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역사와 현재, 미래가 쌓인 프랑스 도시 읽기
프랑스는 유럽에서 문화유산 보호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그 중심에는 문화재 보호법(Code du patrimoine)이 있다. 2004년 기존 문화유산 관련 법률을 통합·정비하여 제정된 이 법은 프랑스의 유형·무형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문화자산의 활용과 전승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건축·경관·도시공간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도록 설계된 이 법은, 역사와 현재, 미래가 겹쳐 쌓인 프랑스 도시를 읽는 창이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문화부 산하의 국립기념물센터(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 건축 및 문화유산센터(Cité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그리고 민간 공익 재단인 유산재단(Fondation du patrimoine)이 문화유산의 보존, 전시, 교육, 연구를 담당한다 [1].
문화재 보호법은 크게 7편의 권(Livre)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조문은 입법부 조항(L)과 규제부 조항(R), 부록으로 나뉜다. 각 권은 문화유산을 유형별·주제별로 규율하며, 법과 제도를 따라 도시를 읽는 틀을 제공한다 [2]. 도시와 건축, 시민과 행정, 과거와 현재가 함께 교차하는 시간을 이해하고 기록하도록 안내하는 살아 있는 문법인 셈이다.
Livre I : Dispositions communes à l’ensemble du patrimoine culturel (전체 문화유산에 공통되는 일반 규정) - 모든 문화유산에 공통되는 규정과 보호 원칙을 정의한다. 시민 참여, 보호 책임, 공공 접근권을 담아 도시와 건축의 변화 속에서도 문화적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지켜내는 기본 문법 역할을 한다. 법은 단순히 지침이 아니라, 도시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허용하며,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읽는 장치다.
Livre II : Archives (기록물에 관한 규정) - 기록물(Archives)의 생성, 보존, 접근 및 관리 기준을 다룬다. 도시 계획과 건축 설계, 역사적 자료까지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가 겹쳐 쌓인 도시를 이해하고, 미래 설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사건이 켜켜이 쌓인 텍스트로 도시를 읽게 된다.
Livre III : Bibliothèques (도서관 관련 규정) - 도서관(Bibliothèques) 설립과 운영, 자료 수집과 보존, 시민 접근 관리 규정을 포함한다. 단순히 책을 지키는 법이 아니라, 공공 공간과 지식 기반을 통해 시민의 문화적 경험과 도시 기억을 유지하는 장치다. 법은 시민이 읽고 쓰는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고, 그 경험을 다음 세대로 연결한다.
Livre IV : Musées (박물관 관련 규정) - 박물관(Musées)의 정의, 운영, 컬렉션 관리, 대중 접근을 규정하며, 도시 공간과 건축물, 역사·문화 전시를 연결한다. 시민은 공간을 통해 문화 체험과 교육적 가치를 경험하고, 박물관과 전시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적 층위를 체험하게 한다.
Livre V : Archéologie (고고학 관련 규정) - 고고학(Archéologie) 유산의 발굴, 보존, 연구 및 법적 보호 절차를 명시한다. 과거 도시 구조와 건축 흔적을 보호하여 현대 개발 속에서도 역사적 시간의 층위를 유지한다. 건물 하나, 광장 하나에도 이전 세대의 선택과 사고가 남아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Livre VI : Monuments historiques, sites patrimoniaux remarquables et qualité architecturale (역사기념물, 주요 문화유산 지구, 건축 품질 관련 규정) - 이 권은 건축 및 도시계획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작동한다. 일정한 역사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나 장소를 ‘역사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등록하도록 규정하며, 등록된 건축물은 외관 변경, 신축, 구조 변경 시 문화부 승인과 특별 허가가 필요하다. 이는 도시 경관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3]. 2000년대 이후 도입된 중요 문화재 보호구역(SPR : Sites Patrimoniaux Remarquables) 개념과, SPR 지정 시 수립되는 PSMV(Plan de sauvegarde et de mise en valeur, 가치 증진 및 보호 개발 계획)와 PVAP(Plan de valorisation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건축 및 문화유산 가치화 계획)은 단순한 개발 제한이 아니라, 기존 건축과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적 도시 기능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구체적 장치다 [4]. PSMV를 통해 건축물의 외관, 재료, 색채, 조경 등 세부 설계 요소가 규정되며, 보호구역 내 건축물은 보존 등급에 따라 관리되고, 소형 주택 위주 개발이나 무분별한 용도 변경이 제한된다.
툴루즈 시내 역사 중심부에서는 약 256헥타르 규모의 보호구역을 대상으로 PSMV(Plan de sauvegarde et de mise en valeur, 가치 증진 및 보호 개발 계획) 수립이 진행 중이며, 2020년대 중반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PSMV는 기존 지역 도시계획(PLU)과 통합 커뮤니티 도시계획(PLUi-H)을 보완·대체하는 독립적 규정으로, 건축물의 외관, 재료, 색채, 조경 등 세부 설계 요소를 규정하고 보호구역 내 개발과 용도 변경을 조정한다 [5]. 또한, 주변 보호 제도는 역사기념물과 시각적·공간적으로 연관된 건축물 및 토지에 공익적 목적의 이용 제한을 부과하며, 지정되지 않은 경우라도 역사기념물과 시각·공간적 관련성이 있는 부동산은 통상 500m 범위를 기준으로 보호 심의 대상이 된다 [6]. 일부만 지정된 건물의 나머지 부분도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도시 전체의 역사적·문화적 층위가 유지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Livre VII : Dispositions relatives à l’Outre-mer (해외 영토 관련 규정) - 해외 영토(Outre-mer) 문화유산 보호 관련 특별 규정으로, 본토와 달리 특수 환경과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며 국제적 책임과 지역적 관리 균형을 확보한다.
1999년 도입된 20세기 유산 라벨(Label Patrimoine du XXe siècle)은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건축적·도시적 가치가 인정되는 건축물과 도시 단지, 보호구역을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대상으로 공표한다. 2015년 12월 8일 열린 당시 지역문화유산 및 건축 위원회( Commission régionale du patrimoine et de l’architecture, CRPA) 회의에서는 25개 건물에 라벨 부여가 결정되었다 [7]. 건축 및 도시계획 분야에서 법의 적용은 중앙정부 문화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건축·문화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CRPA(지역 문화재 및 건축위원회)는 보호구역 내 건축 인허가와 도시계획 승인에 대해 자문과 검토 권한을 가진다. 실제 운영에서는 복잡한 행정절차, 전문성 부족, 민간 개발자와의 갈등, 공공 예산 부족 등 도전 과제가 존재하지만 [8], 그럼에도 프랑스의 문화재 보호법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보고, 건축과 경관, 주민의 일상까지 포함하는 통합적 관리 체계를 구축해 왔다.
툴루즈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Université Toulouse Capitole 캠퍼스에는, 14세기 전후에 건설되어 중세 툴루즈를 둘러쌌던 성벽인 le rempart médiéval과, 17세기에 지어진 옛 수도원의 회랑인 le Cloître des Chartreux가 함께 남아 있다. 성벽은 도시의 경계와 방어 기능을 보여주며, cloître는 수도원 안과 도시 바깥을 구분하는 공간으로, 수도사들의 기도와 명상을 위한 생활 영역을 담고 있다.
오늘날 대학 캠퍼스라는 현대적 용도 속에서 이 두 공간은 그대로 보존되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갖는다. 과거의 흔적은 단순한 기록으로 머물지 않고, 현재의 일상 속에서 체험되며, 미래의 설계와 관리로 이어진다. 이러한 층위는 법과 제도가 도시 공간에 스며든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걸어 다니는 거리와 건축물 속에서 시대의 흔적을 읽게 한다.
이곳을 걷다 보면, 중세와 근세의 흔적이 현대 캠퍼스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체험하고, 법과 제도가 도시 공간에 남긴 흔적을 읽게 된다.
각 권이 제공하는 규범과 기준은 단순한 법문이 아니라, 도시와 건축, 시민과 행정, 과거와 현재를 함께 읽고 기록하는 살아 있는 문법이다. 문화재 보호법을 따라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나 경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허용하며,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지를 해독하는 과정이다. 프랑스의 도시 풍경은 이러한 법과 제도가 남긴 시간의 층위 위에 켜켜이 쌓여 있으며, 역사와 현재, 미래가 겹겹이 쌓인 도시를 읽는 길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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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de du patrimoine, Article R141-1에서 R143-1
[2] 법규 전문, https://www.legifrance.gouv.fr/codes/texte_lc/LEGITEXT000006074236/
[3] Code du patrimoine, Article L630-1에서 L633-1
[4] Code du patrimoine, Article R141-1에서 R143-1
[5] 툴루즈 광역도시 홈페이지 참조 : https://metropole.toulouse.fr/actualites/le-patrimoine-toulousain-protege-et-reconnu-avec-le-psmv?utm_source
[6] Code du patrimoine, Article L621-30
[8]
Fabien Van Geert, Les politiques du patrimoine en France – Code du patrimoine, monuments, Vie-publique.fr,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