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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11. 2021

임신이 멈춤이 아니라 성장의 시간이길

임신  그리고 그 후의 일상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여성질환이 많아 임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미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고 가족력도 있어서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기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를 그만두기 전, 회사에서 받은 건강검진 진단표에는 다시 재발한 자궁 내막증과 난소 이상으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추신이 달려 있었고 직접 방문한 병원에서는 난소 나이가 39살이니 임신 계획이 있다면 늦추지 말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 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한데 아이를 가지기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사실은 꽤 심란하고 괴로운 심정이었다. 잦은 스트레스와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않았던 일, 몸을 혹사하며 지내왔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였으니 원망을 할 곳도 나 자신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여름에서 겨울로 흘러가는 동안 잠시 내려두었던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고 남편을 따라 베트남으로 떠날 준비를 하나둘씩 하고 있었다. 그 언저리 즈음에는 매일 마시던 와인도 컨디션 저하로 인해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달이 훨씬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기력을 의심하며 '혹시..'라는 생각으로 해본 임신 테스트기에는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같은 표정을 지어 보여야 했다.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생기면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꽤 일찍 찾아온 경사였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인지라 서울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4년 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 임신한 아내를 두고 베트남으로 가야 하는 그의 마음도 결코 편하진 않을 것이니 나는 일찌감치 집으로 내려와 마음을 추스르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방학기간 동안 혹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 아주 잠깐씩 집에 머무르긴 했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1년 그리고 길게는 2년 동안 고향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남편이 있는 베트남에 자유롭게 오갈 수 없을뿐더러 아기를 키우는 인프라도 베트남보다는 한국이 더 낫다는 이유에서 베트남에 가는 것도 장기 보류 상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잘 알지만 이따금 서러운 감정이 드는 건 별 수 없는 모양이다. 베트남어 책도 펼쳐보지 않은 지가 벌써 한 달째. 공부를 해도 갈 수 없으니 소용없다며 으레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임신을 한 기간 동안은 감정이 더 예민해서 작은 것들에도 섭섭해지곤 한다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주 떠오르는 걸 보니 호르몬이란 녀석이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집에 있다가도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동생에게 부탁해야 하는 일이 꽤나 미안해지기 시작했는데 추운 밤에 도로가에 있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일은 부모님께 등짝 스매싱을 맞기 십상이라 퇴근 후 밤 열두 시 언저리에 돌아오는 동생을 기다리다 보면 나는 이미 잠들기 일쑤였다. 









 부랴부랴 살림을 정리하고 돌아온 고향. 기존에는 내 한 몸 덜렁 왔다 머물고 가는 일이 다였지만 이젠 홀 몸이 아니기에 책임이 조금은 무거워졌다. 매 끼니를 충실히 잘 챙겨 먹는 일 그리고 심바(반려견)가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매일 산책을 나가 주는 일이 나의 주된 일과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으슬으슬한 몸과 지끈거리는 두통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임신을 하고 난 뒤에는 일을 다니는 모든 워킹맘들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점심시간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를 묻는다. 포도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퇴근길에 과일 가게에 들러 샤인 머스켓을 세 송이나 사서 들어왔다. 내가 사드려도 모자랄 나이인데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 엄마가 오면 밥 먹을 준비를 하는 것이 꽤나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이 나이에, 임신까지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더군다나 시골에서는 더더욱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털썩..) 


 결국 나는 나에게 주어진 쉼표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로 했다. 그동안 그렇게 원 없이 하고 싶었던 글을 쓰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에 조금 더 몰두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작은 다짐.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남편이 작은 용기를 주었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엽서와 마스킹 테이프, 키링 등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내 손 끝에서 만들어낸 것들이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자존감이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는 이미 글을 쓰면서 경험해본 바이니 속는 셈 치고 나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겨울이 와 있는 동안에도 땅 속에서 새싹을 틔우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들처럼 나도 부끄럽지 않게 나만의 작은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은 분명 오랫동안 멀어져 있어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자 나만의 작은 숲을 키워내는 과정이 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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