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방학 때, 내가 일이 많아서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2주를 보내셨다.
엄마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아무런 맥락 없이 나온 엄마의 말 “나도 너희들을 좋은 말로 키울걸 그랬어”
정말이지 사전에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자기 들려온 그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 엄마, 이거 반칙이잖아. 사과도 안 하고 이렇게 훅 들어오면 어떡해?
- 그걸 이제 알았어? 엄마가 진짜 우리한테 너무했지.
- 어떻게 어린 우리들한테 그럴 수가 있었어? 나는 내가 애를 낳아보니 더 이해가 안 돼
-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용서해줄 줄 알아?
등등등.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일단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멈췄다.
아마도 엄마의 그 말속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나와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 지금 돌이켜보니까 그렇게 못한 게 아쉬워?”
“그렇지. 아쉽지. 좋은 말로 했어도 됐는데... 우리 때는 애들은 무조건 잡아야 되는 건 줄 알고 혼내고 때리고 그랬지. 나도 그렇게 컸고. 너희 외할머니는 나보다 더 했어....”
“그래. 그랬지. 나도 외할머니한테 많이 혼났었어”
한참 동안 엄마는 지금에서야 느끼는 아쉬움, 안타까움, 후회를 표현하셨고 나는 묵묵히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다.
엄마는 1호가 태어나기 1주일 전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7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1호와 2호를 키우면서 엄마와 나는 수없이 부딪쳤다.
나는 2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큰 아이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고 체벌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호가 태어나고 1호는 고집이 점점 세어지고, 아이의 표현방식은 내가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키워져 왔던 방식, 내가 아는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을 알기가 어려워서 비폭력대화를 배웠고 되도록 화내거나 혼내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의 말을 듣고 나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늘 너무 오냐오냐 한다며, 그렇게 하면 아이들을 망치는 길이라고, 아이들은 좀 때리고 혼내고 그렇게 커야 한다고 누차 얘기하셨고 그럴 때마다 나의 육아방식은 흔들리기도 했고, 나는 화가 났다가(그래서 나한테 그랬던 거야? 그렇게 키워지면서 내가 행복했을 것 같아?) 외로웠다가 두렵기도 했다(정말로 아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걸까?). 가끔은 그런 일이 육아, 그 자체보다 더 힘들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엄마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키워진 내가 갖는 어려움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도 너희들 좋은 말로 키울걸 그랬어"
그래서, 이 말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선물이었다.
이 말은, 나의 육아방식을 인정하는 최초의 말임과 동시에, 엄마의 미안함을 표현한 최초의 말이었다.
더운 여름,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며 툭 튀어나온 엄마의 진심.
나는 이 순간을 내 삶의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가 떠오르는 말들을 그냥 내뱉지 않고 (사실 나는 엄마한테 맺힌 거 진짜 많았는데)
일단 멈추고 엄마의 말에 귀 기울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엄마가 우리를 잘 키우고 싶었다는 것, 그렇지만 다른 방법은 몰랐다는 것,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있다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엄마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겠지만,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얘기이기도 했다.
멈추면 더 좋은 순간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반사신경처럼 튀어나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하며 산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잘 살아진다. 사실 대체로 별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번 실수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을 모방하며 알게 된 방식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멈추면 더 좋은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잠깐 멈추고 지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 상대방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 인생의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편안해졌고, 행복해졌습니다.
제 자신을 수용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에 감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수를 되풀이하면서요.
다만, 이 글이 누구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