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수양을 오해한다.
자기를 단단히 조여 매는 것,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갖는 것,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깊은 길로 들어가면 알게 된다.
수양은 통제가 아니라 정렬이며,
억압이 아니라 깨어 있음이다.
1. 통제의 그림자
통제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흔들릴까 봐,
실수할까 봐,
약해 보일까 봐.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누르고,
표정을 관리하고,
실수를 숨긴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용히 다른 출구를 찾는다.
칼 융이 말했듯,
의식이 다루지 못한 것은
무의식이 운전대를 잡는다.
통제는 잠시 질서를 만들지만
내면의 평화를 주지는 못한다.
2. 수양의 본뜻
동양의 전통에서 수양은
자기를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를 바르게 세우는 태도였다.
퇴계는 공부의 핵심을
마음을 한 자리에 두는 데서 찾았다.
이때의 ‘경(敬)’은
긴장이나 억압이 아니다.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깨어 있음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수양이다.
3. 비움의 단계
십우도의 여덟 번째 장면은
사람도 소도 사라진 빈 원으로 그려진다.
씨름도 끝났고,
붙잡으려는 의지도 사라진 자리.
통제하려는 자아가 내려놓아질 때
비로소 고요가 찾아온다.
이 고요는 무기력이 아니라
힘이 과장되지 않은 상태다.
4. 통제와 신뢰의 차이
통제는
자신을 믿지 못할 때 강해진다.
신뢰는
자신의 어둠까지 인정했을 때 가능해진다.
통합을 거친 사람은
자기를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는다.
마치 잘 길들여진 소처럼
내면의 힘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5. 수양의 현대적 의미
오늘의 수양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흔들려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
실수해도 자기를 버리지 않는 태도,
감정을 느끼되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 상태.
이것은 통제가 아니라
깊은 자기 신뢰다.
수양은
나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오늘 감정이 요동칠 때
억누르지 말고
그 한가운데 서 보라.
그 자리에
통제가 아닌
깨어 있는 중심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