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남편이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입원하신 지방의 병원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내 마음도 무거웠다.
시어머니는 폐렴 증세가 있어서 이틀 전에 입원을 하셨다. 그 며칠 앞서서는 잘 걷지를 못하시는 어머니가 혼자 병원에 가시다가 넘어지셔서 얼굴을 다치셨다고 했다. 필요없다며 반대하시는 아버님을 겨우 설득해서 어머니의 요양등급을 받고 병원 동행 서비스를 신청했었지만, 아버님은 기어이 요양보호사를 두 번이나 쫓아버리셨다. 결국 우려했던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감기까지 걸리신 어머니를 입원시켜드리는 문제로 남편과 아주버니가 몇 번 통화를 했는데, 옆에서 들으니 누가 내려갈지에 대해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눈치였다. 지난 명절에 5일간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남편은 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과 불통에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여간해서는 부모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법이 없던 남편도 부모님께 몇 번 언성을 높이기도 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도움없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다면서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를 않아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듣고 아주버니가 이틀 전에 먼저 내려가셨고, 남편도 오늘 내려간 것이다. 올겨울에 독감이 유행해서 폐렴으로 돌아가신 노인들이 많다는데, 시어머니가 폐렴 초기라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심각한 상태는 아니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이번에 차라리...’하는 경을 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올해 구순이시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90의 나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가기에는 다소 버거운 나이인 것 같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감사하게도 큰 병 없이 잘 버텨주셨지만, 뵐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가시는 모습이 이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당장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와 뒷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두 분 중 혼자 남겨지는 분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하지만,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일이기에 마음에 늘 숙제처럼 남아있다.
주변에서 은퇴한 후에도 연로하신 부모님 때문에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지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마다 ‘차라리...’하는 불효막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애달파 하는 친구들이 홀가분해 보이고 가끔은 부럽기까지 하다. 자식에게 고통을 안겨주면서까지 삶을 연장하고 싶어하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 어쩌면 부모님의 마음은 더 하실지도 모르겠다. 장수가 더이상 축복이 아닌 것 같다.
병원에 간 남편은 곧 그곳의 상황을 전해올 것이다. 입원은 얼마나 길어질지, 간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버님의 식사는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남편은 출근을 해야하니 다음은 내 차례인가 싶다. 갑갑한 병실에서 병든 노인을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답답해진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 걱정보다 내가 감당해야 할 수고를 먼저 걱정하고 있는 이기적인 나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그래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내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머니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지레 겁먹지 말고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아야겠다. 이제부터 시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