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과 Self

by 이재현

소를 잊고,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는
하나의 물음이 남는다.

비어 있음은 허무인가,
아니면 더 깊은 충만인가?

이 질문 앞에서
동양의 ‘공(空)’과
융의 ‘Self’가 만난다.


1. 공은 없음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인연 속에서 변하며,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


빈 원(○)은
텅 빈 구멍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여백이다.

형태가 사라진 자리에서
집착도 함께 사라진다.


2. Self는 중심이 아니라 전체다

칼 융은
Self를 자아(ego)보다 더 큰 전체성으로 보았다.

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하는
심리적 중심이자 원(圓)이다.

흥미롭게도
융은 Self를 설명할 때
‘만다라’라는 원형적 상징을 사용했다.


원은 닫혀 있으면서도 열려 있고,
완성되었으면서도 움직인다.

공의 원과
Self의 원은
서로 다른 전통 속에서
같은 구조를 가리킨다.


3. 사라짐과 드러남

자아가 자신을 과도하게 주장할 때
Self는 가려진다.

그러나 ‘내가’ 옅어질수록
전체성이 드러난다.


공은
자아의 비움이고,
Self는
전체성의 드러남이다.

하나는 동양의 언어이고,
하나는 서양 심리학의 언어지만,
둘 다 같은 경험을 가리킨다.


4. 허무가 아닌 충만

많은 이들이
‘비어 있음’을 두려워한다.

정체성이 사라질까 봐,
의미가 무너질까 봐.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공은 공허가 아니다.


집착이 사라진 자리에는
부드러운 자유가 생긴다.

Self가 드러난 자리에는
고요한 확신이 있다.

증명할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없다.


5. 노년의 원형

삶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점점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역할을,
성과를,
이름을.

이 비움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넓어진다.


공은
끝이 아니라
전체로 돌아감이다.

Self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전체성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오늘 잠시 눈을 감고
‘나’라는 생각이 사라진 자리를 느껴 보라.

숨은 계속 쉬어지고,
심장은 계속 뛴다.

그 자리에서
비어 있음과 전체성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소를 잊은 자리에는
빈 원이 있고,
그 빈 원은
당신의 가장 깊은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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