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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an 08. 2024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논문을 쓴다

대작에 집착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내가 대작을 쓸 수 있을까요?


  석사과정에 입학하고 지금은 없어진 기초공통 수업을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기초공통 수업은 우리 학과에서 전원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었다. 그리고 그 교수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대신 기초공통 수업의 장점은 내 전공에서의 고전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전공은 정치학인데, 알렉시스 드 토크빌부터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라면 무조건 읽어봐야 하는 고전과 같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요약을 잘해가서 교수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이었다. 교수는 출석부를 보고 학생들을 부르고 어느 페이지의 어느 부분을 읽어보라고 한 뒤, 이게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했다. 그리고 답을 잘하지 못하면, 특히 세 번까지 대답을 하지 못하면 수업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나는 수업에서 나가라는 말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늘 무서운 수업이었다.

  석사 동기들과 다 같이 무서운 수업을 해쳐가며 고전을 다 읽다 보니 동지애도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다. 그렇게 다 같이 고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정치학의 역사를 고루 보면서 토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생겼다. 옛날부터 연구의 궤적을 짚어가다 보니, 연구를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좋은 연구란 결국 좋은 연구 질문과 흠이 없어 보이는 논리를 구축한 논문이나 단행본을 뜻한다. 연구 질문을 생각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고전이 생각나고, 그럼 이 연구는 이미 있는 주제인 것 같은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아니면, 연구 질문을 하나 찾았더라도 흠이 많아 보여서 자신감을 결여하게 되고, 그 논문을 쓰지 않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작이나 흠이 없는 논리가 아니라면 논문을 아예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다른 사람의 논문이나 단행본은 정말 멋있어 보이는데 나의 글이 초라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쓰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게 석사 4학기가 가까워지고, 수료하고 1년, 2년 이렇게 지난다. 다른 사람들은 뭐, 학술지에 게재도 하고 하나씩 다 한다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깎아먹게 된다. 부모님은 나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자꾸만 석사 졸업은 언제 하냐고 묻는다. 비단 석사, 박사 졸업에 대한 질문은 아니어도 잔소리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작 쓰기가 아니고도 나를 압도하는 게 많아!


  대작만 쓰는 것이 모두가 아니다. 내 주위 대학원생들은 어쩜 이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지 말이다. 다들 영어, 논문 주제 준비도 잘해서 유학을 잘만 가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수업 시간 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요약도 잘하고 말도 어찌 저리 막힘없이 잘하는지, 대단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리고 교수들에게 공격을 당하다 보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교수가 나를 지도를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애초에 논문을 척척 써오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대체 쓸모가 무엇일까. 거기에 공부 외적으로 내 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면 다들 연봉이 얼마에, 결혼을 언제 한다느니 이야기를 한다. 나는 여기 연구소나 학과에서 일하면서 쥐꼬리만큼 용돈이나 벌고 사는데 말이다. 대학원생으로 살면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였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점점 사라진다. 친구들 만나면 그냥 술이나 진탕 마시고 나중에 계산한 친구한테 1/n 금액을 송금이나 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논문을 잘 못 쓰는 사람인 것 같다는 자괴감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이게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의 절망의 골짜기(valley of despair)일까. 나는 대체 무슨 논문을 써서 여기 있는 것일까. 공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결국 잘해야 올 수 있는 곳이 대학원이었을까. 모든 것이 후회된다. 학부 졸업하고 그냥 취직이나 할 것을, 뭐 한다고 바로 여기 들어와서 나의 취업 기회를 깎았을까. 아니다. 취업을 한다고 해도 잘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오히려 취직한다고 세월을 보냈으면 내 성격에 더 우울해했을 수 있다. 이렇게 그래도 논문이라도 읽고 대학원에 소속이라도 걸어뒀으니 그나마 덜 우울한 거지. 내 우울함은 결국 나의 탓인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탓도 아니다. 석사과정생이 처음 들어와서 뭐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가. 박사과정생도 사람인데 실수 한 번 할 수 있지. 수업에선 교수들은 다 왜 저렇게 무서운 것이며 엄격한 것인지 모르겠다. 좀 곱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연구 과제도 하고, 학교 행정도 하다 보면 그런데 성격이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위로하는 것은 술이나 연애, 혹은 연애도 아니라면 취미밖에 없다.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딜 여행 간다거나 그러면 대학원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나를 압도하는 것으로부터 결국 벗어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충전하고 나면 다시 압도하는 것들로 돌아간다.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위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 다 싫고 이래서 싫고 저래도 싫지만 나는 대학원에 그래도 있다는 결론이다. 대학원에 그래도 무엇을 이유로 버티고 있는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마음에서 아닌가. 물론, 졸업 이후 취직이 잘되는 학과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다들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들어오지 않는가. 결국 그런 힘들이 대학원에서 버티게 하는 것인데, 긴 기간을 두고 유지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대학원생, 특히 석사에서 박사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어떤 지점이 중요할까?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절망의 골짜기 다음은 깨달음의 비탈길(slope of enlightenment)이다. 깨달음은 무슨 깨달음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못났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것도 참 중요한 명제인 것 같다. 나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왔다. 그리고 학자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하나도 못 이루고 여기서 자존감과 자신감만 깎이고 있다니. 거기에 더해서 내가 못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아, 그래서 비탈길인 것인가. 내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비탈길이 가팔라지니까 그런 것인가.

  내가 못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는 우울함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지점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못난 지점이 어떤 지점인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결국 여기서 내가 못난 점은 논문 쓰기일 가능성이 크다. 내 논문 쓰기가 못난 것이지, 내가 못난 게 아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오징어처럼, 아니 갑오징어처럼 생겼을지라도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무슨 문제인가. 내 논문 쓰기가 못난 것이지.


그런데 난 논문 쓰기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 논문 쓰기가 못난 이유는 무엇인가. 학계에서 원하는 논문 쓰기의 스타일이 분명 있다. 교수들은 모두 거기에 맞춰서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투고를 한다. 내 논문도 거기에 맞춘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럼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약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내 논문을 고치는 점이다. 내 논문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선 약점을 방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을 아무거나 다 들으면 논문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어할 수 있는 점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논문의 논리 틀을 갖추는 일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학술지가 내 논문을 또 걷어찬다면 다른 학술지로 옮기면 된다. 혹은 논문에 너무나 큰 오류가 발견하여서 포기할 일이 생길 것이다.

  결론은 결국 내가 논문 쓰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못났다는 것이 아니라, 내 논문 쓰기가 못난 것이니까 그것을 고치면 해결되는 일이다. 연구 질문을 잡아내는 일은 수업에서 훈련받은 일이다. 그리고 그 연구 질문에 대해 교수에게 어떤지 묻는 것이 무섭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주위 대학원생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그것이 재밌어 보이는지 아닌지 알려줄 것이다. 그것을 홀로 쓰기 시작하다 어느 틈에 교수에게 소개해줄 일도 생기면 더 좋겠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좋은 것이 걸려 교수의 눈에 띄게 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논문 쓰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논문 쓰기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논문이 완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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