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다는 마치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바람도 잦아든 듯, 바다는 숨을 죽이고 안개 속에 몸을 감추었다. 그 속을 걸어 들어가면 세상은 금세 낯선 동화 속 나라로 변하곤 했다. 눈앞은 뿌옇게 가려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 신비로웠다. 하늘과 바다, 갯벌과 마을이 모두 하얀 장막에 감싸여,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성벽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안개 낀 날이면 나는 친구들과 갯벌로 달려가곤 했다. 갯벌은 우리가 만든 놀이터였고, 안개는 그곳을 비밀스러운 무대로 바꿔주었다. 서로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겨우 두세 걸음 떨어졌는데도 이미 멀리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한 친구는 펄 속에 발을 쑥 묻고 웃음을 참으며 숨어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게 굴 옆에 납작 엎드려 몸을 감췄다. 안개는 우리의 비밀을 덮어주었고, 웃음소리는 은빛 안개 속에 작은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갯벌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우리만의 요술 놀이터였다.
그러나 같은 시간, 어른들의 얼굴은 무거웠다. 어민들에게 안개는 웃음이 아니라 근심이었다. 바닷길이 보이지 않으면 조업이 늦어지고, 배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바다 위에서 방향을 잃는다는 건 생명을 잃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마을에는 안개가 짙게 낀 날이면 멀리서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꽝, 꽝, 꽝!”
그 소리는 길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등불 같은 소리였다. 아이들에게는 갑자기 들려오는 커다란 울림이 마치 용이 숨을 고르듯 장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그 한 타 한 타가 생사를 가르는 신호였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꽹과리 소리는 돌아올 길을 알려주는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옛날에는 갯벌이 교통의 길이 되기도 했다. 안개가 옅어지면 사람들은 바닷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오갔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그 길은 마치 마법 같은 통로였다. 하지만 한순간만 방심하면 진흙에 발이 빠져 꼼짝 못 하거나, 밀려드는 바닷물에 휩쓸릴 수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디선가 꽹과리가 다시 울렸다. 그 소리는 “이리로 와라, 길은 여기 있다”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어른들은 늘 “안개 낀 날엔 길이 없다”고 했지만, 그 꽹과리 소리 덕분에 길은 다시 열렸다.
안개 속을 거닐다 보면 시간조차 흐릿해졌다. 해가 떠 있는지,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 오히려 동화 같은 마법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 안개는 놀이터였고, 꽹과리는 신비로운 악기 같았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그것은 생명을 지켜주는 경고음이었다. 같은 소리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도 안개 낀 날이면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민들의 한숨, 그리고 멀리서 울려 퍼지던 꽹과리 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안개는 모든 것을 가리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삶의 소중한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새겨주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안개가 걷히면 그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도 답은 간단하다. 안개 너머에는 늘 우리가 살아온 삶, 그 속의 웃음과 눈물, 애환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안개 속을 거니는 시간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동화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