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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를 알다

카자흐스탄의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

by 사십리터



스트레스를 받은 머리는 습관적으로 어딘가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검색한다.

목적지는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싸고 빠른 비행기가 최고다.

항공사 세일 중에 가장 좋은 가격은 보통 취항특가.

오.

때마침 신규 취항하는 노선이 있다.

우선 구매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슴이 시키는 대로 비행기표를 구매한다.

...

그런데 알마티가 어디지?

알마티의 랜드마크 젠코프 성당. 이슬람 국가인데도 성당이 랜드마크라니 재미있다.


알마티, 이것뭐예요?


알마티.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도시.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니지만 가장 발전한 도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종교는 이슬람교.

화폐 단위는 텡게.

나 알마티 여행 가!

라고 말하면 부럽다는 말보다는 거기가 어디야? 위험하지 않아?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 도시.

항공권 구매 후 한 시간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다.

나는 알마티가 카자흐스탄의 도시라는 사실도 모르고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도시 이름에 '사과'라는 의미가 들어 가서 알마티 곳곳에는 사과를 테마로 한 장식이 많다

우리 조금 솔직해지도록 하자.

솔직히 알마티가 어디인지 모른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더 솔직히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조차 신규 취항 때문에 항공사에서 보낸 광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도시다.


사실 비행기표를 보기 전에는 중앙아시아 여행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몽골까지는 이미 유행할 만큼 했지만 그 외 중앙아시아 국가는 너무나 생소하다.

그런 곳에 비행기표가 싸다고 일단 간 사람.

네.

그게 저예요.

그렇게 카자흐스탄, 알마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여태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딜 가도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사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여행을 간다고 설레거나 긴장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참에 카자흐스탄이란 꽤 새롭게 느껴졌다.

진짜로 새롭기 때문이다.

솔직히 중앙아시아에 여행 가는 사람이 아직은 흔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좀 긴장을 했다.

어, 그런데 이 나라 카자흐스탄.

여행 정보가 정말 없다.

시중에 가이드북 한 권 없는 나라는 처음이었다.

가기 전부터 벽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내 여행 레벨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만 알게 됐다.

숙소 근처 주말 플리마켓에서 파는 전통 문양이 들어간 그릇과 신들이 튀르키예에서 봤던 만큼 화려하다

게다가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라니.

물론 내 영어는 원어민과 대화가 불가능한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못하는 건 경우가 다르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못 해도 내 국적이 한국인 이상 영어를 의무 교육으로 배웠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헬로, 하우머치, 수준의 영어도 안 통하는 나라는 그 자체로 상당히 새로웠다.

쇼핑몰 장식이 낙타인 나라

불현듯 내 여행 최초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때 멋모르고 떠난 유럽 여행.

첫 방문 국가는 러시아.

매표소에서도 영어 한 글자 쓰여 있지 않던 그 나라.

음.

순탄한 여행은 아니겠군.

하지만 그래서 콘텐츠 좀 나올 각이군.

횡단보도까지 특이한 느낌적인 느낌

거기다 구소련이라는 공산권.

이슬람 문화권.

아, 정말 새롭다.

정말 모든 게 새로웠다.

내가 겪은 러시아어권 국가는 러시아 하나.

한때 공산국가였던 나라는 폴란드와 베트남.

이슬람 문화권은 튀르키예와 동남아 일부 지역.

그 모든 곳을 떠올리며 그 이상의 새로움을 기대한 채 떠났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알마티.

카자흐스탄에서는 생각보다 익숙한 풍경을 많이 마주쳤다.

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롯데제과 공장이 있는 곳
서울시 아니고 알마티의 씨유다

어째서인지 카자흐스탄에서 자꾸 한국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카자흐스탄을 모르지만, 카자흐스탄은 대한민국을 안다.

미리 말하지만 국뽕에 취하자는 말이 아니다.

알마티에 한국 문화가 보이는 이유.

먼저 한국인 입맛대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위상과 케이 컬처의 영향력이 높아진 탓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문득 교과서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고려인.

카레이스키.

독립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피해 살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

중앙아시아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인 것이다.

아르바트 거리 한복판의 아주 예쁜 카페. 그런 곳에 뜬금없이 심청전 포스터가 붙어 있다.

고려 국시.

문득 그 이름을 떠올리니 카자흐스탄이 더는 나와 관계없는 나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싫어할 여행지

알마티 여행을 갔다면서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다.

그래서 알마티가 어떤 여행지인지 결론만 말하라고?

여행지로서 매력만 따진 알마티는 별거 없었다.

중심가에 씨유가 있고, 사막 근처라 날씨가 많이 덥고, 음식은 좀 입에 안 맞고, 커피가 귀한 정도.

관광 개발이 없어서 여행자가 할 일은 거의 없는.

뭐 그런 동네였다.

정말 지독하게 심심한.

눈치 빠른 한국인이라면 내가 지금 알마티가 여행지로 별로라는 말을 돌려돌려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대표 음식은 플로브(볶음밥)과 라그(볶음국수)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카자흐스탄은 한국 여행자들이 싫어하는 필요충분 요건을 갖췄다.

우선 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는다.

땅은 넓지만 바다가 없는 이 나라의 주식은 고기.

그중에서도 양고기와 말고기다.

고기를 아무리 좋아하는 나라도 낯선 고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조리법이나 향신료 등 때문에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한식당도 별로였다.

그래도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한 몇몇 식당은 꽤 괜찮았지만 '이거 진짜 너무 맛있다' 소리가 나오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먹기 위해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최악의 소식이다.

다른 식생활은 다 단조로운데 사과만큼은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

게다가 관광.

분명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경제 수준이 높은 도시라고 했는데 그다지 체감할 수 없다.

가장 번화하다는 아르바트 거리도 짧고 단조롭다.

쇼핑몰 몇 군데는 꽤 크지만 그다지 이색적이지 않다.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투어상품은 알마티 주변 사막과 캐년을 둘러보고 오는 투어가 유일하다.

게다가 물가도 생각보다 비싸고, 시내를 벗어나면 교통편도 불편하다.

시내에서도 할 일이 없고, 밖으로 나갈 방법도 없다.

하루짜리 투어는 꽤 재밌다.

다만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스케줄이다.

근교라고 말하기에는 알마티를 많이 벗어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하다.


솔직히 알마티는 한국인이 진짜 싫어할만한 여행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마티를 꽤 의미 있는 여행지로 생각했던 이유가 있다.

콕토베 전망대에서 보는 알마티 풍경


알마티 여행은 갈 필요 없지만


언어, 종교, 문화.

카자흐스탄은 모든 게 낯선 나라지만 딱 하나 낯설지 않다고 말한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람.

시골에 사는 나에게 카자흐스탄 사람 자체는 크게 낯설지 않다.

서울 사람들이야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촌에서는 이미 동네 공장에 중앙아시아국가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한 지 오래다.

우리 집 앞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러시아마트가 들어왔다. 이게 벌써 10년 전이고, 러시아마트는 그 일대에서 가장 오래 장사한 가게가 됐다.

동네 공원에 가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모여서 공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탄다.

어쩌면 나는 내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고향이 어디인지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당신은 알마티라는 이름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한국을 안다.

불닭도 먹고, 한국 연예인 이름을 기억한다.

공산주의와 문화적, 지리적 요인 때문에 오랜 시간 폐쇄적으로 지낸 사람들.

그런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외국인은 낯설고, 여행자는 이상한 존재다.

유튜버들이야 촬영이란 미끼가 있어서 관심을 받지만 나 같은 내향인이 입만 닥치면 경계만 하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알마티 시내에서는 설산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인에게 중앙아시아가 낯선 건 당연하다.

그들 스스로가 꽤 오래 문을 닫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내가 알마티 여행 전후로 알게 된 건 한국 사람들이 중앙아시아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지였다.

어떤 식으로 부정적 반응인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겠다.

하지만 중앙아시아는 한때 고려인들이 힘들게 살아가던 땅이다.

지금은 한국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한국 경제의 한구석에서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정적 시선이나 오해는 없길 바란다.

솔직히 중앙아시아 국가를 여행 초보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만났던 한국인들도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며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고 있으니 여행은 아니더라도 알마티,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가 무엇인지 이름은 기억하면 좋겠다.

차별하지 않을 정도로 오해 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봐주면 좋겠다.

미드에서 한국 포항이 밀림으로 등장하는 일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최소한 중앙아시아 국가를 미개하다고 말하는 미개한 일만은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젠코프 성당 옆 공원에서 피크닉을 했다. 알마티의 상징 사과 한 알, 롯데제과 공장에서 산 과자, 길에서 산 케밥을 들고. 곳곳에 공원이 많은 알마티는 평화가 어울리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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