두 번째 심사를 읽는 순간 모든 것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나의 논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됐다는 생각에서였다.

  첫 번째 심사자는 내 논문의 특이함을 두 번째 심사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의 논문의 약점은 바로 가설에 방향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사회과학의 논문에서는 "A가 증가하면, B가 증가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A는 이유가 되는 독립변수, B는 결과가 되는 종속변수가 된다. 그러나 내 논문에서는 A는 B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가설이었다. 사실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A가 있으면, B는 증가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주제에 관한 논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이것을 검증한 논문이 없어서 통계 분석을 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 번째 심사자의 말은 "영가설(null hypothesis)을 제시하는 것이 이상하거나 관습적이지 못할 수 있지만(unconventional), 본 논문의 특성이 전형적인 pooled OLS의 결과를 반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understandable)"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심사자는 A가 아닌 다른 변수의 영향력이 있을 수도 있다며 가설은 무조건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특정한 변수를 제시했다. 그래서 다른 Z가 B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그 날 밤 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통계 분석 결과 Z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Z를 포함하는 것이 A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5월 24일 새벽, 어차피 더 고쳐봐야 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결과를 최대한 겸손하게 적어서 보내려고 노력했다. 심사자의 주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추가로 통계 분석을 수행하였지만 본 논문의 가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영가설을 제시하는 논문이 정치학에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논의가 기존 연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담백하게 적고자 노력했다. 심사진에 도발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나의 분석의 결과가 도드라질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나의 수정이 충분했을까. 여러 번 리젝을 당하면서 깎인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번 투고가 꼭 성공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바람을 담아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두 번째 심사자가 준 칭찬이 좋아서 캡처 뒤에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것을 받아서 좋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나의 역량을 더욱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독립적인 연구자일 수 있을까. 해외 저널에 꼭 단독으로 하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잠이 더 안 오고 걱정만 늘었다.

  여러 번 리젝을 당하고 이 저널에 낼 때는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저널은 국내의 어느 대학과 해외의 유수 연구소가 함께 발간하고 있는 저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운영은 국내에서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편집진하고 교신을 주고받다보니 나의 연구 분야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이 Associate editor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이 직접 편집의 모든 것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니까, 이 저널도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수업 시간에 읽으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이 학자가 associate이라니, "그래, 이렇게 도전한 것만 해도 어디야"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로했다.

  2022년 6월 13일, 드디어 심사 결과가 나왔다. 학술지 편집진은 수정에 만족하였으며 게재 확정을 하기로 하였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대학원 동료들과 강남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박사학위에 관심은 없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었다. 수료만 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임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었다. 해외 저널에 게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될 것이라 생각하니까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았었나보다. 투고의 기간이 길어질 수록 나의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이제까지 겪었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논문을 쓰던 순간이 2020년이었다. 석사학위논문의 부분을 잘라서 가설을 만들고 투고를 시작했다. 여러 번의 투고를 지나면서 가설도 바뀌고 분석의 방법도 바뀌었다. 주요 변수의 측정 방식도 바뀌었다. 처음 시작과는 사실 다른 논문이 되었기 때문에 무슨 의미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여러 학자의 피드백을 중심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더 만족스럽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논문을 쓰고 코멘트를 받다보면 아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라면 논문을 아예 포기하고 다른 것을 쓸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상황을 모두 지나온 것이니까, 지금의 나를 칭찬하고 싶다.

  6월 30일부터 Sage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최종 편집의 작업을 진행했다. 오타와 문법에 관해서 출판사에서 꼼꼼하게 확인해주었다. 대부분 편집간사가 확인하는 대부분의 국내 학술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든 편집 의견을 출판사로 전달하고, 드디어 7월 6일, 학교로 향하던 시내버스 안에서 나의 논문이 출간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ORCID에도 등록되었다는 이메일을 확인했다. 나의 마음 고생은 그렇게 녹아내렸다.




  이렇게 2년에 가까운 투고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점은 사뭇 새로웠다. 내가 지금까지 집착했던 일을 이루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내 논문은 어디서든 받아줄 것이니 1년이나 2년동안 결국 여러 학술지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초고를 탈고한 그대로 투고를 성공할리는 없으니 여러 의견을 받아서 고치고 또 고쳐서 더욱 정교한 논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얼마 전에 리젝을 당해서 기분이 참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받아들일 수 있는 심사 결과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심사 결과를 너무 바로 보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끝까지 버텨서 더 정교한 논문을 만드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에 나를 위해 코멘트를 보내주고 도와주는 대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투고 성공 이후, 이전에 코멘트를 받았던 고려대학교 김남규 교수, 조지 워싱턴 대학의 Michael K. Miller, 이탈리아의 Andrea Cassani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이런 결과를 당신 덕에 받을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특히 마이크와 안드레아는 답장에서 자신이 본 이후로 훨씬 정교한 논문이 된 것 같아서 기쁘다고 이야기해줬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논문도 결국 더 정교하게 된다면 어디서든 투고될 것이니 끝까지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논문을 쓴다면 여러 학자들에게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할 것이고, 그를 바탕으로 더 정교한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석사과정에만 해도 나는 고려대학교 학부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늘 석사과정 동료들을 이겨야 할 사람으로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학력에 대한 자격지심을 떨치기 위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같은 주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자신의 논문을 정교하게 쓰려면 교수에게 이쁨을 받는 것보다 결국 코멘트를 더 많이 주고 받아서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비로소 박사과정에 진학 이후라니, 나의 어리석음이란. 그래서 지금은 대학원 동료들과 앉아서 술을 마시며 논문 이야기를 하고, 지금 작업중인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의견을 묻고 있다. 내 주위엔 참 좋은 동료들이 많다.

  나는 여전히 나의 박사학위 취득 자체에 욕심이 없다. 석사과정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논문 쓰는 작업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견을 만들고 그것을 정교하게 하여 다른 사람과 토론을 주고받는 일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결국 오래 버티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논문을 쓴다면 박사학위도 결국 따라오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건강이다. 나의 목이 거북목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너무 오래 앉아서 살이 찌는 일이 없기를. 그렇게 관리하면서 천천히 한 발짝 나가보다면 다시 다른 해외 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목표가 생겼다. 2년 안에 더 좋은 해외 학술지에 투고를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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