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3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나는 시아버지의 보호자는 아니다. 보호자가 될 뻔한 순간이 있었는데 사고가 난 바로 직후였다. 나는 환자를 진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는 받지 못한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도 예약된 환자가 오지 않아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 이름을 확인하고 아버님의 가족이냐고 묻더니 대뜸 경찰서라며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차에 치인 시아버지를 119 구급대가 응급실로 모셔갔으니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다른 가족들 연락처도 알려달라는 상대방에게 일단 확인 후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 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이스피싱일 것이라고, 보이스피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남편이 다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사고를 확인했다. 남편은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 시대의 응급실에는 단 한 명만 보호자로 들어갈 수 있다. 남편의 연락을 받은 다른 가족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시누이가 그 날의 보호자가 되었다.
아버님은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는다. 병원 측은 보호자에게 문자로 환자 상태를 알려준다. 병원에서 오는 대부분의 소식은 시누이를 통해서 받게 되었다.
열흘 동안 중환자실에 계시던 시아버님은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우리 아버님처럼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한 상태의 환자는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난생처음 간병인 소개 업체에 전화를 걸어 간병인을 요청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구할 수 있었다. 가족은 주보호자로 등록한 사람 한 명만 하루 한 번의 면회가 허락됐다. 아버님과 오십 년을 함께한 어머님이 면회를 가시겠다고 하여 보호자가 되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나 했더니 첫날부터 간병인의 불만이 크다고 한다. 아버지가 너무 체격이 크고-키가 170센티미터가 넘고 70킬로그램 정도 되신다- 가래도 많다고 한다. 간병인의 불평도 이해가 되는 게 현재 입원실의 규정상 보호자 혹은 간병인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무겁다고 해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간병인이 허리가 아파서 못하겠다며 당장 내일 일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해 왔다. 주말 직전 저녁이었다.
주말 동안은 코로나 검사가 쉽지 않아서 (대부분 병원에서 간병인은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서를 내야 한다) 아마 간병인을 쉽게 구하지 못할 거라고 몇몇 업체에서 알려준다. 다행히 가능한 분이 연결되어서 주말부터 일하기로 한 후 우리 가족은 한숨을 돌렸다.
그날 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나보다 백 배는 깔끔하시던 시아버지가 지금은 거동이 불편한 덩치 큰 노인으로 간병인들이 기피하는 환자가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뜬금없이 교통사고가 나던 날 경찰서에서 나한테 어떻게 연락이 왔을까 궁금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형사의 이야기로는 아버님이 사고 직후엔 의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때 아버님이 내 이름이나 연락처를 주신 게 아닐까 싶다. 병원에서 일하는 큰며느리에게 연락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셨던 것일까? 가족 중에 내가 보호자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일까? 아버님이 의식을 회복하셔서 이 작은 궁금증을 해결할 날이 오길 바래본다.
※ 이번 여름 잠시 들렀던 강원도 양양의 서피비치를 그려보았습니다. 서핑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하는데 제가 들렀던 시기는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철 오후였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