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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24. 2024

마음껏 울컥하는 사람, 사랑

[오늘도 나이쓰] 47

아내는 웃깁니다. 웃긴 이야기를 할 때면 정말 웃깁니다. 웃긴 이야기를 자기가 먼저 웃어 삼키느라 하나도 못 알아듣게 혼자 웃습니다. 눈물까지 주르륵 흘립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내 배가 딴딴해진 게 느껴집니다. 그러고는 꼭 묻습니다. 연핑크색으로 변한 코를 앞세워 찡긋거리면서. '자기야, 웃기지? 그렇지? 웃기지?'.


그런데 이 모습 따님한테서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아빠, 아빠' 하고 부르기만 하고는 이내 아내와 꼭 같아집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 잘 들으려고 입술에 힘을 주면서 '뭔데, 뭐?' 하면 자그마한 배를 움켜쥐고 몸을 뒤척이듯 접었다 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고 급기야 주져 앉기까지 하면서.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일주일간 다시 어머님이 입원하셨습니다. 폐암 수술 이후 감기를 조심하셔야 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건강하실 때를 생각하셔서 동네 의원만 다니시다 폐렴이 되었다네요. 종합 병원에 의사가 없어 2차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시고 매일 3개의 링거를 맞으시다 엊그제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하얀 백발의 자그마한 어머님은 5인 병실에서 나서시면서 남아 계신 한 분 한 분의 환자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그저, 얼른 나아서 퇴원하세요. 건강하세요. 잘 사세요.'. 하시면서 휠체어에 앉아 욕실에서 막 나오는 분까지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병실을 돌아서 뜨끈한 습기 가득한 복도로 나서시는데 백발에 이어진 새하얀 볼이 진한 핑크색으로 변한 게 내려다 보입니다. 코 끝이 아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게 보입니다. 눈물이 주렁주렁 매달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하얀 빰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고생했어. 사람. 참. 여보, 나 집 깨끗하게 청소해 놨지? 봐줘봐' 하시면서 아가 같은 눈동자로 칭찬받고 싶어 하시는 여든셋의 남편을. 혼자 일주일을 밥 해 먹고 우두커니 마음 안 좋게 기다렸을 장인어른 팔을 매만지시면서 다시 한번 소리 없이 내내 눈물을 흘립니다. 둘째 딸은 벌써 붉어진 뺨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가 버립니다. 

 

퇴근길 막히지 않게 얼른 다시 집으로 가라고 등 떠미는 두 분덕에 채 두어 시간도 머무르지 못하고 집을 다시 나섰습니다. 위아래로 고무줄처럼 출렁거리는 장맛비가 오늘은 부모님 댁 지붕 위에만 걸쳐 있는 듯 억수같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빗소리가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마음을 씻어내주는 듯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어머님이 하얀 봉투를 핸드백에 슬쩍 집어넣다 아내한테 들킵니다. 그러면서 둘은 한참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결국 받아 들고 옆자리에 탄 아내는 또 한참을 흐느끼면서 웁니다. '통장에 팔십만 원 밖에 없으시면서 무슨 용돈을, 용돈을 주시냐고. 그 고생, 고생하시면서.' 병원에서 나서면서 ATM에서 돈을 찾으시는 어머님을 옆에서 도와드리다 통장을 들여다봤나 봅니다. 


아내의 눈물은 어머님을 꼭 닮았습니다. 자주 울컥하고, 울컥하면 몇 초 지나지 않아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는 게. 마치 몸의 70퍼센트가 물이 아니라 눈물인 것처럼. 그런데 이 눈물. 열아홉 따님한테서도 그대로, 꼭 그렇게 들어차고 흘러나오는 게 너무나 꼭 같습니다. 


집 앞 사거리에 거의 다 오자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어 버린 폭우가 다시 잦아들었습니다. 그 모퉁이에 가끔 들리는 국화빵 어르신 수레가 밧줄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요즘에는 옥수수를 쪄서 파십니다. 2개 오천 원으로 받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불규칙하게 꼭 그렇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신 게 분명합니다.  


그 사거리에서 직진해 좌회선 하면 우리 집 앞 횡단보도입니다. 그 끝에 위치한 미용실. 그 미용실 사장님 어머님은 가을, 겨우내 딸 가게 앞에서 붕어빵을 파십니다. 팥으로 빵빵해진 바삭한 붕어빵을. 그 집도 요즘에는 옥수수를 쪄서 팝니다. 인도에 수북이 벗겨낸 옥수수 껍질을 쌓아 놓고요. 


올 들어 처음으로 붕어빵집에서 옥수수를 한 봉지 샀습니다. 3개 오천 원이더군요. 그 옥수수를 한 입 물고 오물거리면서 따님이 그럽니다. '아빠, 이 옥수수 정말 맛있어. 쫀득하고 달달하고. 국화빵 할아버지네 꺼?'. 그래서 그냥 국화빵 할아버지 수레가 묶여 있었고, 지나오다 앞 미용실에서 사 왔다고 했습니다. 


그 말만 했는데 쫀득한 옥수수 알갱이를 터져라 입속으로 넣던 따님눈에 어김없이 눈물이 맺혀 올랐습니다. 눈물이 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듯 음~ 하면서 숨을 죽였지만 코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럽니다. '이 옥수수가 너무 맛있는데, 오천 원에.... 국화빵 할아버지 불쌍해'. 


유난히 손님이 없는 가게, 노점상, 폐지 줍는 어른들을 보면서 혼자 울컥, 울컥하는 열아홉입니다. 분명 할머니한테서, 엄마한테서 그렇게 어릴 때부터 울컥하는 것을 물려받았을 겁니다. 아마 마음속 여기저기에 여러 개의 눈물주머니를 달고 있을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모태 눈물주머니.  


따님의 옥수수 눈물 때문에 십구 년 전 조리원을 나서자마자 큰 병원 이곳저곳으로 안고뛰어다니면서 몰래몰래 흘렸던 수많은 눈물이 떠오릅니다. 눈도 못 뜨고 숨을 몰아 쉬는 아가를 내려다보면서 검사조차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세상 모든 신들에게 딱 한 가지만 빌었었습니다. 


그런 따님이, 모태 눈물주머니 가득한 따님이 이제는 눈물이 많아 걱정하는 저를 걱정합니다. 눈물이 많으면 마음이 약한 거라고 생각해 버리는 저를 걱정합니다. 혼자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저를 걱정합니다. 한 달 뒤에 자기마저 멀리멀리 떠나면 지낼 있을까 저를 오히려 걱정합니다. 


저도 제가 걱정이긴 합니다. 어머님처럼, 아내처럼, 따님처럼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줄도 모르고, 자신있게 눈물 흘릴줄도 모르고, 그 눈물로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속으로만 담아 놓고, 울컥하면 당황 먼저 하는 저를. 눈물도, 사랑도 흘려봐야, 표현해봐야 제때, 제대로 잘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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