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정초의 대한민국은 위기이다. 정치는 혼란하고 경제는 위태롭다. 가정과 나라 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가 켜졌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으니 먼저 위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위기는 危(위태로울 위)와 機(베틀 기)가 합해진 말이다.
危(위태할 위)는 厃(위태로울 첨)과 厄(재앙 액)으로 이루어졌다.
厃(첨)은 사람이 낭떠러지(厂) 위에서 몸을 구부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태로운 모습을 그렸다. 그 아래 厄(재앙 액)은 언덕 바위틈에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비좁고 막다른 동굴 속에서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앉아있는 모습에서 '좁다, 막히다, 고생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예를 들면,
손으로 눌러서 압박하는 것을 扼(누를 액)이라 하고,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언덕 사이의 좁은 길을 阨(막힐 액, 길 험할 애)라 하며,
수레를 끌기 위해서 마소의 목에 얹어 속박하는 구부러진 막대를 軛(멍에 액)이라 한다.
그러므로 危(위태할 위)는 위험(厃)이나, 고난(厄)에 처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전에 근거한 해석이다.
危(위태할 위)의 갑골문은 구부러진 나무 손잡이(술)가 달린 쟁기를 그렸는데, 특히 술의 끝부분에 달린 보습을 강조한 형태이다. 혹자는 고대에 임금의 마음을 경계하기 위하여 옥좌의 우측에 두었던, 의(欹)라는 기구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그 형태나 관련된 글자들을 종합해 볼 때, 危(위)의 갑골문은 쟁기의 날을 뜻한 글자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쟁기의 날이 '위험' 또는 '재앙'을 상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언제라도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䤥(삽 궤)가 그 뜻을 담고 있다.
䤥(궤)는 '삽' 또는 '쟁기의 날'을 뜻하는데, 문자가 나타내는 의미 그대로 위험한(危) 날붙이(金)를 의미한다.
쟁기의 본디 말은 '장글'인데, '잠기'라고도 부른다. 잠기는 고려시대 노래인 <청산별곡>에 나오는데, 조선 초기에는 '병잠기'라고 하여 무기와 동일시했다. 이는 농사 도구인 삽, 괭이, 보습 따위가 전쟁 때는 무기로 바뀐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평화의 도래를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이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같은 맥락에서 臲(위태할 얼)은 무기가 될 수 있는 위험한 말뚝(臬)을 뜻하고, 桅(창 괘)는 나무(木) 손잡이 끝에 위험한 날붙이를 부착한 창 따위의 무기를 뜻한다.
위험한 것이 어디 무기뿐일까.
詭(속일 괘)는 높은 언덕(危)이나 재앙(厄)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사람의 말(言)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기만, 험담, 비방, 궤변(詭辯) 따위의 말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위험은 취약한 곳을 노린다.
脆(연할 취)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危) 몸(月)을 뜻하고,
垝(헐 괘)는 무너질 위험이 있는 땅(담장 등)을 의미한다.
나라나 개인 할 것 없이 취약(脆弱)함을 보완하지 않으면 반드시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위기는 단번에 오지 않는다. 징조를 보이다가 임계치가 쌓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닥친다. 그래서 위기(危機)는 곧 위기를 막을 기회(機會)가 되기도 한다.
위기(危機)에서 機(기)는 베틀을 뜻한다. 木(나무 목)은 베틀 채를 뜻하고, 幾(기미 기)는 베 짜는 장인(戍)이 바디에 걸린 가는 실오라기(幺幺)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왜 위기나 기회를 뜻하는 것일까?
'베틀(機)'을 의미하는 영단어 'loom'이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loom은 옛 영어에서 '어떤 종류의 도구'를 의미했다. 동사로는 '어렴풋이(흐릿하게) 보이다' 또는 '(중요하거나 위협적인 일이) 곧 닥칠 것처럼 보이다.'를 뜻한다.
이렇듯 機(기)는 베를 짜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가는 실이 바디에 걸려있는 베틀의 모습에서,
조직(組織)의 기틀(어떤 일의 가장 중요한 계기나 조건)이 갖춰짐을 뜻한다. 그리하여 機(기)는 어떤 일의 완성을 위한 기틀로서, 부정적으로는 준비의 부족으로 인한 위기(危機, crisis)를 뜻하고, 긍정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창출하는 기회(機會, chance)를 뜻하게 되었다.
결국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그 갈림길에 우리 사회가 서있다.
우리는 과연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바람 부는 처마 밑에서 거미가 외줄을 탄다.
그 완성이 자못 궁금하여 심기일전(心機一轉)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