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민 Jun 24. 2021

다시 시작되는 항해, 다시 시작되는 축제

제14회 부산항축제를 다녀와서

제14회 부산항축제 : 다시 시작되는 항해, 다시 시작되는 축제


Ⅰ. 다시 찾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2018년 2월 말 아직까지도 바람이 매우 서늘했던 어느 날이었다.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해가 떨어져 다시금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부산항에서의 하루는 내게 있어 매우 힘들었던 하루로 기억된다. 그 누구의 지원 없이 혼자서 치러냈던 행사였던 만큼 잠시도 쉴 틈 없이 무척이나 바삐 움직였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광고주와 무대, 음향 업체 사장님들에게 온갖 요구사항들과 하대 아닌 하대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극에 달했었던 하루였다. 

 바로 이곳에서 <재14회 부산항축제>가 개최되고 나는 축제담당자로서 초대되어 참여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축제를 벤치마킹하러 가는 것에 설레면서도, 약 3년 전의 '정효민 대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현장에 가면 그 시절의 내가 분주히 현장을 뛰어다니고 무전으로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있을 것만 같았다. 콧잔등이 조금은 시큰해졌다. 지난날의 정효민을 만나면 이런 말은 꼭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그날 이곳에서 단단히 견뎌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효민아"



Ⅱ. 다시 시작되는 항해

 인천에서 11시 30분쯤 출발 헤서 부산역 인근의 호텔에 체크인을 완료하니 6시 30분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사고, 간단히 식사를 한 시간을 빼더라도 거의 6시간이 걸린 셈이다. 내게 익숙한 땅에서 얼마나 먼 곳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실감 나는 대목이었다.

 호텔에서 짐만 풀고 바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3년 전에도 드나들었던 똑같은 여객터미널 입구를 스쳐 지났다. 정박되어 있는 커다란 여객선, 드넓은 주차장,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지금의 나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14회 부산항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드라이브 인' 형태로 운영되었다. 250대의 차량에 한해 사전 예약을 받았고 초대된 인원만 행사장에서 개막행사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어서 개막식 행사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많은 수의 차량이 이미 입장을 마친 후였고 계속 참가 차량이 진입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일찍 왔어도 상대적으로 차체 크기가 큰, SUV 차량은 무대 기준 양쪽 사이드로 강제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전 안내 없이 SUV 차량이라는 이유로 측면으로 배치된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 불만을 표출했으나,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사이드에 배치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대를 향하는 각도 때문에 시야각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SUV 차량으로 참가한 사람들은 주최 측이 사전에 '주차 시뮬레이션'을 해본 게 맞냐며 꽤나 강하게 민원을 제기했다. 주최 측은(주최 측이 계약한 운영대행사 측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선착순으로 주차라인에 자리 잡고 있는 차량들


 SUV 주차 문제 외에는 행사장 구성은 제법 훌륭했다. 미리 그어진 주차라인에 차량유도를 훌륭히 해냈고, 코로나19 유행상황이기에 차량에서 내리거나 선루프, 창문을 열어 차량 밖으로 몸을 내는 행위를 스태프들이 열심히 자제시켰다.(개막식 행사가 시작되고 난 후에는 사실상 통제하는데 실패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화장실'이었는데, 보통 축제장에 설치되는 화장실은 계단이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당연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접근과 사용에 큰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항축제는 양쪽 사이드로 3동의 일반 화장실에 더불어 1동의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휠체어로 화장실에 출입할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면으로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실내 공연장뿐 아니라 야외 행사장, 축제장에도 '베리어 프리(Barrier Free)'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고, 실제로 편의시설의 문턱을 낮추는 설계 및 기획이 증가하고 있다. 공연, 전시, 축제가 또 하나의 차별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등으로 갈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간이 되어간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장벽과 차별을 낮추기 위한 노력


 개막행사는 지역 예술가 식전 공연, 기나긴 내빈소개와 축사에 이어 불꽃 드론 쇼와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본 행사의 주최 측인 '부산축제추진위원회'는 유튜브로 개막행사를 실시간 중계했는데, 축하공연으로 섭외된 소향과 SG워너비의 무대는 송출되지 않는 소문을 접수한 일부 팬들은 지역 예술가의 공연 때부터 악플을 다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지금까지의 축제에서는 내빈소개, 축사에 대한 일반 관람객들의 날 선 분노를 심증으로만 알고 모른 채 했다면, 이제는 댓글이라는 무시무시한 물증으로 남게 되어 모른 척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댓글 중에 합리적인 글을 하나 발견했었는데 앞으로의 축제에서 내빈소개나 축사가 이러한 방식으로 변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 인의 경우, 차량이 진입하고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꽤나 긴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에 내빈 소개와 축사를 영상에 담아서 송출해 줬다면 모두가 만족했을 거라 생각한다.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내빈과 주최 측의 수준도 함께 높아졌으면 좋겠다."


 길었던 내빈소개와 축사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드론 및 불꽃 쇼가 시작되었다. 드론은 '배'의 형상으로 군무하며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금 시작될 항해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함께 터지는 불꽃은 마치 바다로 나아가지 못했던 보이지 않았던 장벽을 부숴버리듯 장엄하게 하늘을 울렸다.

 이어지는 드론은 'CORONA'라는 글자에 세로로 'STOP'이라는 글자를 포개며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바라는 코로나 종식의 소원을 함께 빌었다. 이때 불꽃 드론 쇼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모른다. 그저 화려한 퍼포먼스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동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1년 하고 6개월이라는 시간, 힘들었고 답답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와 맞섰던 그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벅차올랐으리라 생각한다.

 제14회 부산항축제의 메인 슬로건은 '다시 시작되는 항해'였지만 축제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시작되는 일상'이라는 글자가 새겨졌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것은 드론과 불꽃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으리라


 불꽃 드론 쇼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소향과 SG워너비의 축하무대가 이어졌다. 가창력으로는 전혀 나무랄 게 없는 두 팀이었기에 귀는 무한히 호강했다. 소향은 희망을 SG워너비는 추억을 노래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오랜만에 '내가 축제장의 한가운데 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구마구 설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박수와 환호 대신, 차량의 비상깜빡이과 클랙슨으로 대신하는 코로나가 만들어낸 돌연변이 같은 장면들을 눈에 담으며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하늘에서는 불꽃 지상에서는 비상깜빡이가 부산항을 밝히고


 Ⅲ. 다시 시작되는 축제

 2020년의 경우 전국의 거의 모든 축제가 비대면의 형태를 선택하거나 취소하는 선택을 감행했다. 비대면으로 운영된 축제도 그저 '예산을 쓰기 위해 한다'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했을 뿐 실질적으로 '펜데믹 시대에서 대면 축제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2021년 모두가 작년보다는 나아지리라 믿고 있는 올해의 축제는 어떠한가. 봄 시즌, 여러 지자체가 모험적으로 '봄꽃축제', '벚꽃축제', '봄축제' 등을 개최하였으나 '대면과 비대면 사이 그 어디 즈음'에 있던 축제들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우리 곁을 스쳐갔다.

 희망적으로 운영된 축제는 '제23회 제주들불축제', '제14회 부산항축제' 정도밖에 없다. 두 축제의 공통적은 차량을 통한 '드라이브 인' 형태였다는 점에 있는데, 코로나 시대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장 선호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이브 인' 혹은 '드라이브 스루' 형태의 축제는 충분한 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도로'와 '주차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250~3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드넓은 장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공간을  운 좋게 발견했다고 해도 소유주체가 대규모 축제를 위해 사용허가를 해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의 중심이 되어 미디어에 노출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제23회 제주들불축제


 최근에는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가 대두되고 있다. 

 건국대학교의 온라인 축제인 '건국유니버스'가 좋은 사례다. 자기만의 아바타를 만들어 온라인에 펼쳐진 건국대학교를 실제로 거닐며 여러 가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게 구현하였다. 아바타에 과잠도 입히고 머리를 염색하는 등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겨본 적 없는 '20학번', '21학번' 신입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건국유니버스의 구동 장면


 하지만 이러한 메타버스에도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건국유니버스와 같이 '커뮤니티' 중심의 축제라면 충분히 좋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실감과 현장성이 중요한 축제라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 몸에 있는 감각기관보다 나를 더 감동케 하는 매개는 없다. 또한,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맡는' 과정이 가능한 현장형 축제를 가상공간에 담아낸다는 것은 현재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스페인 발렌시아의 '라스 파야스(Las Fallas)'는 엄청난 소리의 화약을 터뜨리며, 작게는 1m, 크게는 40m에 달하는 인형을 불태우면서 1년 동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다. 라스 파야스를 메타버스로 가상세계에 구현한다고 했을 때, 도시를 가득 채우는 폭약의 소음, 밀랍 인형이 불에 타면서 나는 냄새와 온도, 골목에서 이웃끼리 함께 만들어 먹는 '빠에야(Pallea)'의 맛, 한 해의 복을 빌어주며 느끼는 스킨십을 과연 온라인에 옮겨 놓을 수 있을지는 커다란 의문부호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2020 Las Fallas

 우리가 해외로 여행을 가고 물류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다시 항해가 시작되어야' 하듯, 축제가 다시금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시 대면형 축제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과 편리한 세상의 구축 가운데 오히려 '재발견되는 가치'들이 있는데, 나는 그중 하나가 '축제'라 말하고 싶다. 모임, 결속, 집단, 공통된 경험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요소이고 앞의 단어들이 형상화되는 것이 축제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코로나19가 백신 접종으로 종말을 맞이하고 우리의 소중했던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곁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를 몰랐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앞으로는 그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축제 #부산항축제 #부산항 #제주 #새별오름 #제주들불축제 #오름 #오름불놓기 #불꽃축제 #불꽃쇼 #불꽃 #드론 #드론쇼 #불꽃드론 #불꽃드론쇼 #드론퍼포먼스 #불꽃퍼포먼스 #퍼포먼스 #소향 #SG워너비 #국제여객터미널 #여객선 #여객터미널 #크루즈터미널 #크루즈 #크루즈여행 #영도 #광안대교 #부산 #건국유니버스 #메타버스 #건국대 #건국대축제 #가상현실 #온라인 #플랫폼 #온라인플랫폼 #아바타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문화·예술도시 연수를 꿈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