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쏨 Dec 17. 2022

천기누설 2

연고 대신 로션을 바르세요! 

로션처럼 바르는 연고의 비밀. 


소재는 100% 면인가요?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 제품인가요? 

스테로이드 몇 단계에 해당하는 연고인가요?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옷을 살 때도, 음식을 고를 때도, 연고가 필요할 때도 원재료의 성분을 확인하게 됐다. 이전에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엄마는 이렇게까지 안 했던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내가 엄마가 된 시점에는 성분분석이 엄마라는 직책에 아주 중요한 업무능력 중 하나였다.





성분분석이 까다로운 영역으로는 ‘약’과 관련된 것들이 있다. 어디에서 온 성분인지, 어떤 것들이 섞였는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이름을 가진 약과 관련해서는 의사의 처방을 믿고 먹고 바를 수밖에 없었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이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던 의약품은 그나마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몸에 바르는 ‘비판텐 연고’뿐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고였기에 비판텐연고는 생활 반경 안에서 손이 닿는 모든 곳에 놓였다. 


이 후로 기저귀 발진, 침독, 가려운 증상 등 아이의 피부에 나타난 갖가지 증상을 비판텐 연고 하나로 해결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많은 양의 연고를 바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을 마치 로션처럼. 이래도 되는 걸까?


꽉 비틀어진 연고 튜브가 버려질 때마다 마지못해 써야 하는 찝찝함과  다른 방도가 없어 답답한 마음도 함께 쌓여갔다. 






천연화장품을 배우고 난 후, 약으로 사용하는 비판텐 연고의 주 성분이 화장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흔한 보습원료 중 하나인 ‘디 판테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라? 약을 샀는데 그냥 보습제였다고? 


이 속은 기분은 뭘까. 


연고와 로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속았다는 배신감과 그동안 느꼈던 죄책감에 대한 억울한 감정이 몰려왔다. 이 억울함은 성분이 같다는 것은 둘째치고 로션보다 비싼 연고 가격에 놀라 아껴가며 발라주었던 지난날의 지질함과 벌겋게 발진이 돋아난 아이의 온몸에 연고를 문지르며 떠안은 괜한 미안함에 대한 것이었다.  






자궁 안 양수 속 촉촉한 세상에서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으로 나온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분이었고, 신생아 연고라 불렸던 ‘비판텐연고’는 수분을 채워주는 ‘D-판테놀’이 주성분으로 들어있는 로션의 탈을 쓴 연고였다. 


또다시 천기누설이 될까 조심스럽지만, 이번엔 엄마란 직책에 딸린 성분분석 업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둘러대고 싶다.


“침독, 기저귀 발진 등의 아이들 피부염에는 연고 대신 디판테놀 성분이 들어있는 로션을 듬뿍 발라주세요!” 

이 단순한 연결고리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맥이 탁 풀렸다. 



보통은 내용물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성분 순서대로 화장품 성분표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최대한 ‘Dexpanthenol’이 앞부분에 위치한 로션을 골라보자. 어차피 첨가물이기 때문에 성분 목록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 있긴 하다. 디판테놀은 보습원료로 일반 로션에도 많이 들어가는 첨가물이지만 일반 로션의 경우 다른 보습제와 오일류가 혼합되기에 디판테놀의  함량이 적어지는 경우가 많다. 디판테놀의 정확한 함량을 알 수 없는 경우라면 약국에서 ‘디판테놀 연고’를 구입하자. 비판텐 연고보다 두 배 이상 저렴하지만 오일 성분이 추가되어있지 않아 수분 충전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로션이다. 굳이 뒤에 ‘연고’를 붙인 이유는 디판테놀이 피부층에 흡수되면 비타민B5의 판테 노신으로 전환되어 피부 재생, 소염작용 등의 치료에 보조적 역할을 하기 때문!  



주의.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닙니다. 

화장품과 의약품 사이에 쳐진 이 결계가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처럼 느껴졌다. 연고를 처방하며 ‘온몸에 바르셔도 돼요.’라는 친절하지 않은 의사의 말에 ‘로션처럼요?’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당시 의사가 ‘비판텐에 들어있는 판테놀 성분은 디판테놀과 엘판테놀이 있는데요... 어쩌고저쩌고...’라고 설명했더라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고작 전 성분에 5%가 포함되는, 아주 적은 양의 성분 하나가 몰아낸 나의 지난 죄책감을 생각하니, 이것은 알려야 한다.  



로션처럼 비판텐연고를 바르세요!
아니,
비판텐연고 대신 로션을 바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천기누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