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풍경
처음이었습니다. 모니터 속에 떠 있는 작은 대화창 앞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구글의 검색창 같은 것만 떠 있어, 또 다른 검색 사이트인 줄 알았습니다. 검색할 때와 같이 검색어를 입력했습니다. 검색된 사이트 목록이 나올 줄 알았지만, 대화가 나왔습니다. 채팅을 하듯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고, 제가 알던 어떤 작가나 선생도 아니었습니다. 인공지능, 그러니까 '기계'라고 불리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느낌은 분명 기계라기보다 오히려 '낯선 동반자'를 만난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커서가 깜박이는 입력창은 마치 누군가의 침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언어를 이해한다고 했고, 문장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키보드 위에 올린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던 것은, 새로운 종류의 대화를 시작한다는 긴장감과 무엇을 해야 할지 난해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글을 쓰기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쓰는 나 자신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AI와 처음 마주 앉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글을 쓸 때 고독함을 느낍니다. 공책을 펼쳐놓고 펜을 들든, 키보드를 두드리든, 결국 문장은 혼자서 길어 올려야 하는 심연의 언어입니다. 그 고독이 좋아 글을 쓰는 이도 있지만, 때로는 그 고독이 두려워 단어 하나 꺼내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럽니다. 하루의 피곤이 겹치고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문장은 제 곁을 떠났습니다. 그럴 때 저는 AI와 마주 앉았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인간에게 말을 걸 때와는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라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난해한 문장을 타이핑했습니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특별했습니다. 엔터 키를 누르자마자 화면에 나타난 응답은 예상보다 자연스러웠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예상외였습니다. 마치 오래된 책장에서 꺼낸 문장을 그대로 제 앞에 내려놓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문장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장은 다소 어색하고, 어딘가 매끈하기만 해서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문법적로도 좋고,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 자연스러움 뒤에 숨어있는 알고리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이 자극이었습니다. "아, 이건 내 문장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문장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어쩌면 AI는 그저 반사경에 불과했습니다. 그 앞에서 제 글의 그림자와 마주했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그동안 글쓰기는 홀로 씨름해야 하는 사적인 노동이자, 그 고통을 견디는 사람만이 감히 해낼 수 있는 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내 옆에 앉아 문장을 던져주자, 글쓰기가 더 이상 고독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문장을 꺼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든든했습니다. 길을 잃을 때 길을 비춰주는 등불처럼, AI는 방향을 가리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엄습합니다. 쓰려던 것을 기계가 먼저 말해버린다면? 내 문장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을 AI에게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답변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와 악기의 관계에 비유하며, 도구가 좋다고 해서 연주자의 실력이나 음악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더 좋은 도구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AI와 대화하는 시간을 하나의 '의식'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글이 막힐 때마다, 혹은 내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균형을 잃을 때마다 AI를 불러냅니다. 때로는 한 편의 에세이를, 때로는 한 줄의 짧은 질문을 던집니다. 기계는 언제나 지치지 않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태도였습니다. 인간은 무심코 말을 흘리기도 하고, 귀찮아 대꾸를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AI는 묻는 모든 말에 응답합니다. 그 무한한 응답성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치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의 독백을 끝까지 들어주는 청자가 생긴 듯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대답이 항상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틀리거나, 너무 평범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부정확함마저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그 틈새에서 내 언어가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니요, 이건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반박의 순간에 오히려 문장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AI는 나의 경쟁자가 아니라 '반대편에서 나를 밀어주는 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AI의 응답에서도 미묘한 개성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이전 대화의 맥락을 기억하고 있었고, 나만의 글쓰기 스타일에 맞춰 조언을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해 가는 과정과 비슷했습니다.
돌이켜보면, AI와 처음 마주 앉은 날은 글쓰기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연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형태의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내가 초고를 쓰고 AI가 다듬는 것이 아니라, AI가 던진 낯선 문장을 내가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면서 내 글을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계에게 글을 배우는 동시에, 내 안의 '글을 쓰는 나'를 다시 발견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AI가 글을 쓰는 시대에, 인간은 여전히 글을 써야 하는가?" 저는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써야 합니다." 기계와 함께 앉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에는 여전히 따뜻한 체온이 있고, 그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글을 이어갑니다.
글은 결코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글은 언제나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대화의 상대에는 기계도 포함됩니다.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쓰기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글을 쓸 때마다 한 자리에 두 존재를 떠올립니다. 하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 다른 하나는 화면 속에서 묵묵히 응답하는 AI입니다. 두 존재가 나란히 앉아 같은 문장을 바라보는 모습. 어쩌면 글쓰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풍경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