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몇 가지 심리검사를 하게 되었다. 목회학연구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꼭 해야 하는 심리검사다. 심리검사에서 어렸을 적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었다. 성실히 대답하고자 어릴 적 모습들을 계속 떠올리다 보니 잊고 지냈던 많은 일상들이 떠올랐다. 그중 기억나는 장면 하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에서 저녁까지 놀았던 기억이다. 각자 집 베란다에서 저녁 먹으라고 이름을 불러야 우리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당시 엄마 아빠는 서울에서 지내고 계셨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날 돌봐주셨기에 베란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는 늘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지닝아 밥 무라~”하고 부르면 친구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튼, 심리검사지를 다 작성한 후에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느라 늦게 잠을 청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다 보니 별 수 없이 선잠을 잤다. 그리고 그새 꿈을 꿨는데,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건강한 모습의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면서 집에 들어오셨다. 난 할머니를 크게 불렀고, 할머니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왔다.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했는지, 계속 혼자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듣고 계셨고 계속 웃고 계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할머니에게 내 아픈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펑펑 울었다. 누구한테도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며 아이처럼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할머니는 나를 쓰다듬어주셨고 미소 짓고 계셨다. 한참을 울다가 어느 순간 이게 꿈이란 것을 점점 인지하게 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꿈에 할머니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었고 할머니를 어루만지던 내손은 이불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 이 꿈을 잊지 않기 위해 할머니를 몇 번이나 불렀다. 내가 할머니 꿈을 꾸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씻으면서 까지 할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다 보낸 지금에서야 할머니 꿈을 꿨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어린 시절을 잠시 생각했던 것만으로 꿈에서 할머니를 이토록 생생하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오늘 꿈으로 새롭게 알았다. 내가 할머니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가끔 이렇게 할머니 꿈을 꾸곤 하는데, 오늘의 꿈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아직은 기억하고 있지만, 나이 먹을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를 꿈에서 꼭 다시 들어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 저 많이 컸죠? 저 잘 지내고 있어요. 고마워요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