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말한 본연지성

그것은 가능성의 씨앗이다.

by 이재현

소를 잠시 본 목동은 아직 소를 길들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안다. 소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십우도의 이 장면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인간 안에 본래 무엇이 있는가를 묻게 한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말하며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본연지성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순수한 성품, 곧 하늘의 이치와 통하는 본래의 마음을 뜻한다. 그것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도덕이 아니라, 이미 내면에 깃들어 있는 가능성이다.


퇴계의 사유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을 향하는 존재다. 그러나 욕망과 기질, 환경의 영향 속에서 그 본연의 성품은 흐려진다. 공부란 새로 무언가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가려진 것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흐려진 거울을 닦듯, 이미 있는 빛을 다시 드러내는 일이다.


십우도의 소를 본다는 것은 바로 이 본연지성을 어렴풋이 체험하는 순간과 닮아 있다.
잠시 중심이 잡히고, 이유 없이 고요해지며, 설명할 수 없는 맑음이 스친다.


그것은 외부 조건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깊은 자리에서 무언가가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묻는다. “이것이 나인가?” 그리고 동시에 안다. “그래, 이것이 나였다.”


본연지성은 완성된 성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씨앗이다.


그러나 그 씨앗을 알아보는 순간, 삶의 태도는 달라진다.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동시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의 빛을 본 사람은, 그 빛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야 할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퇴계가 강조한 경(敬)은 바로 이 자리에서 요구된다.
흩어지지 않는 마음, 흔들려도 돌아오는 중심.


본연지성을 한 번 스친 사람은, 그것이 일시적 체험에 머물지 않도록 길들이는 과정에 들어서야 한다.

십우도의 다음 단계가 바로 그 싸움이다.


소는 처음부터 멀리 있던 존재가 아니었다.
본연지성 역시 밖에서 구해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기억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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