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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Sep 03. 2024

네. 네네. 네네네. 네. 네~

사춘기 아니고요. 열 살, 십춘기 입니다.

요즘 온이가 반항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전에 본 적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한 번씩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시큰둥한 말투에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무장한 너를 보고 거리 두기가 필요하겠다. 생각이 들 때쯤 너와 똑같이 열 살에 돼버린 엄마는 감정적으로 부딪친다.


-네. 네네. 네네네.. 네. 네~


-뭐야 엄마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너 경청 몰라? 상대방이 말하면 끝까지 들어야지.


-네. 네네.


-중간에 그렇게 말을 끊고 '네네' 거리면 엄마한테 입 닫으라는 거야 뭐야?


'열 번 참다가 한 번 화내면 다 소용없다'라고 하지만 그걸 몰라서 화를 내는 게 아니다.

감정적으로 똑같이 굴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또 짓누르고 있던 화가 불시에 터지는 순간까지 버텨내다가 결국 이렇게. 애쓴 나는 없고 화내는 엄마만 남게 되는 거다.

티브이에서 이렇게 욱하는 모습을 보면 오은영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던데 나도 별수 없이 '이러면 안 되는 엄마'가 돼버렸다.

나의 행동이나 태도에 직관적이고 객관적인 눈빛으로 ‘그래도 어른이니까, 엄마니까. 참았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이 모든 게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는 걸 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당사자인 내가 더 잘 알지. 아무렴.


나는 온이와 감정적으로 부딪치면서 삼십 년 전의 내 모습을 만났다.

‘쥐똥만큼 어린 딸이 바락바락 대들었으니, 아빠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나는 그때 무엇 때문에 악을 쓰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내 행동과 상황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정을 누르던 아빠에게 미안해졌다.

근데 나는 멋쩍어서 아니 용기가 없어서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못하고, 엄마한테 전해 달라고 했다.

스피커 폰으로 아빠가 같이 듣고 있을 테니까….


-엄마 옛날에 내가 3학년인가 4학년 때. 아빠한테 대들고 울고불고 악 쓴 적 있잖아? 그때는 몰랐는데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해줘. 아빠 아주 속상했겠어. 이제 알겠네. 아빠 마음이 어땠을지….


맞다. 겪어보니까 알겠다. 아빠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지금 내 맘과 같겠지.


-아빠는 다 이해할 거야. 아빠는 마음이 참 착한 사람이거든.


화를 내고, 감정적인 말을 쏟아내면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반복하는 모양새가 딱하다.

한편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내 행동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기는 건 감사할 일이다.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처럼 사과하지 못했겠지. 부끄럽지만 사과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오늘이 감사하다

동시에 지금 이것은 분명 시작에 불과한데….

'진짜 사춘기가 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하게 될까.'

'언제쯤이면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될까. 언제쯤이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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