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ug 27. 2024

#그냥 박수를 보내 봐

[오늘도 나이쓰] 52

새벽에 가뿐하려면 저녁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굿모닝~하고 가벼우면서도 쾌활하게 던질 수 있는 아침은 전 날 굿나잇~ 을 했어야 진심일 수 있죠. 당연하지만 의외로 어렵습니다. 새벽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저녁에, 밤에 잠자리에 잘 드는 게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 충전기를 찾느라 모여듭니다. 터미널에서, 사무실에서, 쇼핑몰에서, 강의실에서, 침대에서, 식탁에서마저도. 전기 자동차가 많이 생기면서 충전은 더욱 중요해졌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어찌 보면 산책길에 떨어져 밟히고 터져 버린 진 한 알의 버찌에서 꿀물을 빨아내려 주변에 모여든 개미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런데 꿀물 좋죠.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그 꿀한 방울에 자주, 젖는 생활 습관을 가졌다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바로 잠말입니다. 생각을 하고,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온전히 타인으로부터 벗어나 충전할 수 있는 생명 연장 수단이죠.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이들이 젖어 있는 두 번째 꿀물 한 방울은 유머입니다. 특히,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 즉 성취 경험이 높은 사람일수록 유머를 자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유쾌한 이들이 살아 있는 증거죠.


그들은 스스로 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간격을 조절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귀가 얇지도 않죠.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좋은 습관도 지니고 있고요. 말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많이 읽습니다. 메모하는 습관을 셔츠 위에 카디건을 걸치듯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꾸 그 의미와 뉘앙스를 가지고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 단어가 자기 것이 되고 적절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기 문장이 됩니다. 그런 과정 없이 처음부터 어휘력이 뛰어나고,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고, 표현에 있어 감동을 줄 수는 없겠죠.           


'고급진' 아재들은, '배운' 아재들은 이런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가진 언어유희적 유머 감각은 단순한 '아재 개그'와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단어 하나로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웃음 소재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애매한 엄숙주의를 지양하거든요.


그런데 아재개그라고 표현할 때의 아재는 실제는 절대적인 나이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열몇 살의 마음속에도 그런 개그 본능이 충분히 녹여져 있는 걸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걸 보면. 결국,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웃기면서, 웃으면서 가까워지고 친하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0대인 A아재는 가곡 비목을 멋들어지게 시작합니다. '조용히 스쳐간 깊은 계곡~ 아, 아니지. 초연히 쓸고 간이지'. 야채가게 앞에서 또 시작입니다. '이 나물 이름은 뭐야? 시나몬? 오~ 취나물이군'. '참, 어제 우리 같이 갔던 그 카페 이름이 뭐였더라? 나들목?'. 아니다. 아냐, 느림목.          


이제 막 20대가 된 B아재입니다. '얘들아,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이니까. 엄마 혼자 좀 더 푹 쉬게 양심껏 늦게 들어가자~' '잉? 양심껏 아니고 눈치껏 아냐?'. 푸드코트 스테이크집 앞에서 그럽니다. '얘들아? 저거 부챗살 토시살 어떤 게 더 맛있을까? 부챗살? 아 저거 두 가지? 용량  차이구나. 용량 맞지? 용량!'. '아니야, 중량이겠지'.           


두 번째 스무 살을 넘긴 앞집 C아재. '여보, 이 렌탈콩 정말 맛있다. 나 콩 싫어하는데 이 건 좋은데?', '어 그래? 무슨 콩? 아, 렌틸콩'. '저기, 저기. 프랑스 사람들이 라면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아는 사람? 몰라? 아무도 몰라? 이거 너희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데. 불었으니까'           


주차장에서 만난 부녀의 대화. '아빠, 오늘 패션이 서부 유럽에서 온 것 같아! 뭐? 섬유 유연제 같다고?' '아 다 왔다. 여기 한방대! 잉? 방통대겠지!' '아, 공항을 통과하는 데 앞에 있는 사람 가방검열이 유독 심하더라고. 그래서 뒤에서 쫄았어. 검열? 혹시 검역 아니니?'          


다시 우리 집 10대. (아귀찜 먹다가 하얀 바지에 빨간 콩나물 덩어리를 떨어뜨린 아재가 외친다)'에이전씨, 에이전씨.. 저기, 저기, 나 물티슈 좀, 휴지 좀'. '임어전씨 아니니?'. '나 머리 잘라야 하는데, 그때 거기 메드 종 예약해야겠어' '그래, 그래. 메종 드에 예약해야 할걸!'          


이제 막 오십 대가 될 D아재. '와우~ 사진 멋지다. 흑백 필터를 사용하니까, 아이유 같아. 잉? 그런데 컬러로 그대로 찍으니,. 아휴' ' 아 봤어, 봤어. 그 영화 <귀향>. 그거 시한부 영화지? 잉? 위안부겠지!'          


'아재개그'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재'들은 어느 나이에나 있습니다. 그 아재들은 절대 주눅 들지 않죠. 자신의 무지를, 난청을 속으로 삭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면서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머가 답이다, 웃겨야 산다, 웃어야 산다, 그 역할을 내가 하리라'.

  

(나이에 관계없이) 아재개그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지금 자신이 있는 오늘에, 옆에 있는 사람한테 집중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유머 감각 없이 고집불통의 나이 먹은 진짜 아저씨들은 개그를 치지 않죠. 아니, 오히려 혐오합니다. 왜요? 분위기를, 사람을 읽어낼 눈이, 타이밍을 잡는 센스가, 어휘가 부족하니까요.    


아재개그를 던진다는 건 꽤나 정서적, 신체적 상태가 괜찮다는 신호입니다. 팍팍해도 웃음 한 덩어리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멋진 의지력을 가진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미소만 지어보세요. 소리 내어 같이 웃어보세요. 손뼉까지 치면서 호응하면,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많은 것들을 헌신하려 들 겁니다.           


아재개그는 그 아재의 삶이 괜찮다는 신호니까 그냥 안심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헛웃음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다음에는 손뼉을 치면서, 허리를 마음껏 제치면서, 소리 내고 웃어주면 됩니다. 박수로 혈액 순환이 되고, 허리까지 움직여서 자연스레 스트레칭도 되는 온몸 운동이니까요.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그저 옅은 미소만으로도 맞장구만 쳐주어도 됩니다. 그러면서 그 아재의 표정을 봐 보세요. 스스로 흐뭇해하는 표정을. 그 속에 나를 위한 애씀이, 친절함이, 격려가, 다짐이, 괜찮다는 위로가 다 담겨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행복이 스스로 찾아와 주지 않는다고 믿을 실천하는 사람옆에 있는 거니까요! 그게 진짜 꿀같은 충전이니까요!!

이전 22화 #원래 비는 소리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