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분 의식

by 가치지기

신분 의식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서열’과 ‘계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같은 학교, 같은 직업, 같은 경제적 수준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우리를 구분 짓고, 그 선을 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신분이 높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공손하고, ‘신분이 낮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쉽게 무시하거나 홀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강약약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분 의식은 단순히 지위의 차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왜곡된 결과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기보다 ‘신분’을 먼저 보는 순간, 인간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이러한 신분 의식은 오랜 세월 누적된 잘못된 문화의 잔재입니다. 조선 시대의 양반과 상민,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유산은 ‘가문의 정통성’, ‘학벌’, ‘직업의 위계’, ‘재산의 규모’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물질만큼이나 ‘신분적 지위’까지 함께 물려주려 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그 사슬은 마치 현대판 신분 세습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후면 수능시험이 치러집니다. 부모들이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단지 더 나은 교육을 원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신분사회의 첫 관문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거 어느 고위 공무원이 술자리에서 평범한 국민을 향해 ‘개·돼지’라 말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학벌과 행정고시 출신의 배경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그 말은 자신보다 낮다고 여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 진정한 품격은 신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신분 의식은 인간을 구속하지만, 인격은 인간을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직업이나 배경보다 그 사람의 성실함과 따뜻함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낮다고 여겼던 사람에게서 배움을 얻을 수 있고, 나보다 높다고 여겼던 사람에게도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품위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분 의식을 내려놓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차이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중심이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를 오직 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