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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애 Aug 28. 2022

뷰파인더 속 세상 - 비비안 마이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15만 장의 필름

뉴욕, 1954년©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1926~2009)는 미국 뉴욕 출생으로, 유년 시절 어머니를 따라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살았다. 173cm의 큰 키에 챙이 있는 펠트 모자를 쓰고 넉넉한 롱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발볼이 넓고 편한 단화를 신고 행군하듯 걷는 그녀를 거리의 아이들은 ‘군화’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평생 유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면서도 15만 장의 필름을 수집한 그녀는 2007년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에 의해 발견되었다.

 

우연히 발견된 마이어의 사진은 정식으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당대의 거장들과 비견될 만큼 가치 있는 작품이었다. 방대한 양의 사진 자료는 전문가 못지않았으며, 그녀가 찍은 거리의 기록은 당시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무명을 선택한 그녀는 생전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이어의 사생활은 비밀에 싸여져 많은 부분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스터리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전시는 8월 4일(목)부터 11월 13일(일)까지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진행된다. 그녀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 및 영상,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그녀의 소장품인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와 모자가 함께 전시된다. 마지막으로 이모할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자금으로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최초 공개된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헬렌 레빗’과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랜드’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리 사진가(street photographer)들의 작품과 견줄 만하다는 찬사를 받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그만큼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복잡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구도로 담는 한편, 유명인들의 모습을 거리에서 찍기도 했으며 아폴로 우주인 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는 거리를 걷는 그녀의 감응에 달려있었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을 뽑으라고 한다면 “생동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있던 그녀는 거리에서도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는데, 그것이 사진 속 거리를 무대화했다. 유명인을 담을 법한 정사각형 화면에 자리한 피사체는 사실 거리를 걷는 익명의 대중으로,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이렇듯 그녀는 거리의 다양한 영혼들에게 배역을 부여하기 위해 일상을 포착하고 거리를 기록했다.

 

장소 미상, 날짜 미상©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NY


“뭔가 잘못됐겠죠.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렇게 근사한데… 정말 궁금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고 왜 보여주지 않았는지.”    
- 메리 앨런 마크(사진가) –

 

전시를 관람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렇게 방대한 양의 사진 자료를 여태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보관만 했다는 거다. 15만 장의 필름이면, 눈 대신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뷰파인더로 초점을 맞춰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저장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지어 그녀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셀프-포트레이트(Self-portrait)는 세련된 구도를 보여주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왜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은 걸까.



그녀는 셀프-포트레이트에서 자신을 숨기듯 표현했다. 거리의 쇼윈도나 거울에 살짝 비친 모습 혹은 그림자로 그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거리의 이들을 파편적으로 담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미학에 따라 자신의 상을 일부 감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비안 마이어’는 '세상 속의 나'보다 '뷰파인더 속의 나'를 더 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조차 '기록'의 대상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혹 얼굴이 보이는 사진에서 그녀의 눈썹은 기울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보다 위를 향했으며 내려간 입꼬리는 조각한 듯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활달한 포즈도 없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모습은 경직되어 보였다. 거리의 다양한 표정들과 상반된 그녀의 인상은 꼭 지금 이 순간,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과 같았다.

 

“나는 가끔… 세상이 내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세상은 내게 큰 공연이다.”라는 말도 그녀가 그렇게 많은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주는 듯하다. 전시 입구에서 봤던 Vivian Maier 알파벳 모형이 빛을 받아 그림자로 글자를 드러낸 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숙여 카메라 뷰파인더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뽑자면 포토존이라 할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의 시선을 따라 거울에 비친 자시 모습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카메라의 구조를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없는 감상자는 독일제 2안 렌즈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어떻게 생긴 줄 모른다. 마이어가 사진을 찍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고 자세히 서술한들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지, 상이 어떻게 맺히는지 알 수 없다. 설명을 읽을수록 답답할 즈음, 롤라이플렉스의 뷰파인더를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양쪽에 동그란 거울을 두고 가운데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러한 구도 역시 비비안 마이어가 자신의 셀피를 찍기 위해 구성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사진 속 공간에 자리한 롤라이플렉스는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저 또한 그녀를 발견했고,
저는 그녀의 작품들을 제가 영화를 위해서 참고자료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그 이미지에서 그녀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영화 <캐롤> 감독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

 

15만 장의 사진과 그에 대한 열정, 비밀스러운 삶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과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숨겨온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이 공개된 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세계 각지에서 그녀에 대한 서적이 출판되고 전시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 부호로 남아있는 그녀의 삶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연한 발견에 의해 데뷔한 미스터리한 사진가, 사진으로만 남아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비비안 마이어의 기록을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통해 만나보는 건 어떨까. 그녀의 셀피처럼 포토존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연스럽게 휴대폰에 담아보는 것도 좋겠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 문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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