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던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인기척에 눈을 뜨고 돌아보니, 에밀리아가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빗 님, 배운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에밀리아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렇죠. 이제 막 반년이 되어가... 죠?"
"와, 그런데 벌써 밀롱가에 오신 거예요?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그녀가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칭찬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인 알았다면, 초보가 올 만한 곳이 아니란 걸 알았다면, 아예 오지 않았을 텐데, 엘리아나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무시한 채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 밀롱가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주눅 들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어딘가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 귀 빨개졌어요."
에밀리아가 웃으며 내 귓불을 가볍게 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길에 놀라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리며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이미 귓가에 남은 그녀의 손길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놀래요? 제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너무 긴장한 거 아니에요? 긴장 좀 푸세요."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평소 수업에서와는 다른 그녀의 거리감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뵈어서 그런가 봐요. 저도 모르게 긴장했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반가워서 그랬다고 생각할게요. 그런데 밀롱가는 자주 오세요? 여기서 데이빗 님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에밀리아는 나를 가볍게 밀어내고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잠시 발스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엘리아나 쪽을 살폈다. 그녀는 루크와 춤을 추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아나 님이랑 같이 오셨나 보네요? 루크랑 춤추고 있는 거 보니, 루크도 같이 온 거예요?"
"네. 루크 님이 밀롱가에 한 번 와보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함께 오게 됐어요."
"오호, 루크가 벌인 짓이었군요. 그런데 너무하네요, 데이빗 님을 혼자 두고 둘이 춤추러 가버리다니."
"괜찮아요.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지금 몇 번째 곡이죠?"
"이제 막 첫 곡이 끝나가는 것 같네요."
"그럼, 다음 곡에 저랑 춤 한번 춰보실래요?"
에밀리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밝은 웃음과는 달리, 밀롱가에 들어서자마자 주눅이 들어 있던 터라, 이곳에서 저 론다를 돌며 춤을 출 자신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됐다. 내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에밀리아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이미 들어왔는데, 뭘 망설이세요. 제가 있잖아요. 저기 저 중앙에서 연습이라 생각하고 해 보세요."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손을 잡고 나를 론다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론다에 서 있었고, 에밀리아는 자연스럽게 아브라소를 잡았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해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를 향해, 에밀리아는 상체를 밀착시키며 말했다.
"좁은 밀롱가에서는 원래 이렇게 추는 거예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녀가 귓속말로 내게 속삭였다.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주는 그녀의 격려에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자세를 잡고 있는데, 어느새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음악에 맞춰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긴장 때문에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는 내 심장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결국 두 곡이 지나가도록 음악도, 스텝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세 번째 곡이 끝나자 팝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탓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에밀리아가 다가와 포옹하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밀롱가에서의 첫 춤을 축하드려요."
그런 그녀의 말에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마침 루크와 엘리아나도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루크가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원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더 큰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자리에 돌아오자 에밀리아는 엘리아나와 루크에게 인사했다. 루크도 에밀리아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불편함이 섞인 것 같았지만, 곧바로 그건 내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아나도 에밀리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느새 에밀리아는 일행처럼 우리 자리에 앉아 함께 시간을 가졌다.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편해 보이고 재밌어 보였다. 나만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데이빗 님, 괜찮으세요?"
엘리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오늘 일이 많아서 그런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네요."
"밀롱가가 처음이라 긴장하신 것 같은데요?" 루크가 끼어들며 말을 보탰다.
"그런 건 아닌데, 약간 피곤하긴 하네요."
"혹시 감기 기운 있으신 건 아니죠?"
엘리아나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감기라기보다는, 아마 루크 님 말대로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이, 설마 일찍 가실 건 아니죠? 데이빗 님?"
루크가 장난스럽게 물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 말에 엘리아나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벌써 가실 거예요? 이제 막 들어왔는데?"
"아니요, 그럴 리가요. 춤은 추지 않더라도 앉아 있을 겁니다. 아직 파트너가 남아 있으니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 두 분이서 파트너십을 계속하기로 하신 거예요?"
"네, 그렇게 됐어요. 앞으로 함께 탱고를 더 열심히 배워보려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이 타이밍에 파트너십이라는 건… 혹시 두 분 대회 준비 중이신 건가요?"
루크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잠시 그를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꾹 참으며 대답했다.
"엘리아나 님께서 같이 준비해 보자고 하셔서, 저도 동참하게 됐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잘 됐네요. 그럼 두 분 뉴스타 부분에 나가실 계획인가요?"
이번엔 에밀리아가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저희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라, 다른 부분에 나갈 수는 없죠."
엘리아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에밀리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다.
"데이빗 님이 키가 크시고 다리가 길어서, 피스타(탱고) 부분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두 분 키도 잘 맞고, 정말 잘 어울리세요."
에밀리아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응원 많이 해주세요. 선배님들의 지도 부탁드릴게요."
엘리아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잠시 두 사람의 표정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두 분은 대회에 안 나가세요? 뉴스타 같은?"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나는 서둘러 물었다.
"뉴스타라, 참 정겹고 그립네요. 전 이제 출전 자격이 안 됩니다. 뉴스타는 탱고를 시작한 지 3년 이내에만 나갈 수 있거든요."
루크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루크 님, 뉴스타 이등 출신이에요. 아주 자랑할 만한 성적이죠."
에밀리아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루크는 약간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더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 그들의 장난을 보고 있던 중, 문득 엘리아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에밀리아의 말을 들은 후 그녀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작아졌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