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를 하려고 서울로 천리길을 달렸다.
여섯 달 동안.
‘그해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쓴 한 꼭지를 들고
몇 달을 혼자서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어느 우주 입김의 이끌림으로 사부님을 만났다.
여름 초입에 시작된 우리들의 시간은
함박눈이 쏟아지는 다음 해 일월 중순에 종강으로 끝났다.
쳥평 호숫가에서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머리에 이고
마침표를 찍었다.
새벽 무렵 하얗게 쏟아지던 눈송이도
수북히 우리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초고를 미처 마무리짓지 못하는 지금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냥 우연찮은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주 집안 장례식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고속도로에는
곳곳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여기저기서 달리는 렉카,
쌩쌩 달리는 차량들에 튕겨 날아드는 돌멩이,
바로 눈 앞에서 들개처럼 달려드는 렉카와 육중 추돌...
하지만 지난 육 개월 동안에는
이런 사고가 전혀 없었다.
그때도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도로는 비슷한 사정이었다.
심지어 주말이었다.
그때는 사고나는 징조나 흔적, 그림자 하나도 구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요즘 뒤늦게 깨닫는다.
이런 저런 만남과 다니던 길이
감사하게도 완벽하게 안전한 걸음이었다는 기억.
출간일기나 초고를 쓰지 않는 날이 반복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악몽.
글쓰기, 책쓰기를 시작하면서
악몽에서 숙면으로 전환되는 밤잠.
어쩌면 미흡하지만 이 길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서서히 다져지고 있다.
흠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쓸 수밖에 없는 사건이 연출되는가 하면,
멘토 선생님도 나를 봐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쓰다가 읽기가 부족하거나 필요하면
맞춤형 책들이 다가오는가 하면,
일터에서도 지난 학기에는 수업이 최소화되었다가
이번 학기는 아예 쉬라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다음 학기는 복귀하기 마련이다.
십여 년 동안 이어온 수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과목이고 정황이다.
그러니까 이번 학기는 초고에 몰입하라는 뜻.
운명지어진 '봄에서 여름까지'이라 본다. ㅎ
오늘 우연히 만난 넷플릭스 ‘원더풀 라이프’(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그렇다.
‘죽은 사람에게 사흘의 시간이 주어진다.
천국에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을 고를 시간.
다들 삶 속에서 소중한 추억을 택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선뜻 고르지 못한다.
이어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나고,
당신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라는 안내글이 있다.
마치 초고 마무리를 못해 낑낑거리는 나를 위해
선물처럼 다가온 영화 같다.
엄마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는 시간이었다.
우와좌왕 헤매고 있는 아둔한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영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가족은,
그 신비주의에서 언제쯤 빠져나올 거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초고 쓰기에서 힘을 얻지 못하며
스스로 힘을 찾는 방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초고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이런 희미한 끈이라도 붙드는 자신이 애처롭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