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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C Nov 21. 2023

그리스도의 계시 3

3rd, 하늘 상급 2

하늘 상급



하늘 권세의 상급

언급한 '생명나무 열매'와 '둘째 사망에서의 구원'과 '만나와 새 이름이 새겨진 흰돌'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모든 민족과 나라의 '영생구원에 관한 하늘 상급'입니다. 이어서는 '영생 구원을 받은 자가 행할 권세와 관련된 하늘 상급'을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권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기초적으로 살펴볼 것은 세례입니다. 또 그 세례를 말하기에 앞서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의 육체와 타락한 육체에 관한 성경적 지식입니다. 

'송아지 같은 둘째 생물' 2021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계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을 때 '지극하신 선과 의'로 그들을 판단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날에 선포된 예언은 메시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서 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처녀의 몸을 빌어 오신 일의 배경을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성행위'는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그 사명을 따라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이 사람의 몸을 더럽힌 이후에는, '남녀가 한 몸이 되었을 때의 그 희락'이 '단순 육체적 쾌락'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는 옛 뱀이 사람의 육신에 죽음을 이르게 한 것으로도 모잘라,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지극히 기뻐하신 그 육체를 더럽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찾은 것입니다. 

곧,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에 흠집을 내도록 '성행위를 타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본능적인 쾌락만 추구하도록 사람의 지성과 본성을 속인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불타는 사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극도로 위험하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전해지는 천사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타락한 천사가 여자의 몸을 탐하여 더럽혔고, 그렇게 태어난 것들이 홍수 이전의 거인, 네피림입니다. 그 네피림들이 자행한 파괴와 살육이 또한 대홍수 심판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그것은 결국 '음행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적 타락을 대표하는 단어가 '음행'이며 이후로 사람의 성행위는 죄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죄 중에 하나로 '음행'을 지목하셨습니다. 

곧 '본능적인 탐심'과 '타락한 본성을 감추는 교만' 그리고 '모든 악의 시작점인 음행'이 사람이 살면서 저지르는 모든 죄들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주께서 부부간 사랑의 결실로 오지 않으시고,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주님의 완전한 선과 의가 이 땅에서도 지속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시아의 초림을 세례의 의미대로 보면, 정결하게 거듭난 것이 아니라 선과 의의 하나님이면서도 스스로 죄인 됨을 자청하신 겁니다. 그러한 '헌신과 희생을 위한 타락'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의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그에 대하여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 죄인 된 사람이 선하신 주님의 그 헌신을 자신의 죄와 타락을 변명하려는 핑계로 삼는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

세례는 '이전과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는 상징적 예식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오신 것도, 죄인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동일한 세례의 과정을 거치고 오신 겁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일을 하면서 흘린 땀과 때를 씻어내고 피곤해진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샤워를 하거나 목욕을 하고 나면, 깨끗해진 몸으로 상쾌한 기분을 느낍니다. 중세의 막바지부터 수백 년간 유럽에서 창궐해 막대한 인구감소를 몰고 온 흑사병에서 유대인은 큰 피해가 없었던 이유였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도 '죄로 더럽혀진 심령과 악에 물든 과거의 습관'을 씻어내어 '영과 육 전부를 거룩하고 정결하고 새롭게 하는 예식'있어야 하고, 그것이 '세례'입니다. 


'온몸이 물에 잠기는 상징적 침례의식'을 통해 자신의 영과 육에 쌓인 악한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예식인 것입니다. 

'물속에 잠긴다'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데, 그 죽음은 '악한 본성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것이며, 생명수의 의미로 새로워진 동일한 그 물속에서 '죽어있던 선한 본성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그 세례 이후에라도 여전히 이전의 악한 본성과 습관이 남아있더라도, 그 세례를 받은 자는 차즘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양육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세례는, '모세의 율법에 있는 정결예식'에서 기원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하나님의 독생자도 함께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이십니다.

이후 1천4백 년이 지나 '세례자 요한'에 이르러서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로 구별됩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율법 아래로 내려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기를 청했고, 그가 율법의 주인임을 아는 요한이 당황하기는 했으나, 주께서 이루실 사역에 대한 예언을 받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아는 요한은 주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지극히 선하시고 이미 정결하신 의의 왕께서 '죄가 없어서 받는 무죄 판결도 아니고, 죄가 있어서 속죄받는 것도 아닌, 오히려 '스스로 죄인 됨을 자청하는 예식'인 것입니다. 

그의 세례를 받으므로 '어린양 희생 제물로 공식 확정'되었고, '지상 모든 죄인의 죄를' 자기 육체에 덮어씌우셨습니다. 이는 3년 후, '십자가에 오르시기 위한 것'이었고, '의인이 가는 좁은 길을 여신 것'입니다. 


거듭 말해, '단 한 분, 메시아를 죄인으로 정죄하는 예식[the judgement of guilty]'이 되어 버린 그 세례가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 죄로 더럽혀진 모든 죄인의 생명을 살릴 유일한 세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순종을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어린양 희생제물 되기를 자청하는 그 자리에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함께 임하셨고, 성령께서는 비둘기 같이 그리스도 위에 내리셨으며, 성부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늘로부터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라 하신 세례'는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므로 죽을 생명을 살려 영생을 주는 그리스도 복음의 증표이며,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의의 좁은 길에 동참을 이끄는 예식'인 것입니다.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할 때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낭송하면서 침례를 행했는데, 그 또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세례 속에 하나의 중요한 의미로 포함되었습니다. '육적 할례는 그리스도의 할례'가 되었고, 바리새인의 누룩과 같은 율법의 형식이 아닌 '율법의 참 의미인 그리스도 사랑의 계명'이 모든 이방민족이 지켜야 할 의인의 계명이 된 것입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보다 더 완전하므로 사람의 능력으로 지키거나 행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께 구하는 자는 지키고 행할 능력을 주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노아 때의 홍수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또한 '구원의 표'라고 하면서 그것이 또한 '세례'라는 '중복된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0절'

'~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가 되었으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를 예수님께 적용하면, 예수께서 받으신 침례가 '구원의 표'이면서 또한 전 지구적으로 뒤덮은 물에 같인 방주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사흘동안 무덤 안에 갇히신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성도와 교회에 적용하면, '메시아의 보혈로 세례'를 받아 사망에서의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는 주께서 감당하신 그 십자가 세례에 동참하는 자, 곧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구원의 방주에 오르는 자'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로마서 6장 3~5절'에는 '세례와 부활'을 더욱 명료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화 함께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다면 그분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도 틀림없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0장 2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묘사하면서 광야 40년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시면서, 이집트 탈출 때는 홍해를, 가나안 입성 때는 요단강을 갈라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지나가게 하신 그 일 역시 '세례'라고 가르칩니다. 

그 광야 40년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 그리고 일생이 세례 속에 있으며,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은 우리가 받을 마지막 세례입니다.


그래서 또한, 사도 바울께서 골로새서 2장에 그런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어린양의 재림을 알리는 환란과 재앙, 그리고 재림 후의 전지구적 어린양의 심판 역시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이면서 또한 세례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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