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버섯 좋아' 인간의 버섯 탐험기

도서 '미코, 버섯의 모든 것' 서평

by 안온



버섯 좋아 인간의 고해성사


무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땅속의 세계처럼, 숲속을 걷는 사람은 나무를 보고, 가지 꼭대기에 새의 둥지가 있을 걸 짐작하며, 나무껍질에 난 구멍을 보고 딱따구리가 다녀간 것을 알아챕니다.
_6권 두 번째 페이지 중에서


나는 ‘버섯 좋아’ 인간이다. 우선 버섯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칼칼한 버섯전골이나 알찬 버섯 모둠이 있는 샤브샤브다. 주로 가늘게 찢은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새송이버섯을 잔뜩 먹을 수 있다. 얼큰한 국물엔 느타리버섯이, 맑은 국물엔 새송이버섯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라탕이나 마라샹궈의 소스가 잔뜩 묻은 버섯도 좋다. 이땐 부들부들하면서 오독오독한 (백)목이버섯이 필수다. 다른 버섯에 비해 향이 독특한 표고버섯도 괜찮은 선택지다.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땐 반드시 양송이버섯을 챙긴다. 고기를 구워 먹다가 버섯 안에 고인 물을 후루룩 마신 다음 다소 퍽퍽한 식감의 버섯을 '왕' 베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표 햄과 버섯 볶음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버섯에 배인 짭짤한 가공육 맛이 꽤 잘 어울린다. 이렇게 ‘버섯’ 하면 줄줄이 떠오르는 음식이 많건만, 버섯은 채소라서 먹으면 건강하다고들 하는 건지, 이 많은 버섯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에 답하라면 어느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런 나 같은 ‘버섯 좋아’ 인간들을 위한 책이 있다. 제목부터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버섯이다. 버섯들의 ‘버섯 독립선언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시각에서 버섯을 그저 먹거리로만 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앞으로 어디 가서 진짜 버섯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잘 몰랐던 버섯의 얼굴


“우리는 식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버섯입니다!”
지구에서, 버섯균 달력으로 8억 6천만 2,2026년에.
_〈버섯 독립선언문〉 중에서


책 제목에서 낯선 단어인 '미코(MYKO)'는 곰팡이, 버섯을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에서 비롯한 말이라고 한다. 버섯은 위 버섯 독립선언문에도 쓰였듯, 식물이 아닌 ‘균류’에 속하는 생명체이다. ‘균류’라는 단어도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곰팡이’도 균류에 속한다. 인간의 삶에서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는 버섯과 생활 공간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걸 넘어 인간에게 여러 해악을 끼치는 곰팡이가 같은 균계에 속한다는 사실은 신기하다.


균류는 약 9억 년 전에서 5억 7천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약 30만 년 전이다. 버섯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행성에 뿌리내린 존재인 셈이다.

이 오래된 생명체의 세계에는 정말 다양한 이름이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보는 수많은 버섯을 만났다. 버섯 이름은 마치 성과 이름처럼 속명(친척 관계가 있는 버섯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과 종명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버섯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양송이버섯의 학명은 ‘Agaricus bisporus’이다. 여기서 ‘Agaricus’는 '주름버섯'을 의미하고, 종명인 ‘bisporus’은 ‘포자가 두 개인’을 의미한다.


이렇게 버섯 이름을 들여다보면 ‘이 버섯은 저 버섯과 친척 관계이겠구나’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겠구나’와 같이 그들의 관계와 특징을 알 수 있다.

버섯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더라도, 어떤 이름들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감상을 안겨준다. 버섯이 있을 풍경이 그려지기도 한다. 무리우산버섯, 노란털벚꽃버섯, 화경솔밭버섯, 해그물버섯, 살구버섯…. 이들은 각기 다른 이름만큼이나 사는 환경, 독성 유무, 자라는 시기, 좋아하는 나무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이 책 속의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이름을 불러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낯선 세계를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버섯 세계의 편집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10권의 버섯 잡지를 엮어 만들어졌다. 버섯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부터 버섯과 균류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접점에 관한 이야기, 버섯을 둘러싼 동식물에 대한 정보, 버섯으로 할 수 있는 실험 활동까지. 고정 코너와 특별 코너를 넘나들며 한 페이지를 다양한 주제로 채운 흥미로운 정보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 세계의 책과는 달리 페이지 번호를 1쪽부터 순서대로 적지 않았다(2권이 시작되면, 페이지 번호는 1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펼치는 대로, 끌리는 글이나 그림을 따라 읽으라는 버섯식 독서 권유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간 버섯이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짧다 못해 잠시 스쳐 지나는 것과 같을 내 삶에서 만난 버섯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키우던 버섯, 어느 숲을 가든 나무 기둥이나 아래 피어 있던 각양각색의 버섯들, 운 좋게 숲 해설을 들었던 날에 해설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독버섯의 화려한 생김새까지. 분명 그때의 나는 그 버섯들을 생각없이 흘려보냈었다. 친숙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의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딜 가든, 무얼 먹든 나는 버섯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을 조금 더 오래, 더 다르게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버섯들이 기꺼이 내어준, 이 98쪽의 그림책 덕분에 말이다.




*추신. 이 책에서 10권 여섯 번째 페이지, 특별 기획 ‘미스 버섯 유니버스 인기상을 뽑아 주세요’는 이 책이 가진 유머와 버섯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버섯 좋아’ 인간이 아니라, ‘버섯 싫어’ 인간에 가깝다면, 이 페이지에서 이 책을 출발해도 좋겠다.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의 또 다른 리뷰가 궁금하다면♪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836


작가의 이전글예술은 죽었다 - 다시 예술 앞에 멈춰 서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