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여행](113)바닷가에 온통 하얗게 빛나는 산 '분바위' 가보셨나요?
인천 옹진군 소청도 바닷가에는 온통 하얗게 빛나는 산이 있다. 달빛 아래 빛나서 ‘월띠’라고 한다. 바위가 마치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다 하여 ‘분바위’라고도 부른다. 등대가 없던 시절, 조업을 나갔던 어부들은 달빛에 훤히 반사된 이 바위를 보고 들어오곤 했다고 전해진다.
원나라 순제도 어렸을 적 자주 놀다 갔다는 소청도 ‘분바위’
지난해 2월 KBS는 한반도 자연사 다큐멘터리 '히든어스'를 5부작으로 제작해 방영했다. 그중 1편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는 한반도 10억 년 전의 기록을 간직한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에 주목했다. 특히 소청도 분바위에 8억 년 전 한반도 최초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초고속 화질로 보여줬다.
분바위는 신원생대(10억 년 전~5억4000만 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들이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구워지고 뭉쳐서 대리암으로 변한 지질명소이다. 이 분바위 층 사이사이에는 마치 굴 껍데기처럼 생긴 암석층이 있다. 과거 지질시대에 활동한 남조류 박테리아들의 흔적이 굳어져 만들어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로,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평가받는다.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는 천연기념물 제508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중국 원나라 마지막 황제(순제)의 어린 시절 놀이터이기도 했다. 순제는 고려 충혜왕 1년 11세 태자 시절에 600여 명의 식솔과 함께 대청도 옥지포(지금의 옥죽동)로 귀양을 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지금의 대청초등학교 자리에 궁궐을 짓고 1년 5개월간 살았는데 대청도 삼각산과 소청도 분바위 등의 비경을 즐기며 망향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분바위 아래 조간대에는 두꺼운 양탄자처럼 펼쳐진 홍합밭이 끝이 없다. 소청에서는 크기가 8cm 이상의 홍합만을 11~3월에 채취한다. 어촌계 주민들이 모여서 1년에 7~10회 정도 채취한다고 한다. 소청도 사람들은 이 자연산 홍합으로 홍합 비빔밥과 홍합미역국 등을 만들어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는 것이다.
예동마을 동백나무 군락지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동상
백령도행 배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소청도 탑동항에 내려 남쪽으로 10여 분 걸어가면 예동마을(포구)에 닿는다. 소청도 주민 2/3 이상이 모여 사는 아담한 마을이다. 뒷산 동백나무 군락지에 서 있는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동상이 수호신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상은 1950년 말 소청도, 대청도 천주교 신도들이 북한 순위도가 보이는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음력 4월 18일 교세 확장을 위해 마포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 순위도,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에 도착한다. 이어 음력 5월 12일 백령도에서 청나라 어부에게 편지와 조선 지도를 전달한 후 순위도에 돌아온다.
함께 간 교우들이 연평도에서 잡은 조기가 마르지 않아서 순위도에 며칠 더 머무르길 청했고, 2주일 더 체류하게 된다. 체류 중에 김대건 신부는 체포돼 해주를 거쳐 서울로 이송, 1846년 음력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된다. (김용구 박사의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김대건 신부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보아, 백령도는 1846년부터 1880년까지 메스트르 신부(1852년 입국)를 비롯해 프랑스 선교사 17명의 입국 거점이 됐다.
이런 관계로 백령·대청·소청도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령도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된 백령성당이, 대청도에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 신축된 대청성당이, 소청도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공소가 있다.
아름다운 소청도 등대와 남쪽 해안 기슭의 노화동(蘆花洞) 마을
소청도에는 우리나라에서 13번째로 설치된 등대가 있다. 소청도의 서쪽 끝 83m 고지에 1908년 건립되어 지금도 광채를 발하며 백 년 이상 쉬지 않고 돌고 있다. 그 밝기가 촛불 15만 개를 동시에 켠 것과 같다고 한다. 서북해 일대와 함께 중국 산둥반도와 대련지방으로 항해하는 각종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대식 조형미를 가진 등대는 전시시설과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소청도 남동쪽 해안의 비경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북쪽으로는 대청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를 다녀오는 길, 우측 남쪽 해안 기슭에는 노화동 마을이 있다. 이곳에 갈대가 많아 이름이 붙여졌는데 예전에는 예동마을보다 더 컸다고 한다. 마을로 내려가는 도로 옆 담벼락과 해안가 방파제에는 색 바랜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소청도의 역사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벽화에 있는 리라(Lyra)호와 알세스트호(Alceste)는 어떤 배일까? 영국은 청나라와의 무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사절단을 파견한다. 암허스트(J.W.Amherst) 사절단을 수행하기 위해, 주함 알세스트호를 이끈 머리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은 리라(Lyra)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과 함께 1816년 2월 19일 영국을 출항하여 7월 27일 목적지인 천진항에 도착했다. 알세스트호에는 외교관 외에도 군의관 맥레오드(J.M’Leod)와 박물학자, 군목사, 화가 하벌(Havell) 등이 승선했다.
천진에서 북경으로 진입한 사절단이 중국 내륙 운하 길을 거쳐 다음 해 1817년 1월 1일 광동에 도착할 때까지 약 5개월간 시간적 여유가 있자, 이들 함대는 발해만과 서해안 항해에 나섰다.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를 둘러보고 충남 서천 마량진 갈곶에서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는데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 순간이었다.
이후 고군산군도, 진도 등을 거쳐 유구국(琉球國, 지금의 오키나와)을 탐험한 후 영국으로 돌아간 군의관 맥레오드는 1818년 ‘조선해역 및 유구 열도 항해기’를 출판했다. 책 속에는 ‘소청도 주민들’과 ‘조선의 관리와 수행원’의 모습을 그린 작품 두 점이 실렸다. 화가 하벌이 그린 것으로, 조선 사람의 실제 모습을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작품으로 알려진다.
최소 1박 2일의 일정이어야, 소청도 진가 알 수 있어
소청도는 인천에서 서북방으로 210km 거리에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이상 달려야 당도하는 섬으로, 서울 여의도 크기이다.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섬의 인근 바다에서는 예로부터 까나리와 홍어를 많이 잡았다. 소청도를 비롯한 서해5도 지역은 철새의 70%가 지나가는데 철새의 생태와 이동 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2019년 ‘국가철새연구센터’(환경부 산하)가 세워졌다.
흔히 국토 최북단을 여행하면서 소청도는 슬쩍 들러가는 섬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최소 1박 2일로 섬 구석구석을 둘러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소청도 분바위를 제대로 탐방하려면 반드시 간조 시 방문해야 한다. 만약 만조 시 소청도에 도착했다면 먼저 섬 서쪽의 등대와 노화동마을, 아진포구, 예동마을(김대건 신부 동상) 순으로 트레킹 한 후 다음날 분바위를 가는 게 순서다.
1) 여객선 예약 : 여객선 예약·예매사이트 ‘가보고싶은섬’
- 소청도 탑동항 ‘코리아프라이드호’
2) 소청도 1일 차
08:00 인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 도착 08:30 인천항 출항
11:10 소청도 탑동항 도착 12:00 점심(민박집)
12:30 예동선착장 및 예동마을 13:00 소청도 공소 및 김대건 신부 동상
14:00~17:30 소청도 등대→ 아진포구 → 노화동마을 → 탑동선착장 → 예동마을 트레킹
18:00 저녁 20:00 휴식, 취침
3) 소청도 2일 차
07:30 아침 식사
08:30 예동마을 → 분바위 지질공원 안내소로 이동
09:10~10:20 분바위 탐방(전문해설사 동행 무료)
10:20~12:00 분바위 지질공원 → 국가철새연구센터 → 예동마을 트레킹
12:30 점심 14:10 소청도 출발 17:30 인천항 도착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