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운디네> 2020, 크리스티안 펫졸드
민물의 상어로 불리는 메기의 등장은, 앞으로의 흐름이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암시를 제법 묵직하게 쥐여준다.
생과 사, 둘 중 어느 것을 가리켜도 이상하지 않을 물의 힘이 자꾸만 끈덕지게 감정의 구(球)를 자국 내며 끌어당긴다.
자신을 떠나면 죽게 될 거라는 그 말은 이별에 대항하는 나름의 기제로 비치는 듯했으나, 비극을 내포하는 정령의 이름이 새겨진 이상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정보가 되어 사각사각 점점 더 깊게 생각을 파고든다.
왜 그렇게 이별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가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겠냐마는, 잠시의 공백마저 허용의 카테고리에 넣지 않는, 아니 넣지 못하는 그녀의 운명은 실로 얄궂기 그지없다.
어쩌면 평생 동안 반복되었을 그 운명의 장이 그래서 더 무섭고. 그 장은 그렇게, 이후에 맞바꾼 박동을 하나로 여기며 일대기적 흐름 안에 반복을 풀어 넣는다.
무심하게 반복해서 끊기는 음악, 상대를 찾으러 들어가는 카페, 물 안에서 목격하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다시 보기 위해 주시하는 화면, 부서진 다리, 끊긴 생명, 다시 붙인 감쪽같은 다리, 감쪽같이 다시 살아난 생명.
물을 매개로 맞바꾼 박동은,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박동을 만들어낸다. 그녀를 따라들어간 물에서, 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손으로 따라들어온다.
천천히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강하며, 다시금 상기될 수밖에 없는 그때의 질문이 울리는 파동.
"이게 산업잠수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