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행정직과 책방 아르바이트 알바 두 탕 인생이 되다.
오전에는 연구소 행정직으로, 오후애는 책방 알바로
어쩌다 보니 나이 서른셋에 대학생 때도 해보지 않은 알바만 두 탕 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최근 직업 만족도를 물으신다면?? 최상입니다. 학교 연구소 행정직은 교수님들의 잔소리만 참고 이제 일을 좀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면 퇴근할 시간이 됩니다. 퇴근 후 학교에서 학식을 먹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펼쳐보고 잠 오면 조금 자다가 책방 출근할 시간이 되면 학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책방으로 출근합니다. 책방이지만 책 보다 커피와 맥주를 찾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커피 내리고 맥주 안주도 만들고 시간이 남으면 글을 쓰고 좋아하는 책들의 샘플을 읽어요. 손님이 오면 내가 좋아는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내가 쓴 책을 은근슬쩍 어필하기도 합니다. 책방 바깥으로는 천이 흐르고 그 천을 따라 걷는 사람들과 그 위로 지하철은 몇 번이나 오갑니다.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노을이 내려오는 시간에 지나가는 지하철을 보는 일입니다. 책방 사장님들은 나와 음악 취향도 맞아서 보사노바와 재즈가 매일 흘러나와요. 그렇게 책방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밖은 캄캄해져 있고 집에 갈 시간입니다.
이렇게 그냥 쭉 살면 안 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다시 회사라는 정글에 들어가기엔 너무 멀리 온 거 같아요.
그래, 프리타 족으로 살아보는 거야.
프리타 족은 어쩔 수 없는 선택
나는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니트족’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취업에 대한 생각만 없을 뿐,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프리랜서와는 또 다릅니다. 나는 일정한 직업이 없거든요. 나는 7년 전 방송작가로 프리랜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방송작가라는 일정한 직업이 있었고 메인으로는 국군방송 라디오 작가로 일하며 음악평론가 선생님 밑에서 북콘서트 일을 도왔고, 나를 좋게 보신 북콘서트 피디님이 평화방송 라디오 오프닝 원고도 맡겨주셨습니다. 고작 방송작가 2년 차인 나에게 다가온 금쪽같은 기회들. 하지만 나는 방송작가가 아닌 작사가가 되고 싶었고, 방송국 생태계에도 질렸습니다. 그 후로 고향으로 내려와 별 볼일 없는 회사를 전전하며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회사를 나오게 되고 그 후 2주간 여행을 다녀오고 내일 배움 카드제로 플로리스트 수업을 4개월 듣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백수가 된 지 어느덧 6개월. 갑자기 정신이 차려진 이유는 그동안 잘 받아왔던 실업급여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철저히 경제관념이 없는 기분파로 앞으로 당장 신용카드 할부를 갚을 돈은 나에게 없었습니다. 나는 작가사가 되고자 작사 학원비로 내가 번 돈을 거의 다 날렸거든요. 내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기고 정말 급할 때 쓸 적금은 깰 수 없고, 그렇다고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부랴부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삐빅- 당신은 속으셨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사람을 사람처럼 대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사직서를 던지며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되바라진 요즘 것들 중 하나입니다. 동그랗고 처진 눈꼬리에 순해 보이는 나의 얼굴은 어딜 가나 한 몫했습니다. 고집 없어 보이고 부리기 쉬워 보이는 맏며느리감 관상. 덕분에 서류면접만 통과하면 거의 인터뷰에서는 떨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속으셨습니다.
나는 부당한 것을 잘 못 참고 할 말은 해야 하고 끝까지 따지고 드는 부하입니다. 특히 회사같이 상하관계가 뚜렷한 곳에서 내 성격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엄마는 유치원생 때부터 말대꾸를 해대는 나를 보며 내가 퇴사를 할 때마다 니는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래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죠. 내가 부당한 것과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에 딴지를 걸 때마다 회사는 이마를 치며 아이쿠 속았다를 연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나는 음식 메뉴를 고를 때 말고는 두리뭉실한 건 딱 질색이란 말입니다. 확실하고 깔끔한 걸 원해요. 이런 나의 성격은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악의 축 아닙니까? 회사에서는 일 잘하고 잘 따지고 확실한 걸 원하는 저보다 앞에서 무조건 납작 엎드려 네 네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던데요? 그래서 저는 프리타족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