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Jan 26. 2024

회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팀장님과 나의 회색지대

첫 직장을 퇴사한 지 딱 2년이 지났다. 막 30대에 접어든 해의 1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것도 한번 입사하기가 어려워 그렇지 입사하고 나면 정년까지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기업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퇴사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거나 일이나 사람 스트레스 때문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감정적으로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쉽게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신중하게 오랜 고민 끝에 선택을 하는 편이다.


3년 7개월간 그 회사를 다닌 덕분에 안정되고 규칙적인 업무 환경과 삶을 얻은 대신, 일을 통해 얻는 성장의 즐거움과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고 해결해 나가는 자율성을 내주어야 했다. 첫 사회생활에서 알게 된 나는 일정한 틀에서 큰 변화가 없는 일을 매일매일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변화가 있더라도 자율적인 환경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움직여 온 동력 중 하나는 작은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스스로 해냈을 때 얻는 성취감과 새로운 일을 벌이고 해내는 희열 같은 것들이었는데 공기업에서는 그러한 내 장점이 도무지 발현되기 힘든 조직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좋은 직장이지만, 나에게는 다 똑같이 생긴 사무실 안 내 책상 1자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창살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역할과 역량을 더 발휘하고 빠른 성장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계에 입성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조직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안정과 규칙적인 삶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 가고 새로운 일에의 ‘도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첫 직장은 나에게 의미가 깊다. 그곳이 나와 딱 맞는 직장은 아니었으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일했던 희로애락이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같은 것.


그때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의 기쁨을 느꼈고 '그 자립을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것들의 힘겨움'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지,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왜 항상 나만 힘든 보직에 있는 것인지 등등 혼자만의 고민을 짊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영겁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하게 힘들어할 문제까진 아니었었지만 그 당시엔 모든 것들이 처음 경험하는 일인 데다 사회초년생이 겪어야만 했던 성장통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고 배운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첫 직장에 애정 어린 마음이 있는 것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2번의 인사이동이 있었고 3개의 직무를 경험했으며 3분의 팀장님을 모셨다. 함께 일한 동료들까지 하면 물론 더 많다. 감사한 것은 3개의 팀을 경험하면서 적어도 2개의 팀에서 일할 때는 항상 조언을 구할 선배나 의지할 동료가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 1명만 있다면 일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있다'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 말이 무엇인지 간절히 공감되는 순간들이 몇 있었다. 일이 많고 힘겨워도 서로 힘이 되는 동료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니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일들 말이다.


'회사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개인적으로 친밀한 사람과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어떤 구분이 필요한 듯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진다. 나 또한 이 말을 썼던 때가 있었다.


'회사 사람과는 개인적인 얘기는 깊이 안 하는 게 좋지.'

'역시 회사 사람은 회사에서만 봐야 해.'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 사람'이라는 말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 직장인으로서, 나라는 사람 자체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그 직장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퇴사했지만 지금도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동기들, 신입시절 처음 하는 업무를 맡았을 때 친절하게 알려준 선배들, 살갑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던 후배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2명의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로 퇴사 전 근무했던 팀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님과 과장님이다.


 



"00아~ 잘 지내니?"


라는 말로 시작하는 팀장님의 카톡을 받았다. 작년 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내려온 지 오래되지 않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팀장님은 가끔 내가 어떻게 지내나 생각한다며 벌써 또 12월이 되었길래 연락해 본다고 했다. 작년 연말에도 연락을 주셨는데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에 나는 바로 답장을 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고 최근에 다시 이사해서 조금 여유를 찾았다고.. 조만간 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주 후 금요일 저녁, 팀장님과 나는 매번 우리가 만나던 동네의 한 한식집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뵙는 팀장님은 원래 짧았던 단발머리가 한층 더 짧아지셨고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도 자리에 앉아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팀장과 팀원의 관계는 항상 어렵다. 회사에 다닐 땐 더 그랬고 퇴사를 한 지금도 그때보단 덜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팀장님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 여자 팀장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다소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가진 공기업이었고 60년대생 팀장님들의 퇴직 시기가 많이 남아 새로운 팀장 자리가 몇 없기도 했다. 당시 팀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최초 여성 팀장 1호가 될 것으로 꼽혔다.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성과를 내거나 옳은 방향으로 일을 하기 위해 부서장님께도 쓴소리를 하시는 분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는 그러한 모습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세력도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팀장님의 그런 모습이 멋있었고 은연중에 '저분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사무실에서 한 번쯤 팀장님의 자리를 흘깃 보게 되었다. 그때 팀장님은 내 롤모델이었던 것이다.


팀장님은 다음 해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같이 여성 직원 최초로 팀장 승진을 했다. 기획조정실 전략혁신팀장. 운이 좋게도 나는 그 팀의 구성원이 되어 팀장님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매우 기뻤다. 옆에서 더 많이 보고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의지와 노력을 아셨는지 팀장님은 유독 나에게 조언과 애정을 많이 주셨다. 덕분에 다른 팀에서 배울 수 없었던 기획서나 보고서 작성법, 이사회나 행사를 진행할 때의 의전, 시의회 자료 작성 등 많은 일들을 하고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업무가 몰릴 때는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마감기한이 늦춰지는 일도 발생했다. 팀원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만큼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는 피드백이 날아왔다. 가끔은 질책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서운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더 잘해주었으면, 더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 또 따로 불러서 따뜻한 말씀도 해주시고 명절에는 우리 팀원 전체에게 스팸과 편지를 주시기도 했다. 그만큼 정이 많고 팀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많은 분이었다. 이외에도 팀장님과 나는 성격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었고 둘 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팀장님의 에코백 속에는 항상 종이책이 있었다. 가끔 정곡을 찌르는 농담을 잘하는 것도 비슷했다.






한 과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00 씨랑 팀장님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들은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팀장과 팀원의 관계이지만 팀에서 힘든 상황을 맞을 때마다 아마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 만큼, 함께 지낸 시간 동안 팀장님의 모든 점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힘들었던 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돌아서면 그 기억들이 금세 옅어질 만큼 우리의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직을 해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다시 고향에 내려왔을 때도 종종 생각하고 연락하고 만나 뵈었다. 언제나 팀장님은 나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셨고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았으며 내가 무슨 선택을 하고 경험을 하든 지지를 보내주셨다. 나도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분명 좋은 리더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을 팀장님을 응원하고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이러한 소중한 인연을 회사에서 얻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만약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팀장님을 만났다면 아마 우리는 ‘멘토-멘티'와 같은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만큼 서로에게 주는 영향과 호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저녁 자리에서 팀장님을 뵈었을 때는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 중에 내가 가장 말을 많이, 그리고 편안하게 했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아 업무나 직책의 벽이 허물어진 것도 크겠지만 내가 예전보다도 더 마음의 문을 오픈하고 다가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때 이런 힘든 일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때 저희 팀 같이 ~했던 거 기억나세요?'


예전에 함께 일했던 기억을 소환해 이야기하며 우린 깔깔 웃었다. 팀장님은 새로운 회사 소식을 업데이트해 주겠다며 내가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잔뜩 전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알고 있기에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상이 되어서 더 즐거웠다. 헤어지는 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팀장님은 내게 예쁘게 포장된 러쉬 입욕제를 건네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우린 향수, 캔들, 입욕제 같은 향이 나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취향도 같았다.  






앞으로도 우린 종종 밥을 먹고 차를 마실 것이다. 자주가 아니라 1년에 한 번, 두 번이라 하더라도 좋다. 빈도과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팀장님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다. 존경심, 연민, 동질감, 조건 없는 지지 같은 것들이다. 그분께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고 성장한 만큼 언젠가 나도 언젠가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이때 배운 것들을 잘 기억해 뒀다가 미래에 꺼내어 쓰고 싶다.


팀원을 생각하는 진심과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 조직의 성과를 위한 헌신.


그런 날이 와서 또 다른 고민과 고충이 생겼을 때 어리광 부리듯이 나는 또 팀장님께 여쭤볼 것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응원의 말이 든든한 힘이 되는 것이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