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트별 Jan 01. 2021

맞바꾼 박동, 이어지는 파동

영화 <운디네> 2020, 크리스티안 펫졸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무서워요

민물의 상어로 불리는 메기의 등장은, 앞으로의 흐름이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암시를 제법 묵직하게 쥐여준다.

생과 사, 둘 중 어느 것을 가리켜도 이상하지 않을 물의 힘이 자꾸만 끈덕지게 감정의 구(球)를 자국 내며 끌어당긴다.


자신을 떠나면 죽게 될 거라는 그 말은 이별에 대항하는 나름의 기제로 비치는 듯했으나, 비극을 내포하는 정령의 이름이 새겨진 이상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정보가 되어 사각사각 점점 더 깊게 생각을 파고든다.

느꼈어 핥빝

왜 그렇게 이별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가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겠냐마는, 잠시의 공백마저 허용의 카테고리에 넣지 않는, 아니 넣지 못하는 그녀의 운명은 실로 얄궂기 그지없다.

어쩌면 평생 동안 반복되었을 그 운명의 장이 그래서 더 무섭고. 그 장은 그렇게, 이후에 맞바꾼 박동을 하나로 여기며 일대기적 흐름 안에 반복을 풀어 넣는다.


무심하게 반복해서 끊기는 음악, 상대를 찾으러 들어가는 카페, 물 안에서 목격하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다시 보기 위해 주시하는 화면, 부서진 다리, 끊긴 생명, 다시 붙인 감쪽같은 다리, 감쪽같이 다시 살아난 생명.


잊지 말아요. 잊지 않아요.

물을 매개로 맞바꾼 박동은,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박동을 만들어낸다. 그녀를 따라들어간 물에서, 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손으로 따라들어온다.

천천히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강하며, 다시금 상기될 수밖에 없는 그때의 질문이 울리는 파동.
"이게 산업잠수사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직시할 수밖에 없는 불발의 현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