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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Dec 21. 2020

코로나 시대에 임신을 하는 일  

사회적 약자의 시선 

새로운 식구와 이사


 첫 신혼집에서 둘 뿐이던 식구가 어느새 넷으로 늘었다. 아직 너무 초기라 주변에는 공표하지 않았지만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 이유에서였다.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 경사스러운 일이 그저 기쁘기만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코로나가 바로 삶의 언저리까지 찾아온 이유에서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산모가 제대로 된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해 아이를 사산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니 불안함이 더 증폭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같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전셋집 만기가 다가오고 있고 남편은 베트남 주재원으로 파견을 떠나기로 했으니 우린 서울살이를 완전히 정리하는 이사를 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것이었다.




 서울에 연고도 없고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는 가족들이 있는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특히 몸조심을 해야 한다며 누워있으라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이사 날짜가 다가온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먼지를 마시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친정까지의 거리가 400km를 훨씬 넘다 보니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챙겨가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박스에 넣다 보니 이미 물건들을 10박스를 훌쩍 넘어버렸고 용달을 불러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더 이상 가지고 갈 수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은 당근 마켓을 통해 하나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분리수거를 끊임없이 하고 쓰레기를 아무리 가져다 버려도 어디서 그렇게 많은 쓰레기들이 다시 쌓이기 시작하는지 참 미스터리 한 일이었다. 고작 2년이란 시간을 머물렀을 뿐인데 그 잠시의 시간을 위해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욕심을 내며 살았는지를 반성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연말을 기점으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의 걱정은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로 혹시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었다.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으니 당분간 방에서 자체적 자가격리를 하는 게 좋겠다는 엄마와 고향 친구의 말에는 기꺼이 알겠노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도 서울에서 온 사람을 썩 반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덜컥 겁이 났다. 그전까지는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며 살아왔던 나였지만 사회적 약자가 된 이후로는 대중교통을 타는 일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든 일들이 꺼려지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시켜먹다 보니 분리수거를 내는 날마다 양 손 가득한 플라스틱 용기를 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 엄마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는 위대한 일 


 이런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도 엄마가 되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말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는 중이었다. 하루에 4잔씩 마시던 커피는 냄새를 맡기만 해도 두통이 생겨 멀리하게 되었고, 매일 한잔씩 마시던 와인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생겼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하지만 매 끼니를 습관처럼 챙겨 먹고 대신 탄산수를 마시며 어려움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임신하는 순간을 대비해 운전을 조금 배워둔 것이 큰 도움이 되어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신 꼭 나가야 하는 곳은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일은 집순이가 아닌 나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미션이었지만 뱃속의 생명이나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홀로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리고 묵묵히 커나가고 있는 작은 생명을 생각하면 조금은 씩씩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소 나이가 39살이라 임신을 서두르라고 했던 병원에서의 조언을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 엄마가 된 것은 잘 된 일이었다. (생각보다 난소 나이에 상처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한 방에 성공했습니다...)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슬프고 답답하지만 우리는 결국 코로나 시대를 이겨낸 더 씩씩하고 강한 부모가 될 것이라고 믿으며 내일의 희망에 용기를 냈다. '그 때는 참 힘들었지'라고 덤덤하게 지난 몇 년의 겨울을 이겨낸 우리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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