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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Jan 19. 2024

Automatic for the People

by R.E.M (1992)

미국에서 생긴 일


 미국인들을 만나면 어색해. 미국이 싫은 것은 아니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니야. 그저 미국식 인간관계가 나와는 영 맞지 않는달까? 처음 본 사람과도 통성명을 해야하고, 친한 척 노력해야하며, 과장 섞인 억양과 제스쳐를 곁들여야 하는 것이 싫어. 나는 그저 물건을 사고 싶을 뿐인데, 어디서 왔냐고 먼저 묻는 점원들과 더이상 상대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날 샌디에이고의 한 레코드점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어. 덥수룩한 흰수염에 안경과 빵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그 레코드 가게는 척 보기에도 노포여서 마음에 들었지.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그 할아버지 주인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어. 그는 묵묵히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었지. 때묻은 노트는 꼬질꼬질했고, 그 흔한 컴퓨터도 보이질 않더라.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음반을 앞에 두고 골똘해 있었는데, 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지.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바닥에 널린 중고 CD 박스 앞에 자리를 잡았어. 폐 속 가득 먼지가 들어찼지만 그 것들을 뒤적이는 재미가 말도 못했지. 세월을 낚는다는 낚시의 기분이 그러할까? 특별히 찾는 물건도 없이, 돌아갈 시간도 신경쓰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헤집다보니, 예상대로 몇몇 녀석들이 걸려들었어.

 매장을 나서며 Grand Funk Railroad 의 《Shinin’On》과 De La Soul 의 앨범들, 그리고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을 계산대로 들이밀었어. 주인 할아버지는 노트에 또 무언가 기록하더니 갑자기 내게 말했지.


“사진의 별은 어느 모텔 건물에 달려 있던 거야”


 그리고 그는 《Shinin’On》 앨범 속지에서 안경을 잘라내면, 커버를 3D로 감상할 수 있다며 손으로 안경 모양을 만들어보였어. 또, De La Soul의 컴필레이션 CD를 들고는 ‘저 쪽에 개별 앨범도 있는데 사지 않을래?’ 라고도 덧붙였지. 나는 웃어버렸어.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 미국 여행 중 가장 진심어린 파안대소를 했지. 그런 나를 보고 모자 쓴 백발의 안경잡이 할아버지도 함께 웃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웃돈을 얹어 그 음반들을 챙겼어.


 남은 일정 내내 《Automatic for the People》을 차 안의 CD 플레이어에 걸어두었어. 첫 곡의 제목부터 〈Drive〉였지. 어쿠스틱 기타가 스산히 울려퍼지는 인트로. 앨범을 지배하는 질감은 바로 그 철로 된 현의 까칠함이야. 그러나 그 까칠함이 연주하는 음악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어. 사막의 황량한 풍광이 끝없이 펼쳐지는 미 서부 도로를 여행하면서 듣기에는 그만이었지.

 어느 날엔가는, 아내가 옛날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 다녔다는 학교도 찾아 갔어. 그렇게나 좋아했다는 단골 타코집의 요리도 먹었지. 아내는 웃으며 그 때만큼 맛있지는 않다고 말했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르던 곡은 〈Everybody Hurts〉. 나는 아내에게 언젠가 봤던 그 곡의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했고, 차가 밀리면 그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차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실없는 소리도 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는 전혀 밀리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웃으며 즐거웠지.

 라스베이거스에서 LA로 장시간 밤 운전을 하면서 〈Nightswimming〉을 들었던 순간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2차선으로 된 도로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고, 나는 오직 상향등에만 의지하여 천지구분도 되지 않는 어둠 속을 달렸어. 〈Nightswimming〉을 들으며 심해를 유영하는 잠수정을 운전하는 상상을 했지. 이따금씩 지나치는 커다란 트럭들을 고래나 상어라고 여기며.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어.


 나는 이 앨범, 《Automatic for the People》을 들으며 그 해의 미국을 생각해. 그 날의 레코드 점과 그 여정을 떠올려. 호텔을 떠나면서는 깜빡 잊고 호텔 직원에게 팁을 주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욕설을 하며 우리 차 트렁크를 걷어 차더라. 그제서야 나는 미국과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었어. 친절한 척 하느라 고생했소. 겉으로 보이는 미국 사람들의 상냥함 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그 내면들이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들의 진실한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Kurt Cobain이 사망할 당시 《Automatic for the People》을 듣고 있던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수록곡 중 〈Man on the Moon〉은 미국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Release Date    October 6, 1992

Recording Location    Bearsville Sound Studios, New York, NY / Bearsville Studio, Beatsville, NY / Bosstown Recording Studios, Atlanta, GA / Criteria Recording Studios, Miami, FL / John Keane's Studio, Athens, GA / Kingsway Studio, New Orleans,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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