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상당히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대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잠시 기다릴까 생각했지만, 내가 그녀의 파트너인데 굳이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로 가볍게 끼어들며 루크에게 말했다.
"저희가 연습할 게 많아서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루크는 나를 느긋하게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소 지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놓칠 미세한 눈동자의 움직임이었기에 그가 가진 태도와 묘한 시선은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었다.
"아, 실례했네요. 미안해요. 파트너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봐요. 이해해 주시길. 그럼, 저는 이만."
루크는 엘리아나에게 친근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려는 듯했다. 하지만 몇 걸음 옮기던 그는 다시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아, 데이빗,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는데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주말이요?... 미리 알려주시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언젠가 한 번 시간을 내자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 마냥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조만간 저녁에 홍대입구역에서 봐요. 월말쯤 만나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네, 좋습니다. 미리 연락만 주세요."
이렇게 대화가 끝나자, 루크는 이제야 정말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며 발걸음을 에밀리아 쪽으로 옮기는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 당장 더 중요한 것은 엘리아나와의 연습이었다. 엘리아나와 루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신경 쓰였으나, 그녀는 그와의 대화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채로 우리는 오쵸를 활용한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연습은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았다. 동작을 반복할수록 그녀의 스텝이 점점 끊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이 계속해서 신경에 거슬렸다. 리드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 주지 않는 그녀의 반응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어느새 동작에 힘이 들어갔다. 에밀리아와는 무리 없이 해냈던 동작들이, 엘리아나와 함께할 때는 왜 이리 버겁고 어려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춤의 모양새를 만들어 보려 했지만, 엘리아나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갔다.
"어디 불편한가요?"
답답함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말이 없었다. 불편함을 애써 숨기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더 나를 불편하게 했다.
"불편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맞춰 드리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참다못해 동작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무 거칠어요. 잡아당기지 말아 주세요. “
처음 보는 그녀의 차가운 태도와 정색한 얼굴에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나를 압박했다.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모습이 그녀와 겹쳐졌다. 왜 모두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 탓을 하는 걸까. 그녀 역시 자신을 돌아본다면 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없을 텐데, 나를 탓하는 그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엘리아나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달라야 했다.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제가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움직여 주지 않으니까 저도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잘 따라와 주시면 힘쓸 일이 없습니다. 좀 맞춰 주시겠어요?"
최대한 차분하게, 화를 누르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전에 힘으로 당기시니까 불편해요. 루크 님과 할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요. 조금만 힘을 빼고 부드럽게 리드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요. 너무 경직돼서 춤을 추는 게 편하지 않네요."
엘리아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분하고 담담했다. 단호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한층 분노를 치밀게 했다. 그녀의 모습이 자꾸 다른 사람과 겹쳐 보였다. 전혀 다를 것 같았던 사람이 비슷해 보이는 순간, 이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이 문제마저 그녀에게 양보하면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엘리아나 님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까 제가 경직되고 힘이 들어간다니까요. 답답하네요, 왜 제 말을 이해 못 하세요? 그리고 루크 님과 비교는 왜 하세요? 루크 님은 경력이 오래되셨고 저는 이제 막 시작했으니 당연히 비교가 안 되죠. 그렇게 따지면 저도…“
"잠시만요, 두 분. 여기서 이렇게 다투시면 곤란합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두 분 다 사무실로 따라오세요."
감정이 끓어오르며 더 말하려는 순간, 조이가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막았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순간 기세가 눌리며, 올라오던 화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조이는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고, 우리는 조용히 따라 걸음을 옮겼다. 힐끗 엘리아나를 살폈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