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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21. 2018

맥시멀한 세 자매 옷장

우리 집은 세 자매다. 나는 그 세 자매의 둘째다. 각각 두 살 터울이라, 옷 입는 취향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순간 우리 셋은 옷을 공유하게 된다. 언니는 대체로 타이트한 파스텔 톤의 옷, 종아리 정도까지 오는 긴치마를 좋아하고 동생은 유행인 찢어진 청바지, 캐주얼하고 단정한 듯 힙한 스타일의 옷을 추구한다. 나는? 무조건 편한 베이지나 아이보리 톤의 상하의에 스트라이프 성애자다. 이러다 보니, 서로의 옷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누군가가 옷을 사면 한 번씩은 입어보고 마음에 드는 옷은 내 마음속의 옷장에 저장한다. 동생도 수능 끝나고 아직 자기만의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는, 언니들 옷 물려 입기 싫은 마음에 난 절대 안 입을 거야, 하던 자존심을 이제는 본인만의 스타일에 언니들 옷을 취향 껏 골라 입는 수준이 되었다.


나 역시, “나만의 옷만 입을 거야.”하는 적도 있었으나 요즘은 입을 옷도 없고 어울리는 옷에 대한 감각이 줄어 입는 옷만 입고, 가끔씩 취향껏 언니와 동생의 옷을 골라 입는다. 이 말을 길게 풀어놓은 것은, 오늘 문득 입을 옷을 고르며, 자매들의 데이트 룩을 곁눈질로 지켜보니 언니는 동생 옷을, 동생은 내 옷을, 나는 동생 옷을 입은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들 몰랐을 거다. 마치 분리수거의 순환 삼각형 모양 마냥 이렇게 옷을 돌려 입는 것이 웃기고 재밌다. (아, 물론 하체 사이즈는 다 달라서 상의만 공유 중이다.) 내가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못 되는 이유가, 이렇게 복작복작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살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짐짓 생각해본다.


1년 반 전 이사를 오고 나서 세 자매의 옷을 감당하지 못해 옷장이 터지려고 하는 사태가 있었다. 물론 각자의 옷이 아주 많지 않음에도 모아 놓으니 부족한 수납공간을 당해내지 못한 거다. 벽장과 창고, 행거에 서랍이 달린 꼴의 옷장, 그리고 스물한 살 용돈을 벌어 장만한 전신 거울이 달린 옷장이 우리 셋 옷장의 전부다. 다 합쳐 봐야 안방의 한벽면을 채우고 있는 장롱 세트 크기는 되려나 싶은 정도다. 하루는 빈 공간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옷을 대거 정리하면서, 언니의 옷 몇 개를 같이 정리했다. 도저히 안 입을 것 같은(심지어 입은 걸 본 적도 없는) 내 기준 별로라는 옷이었고, 오래 처박혀 있던 줄로만 알고 내 옷과 함께 기증해버렸다. 그런데 그 옷이 언니의 신상 옷이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다음부터는 물건을 건들기만 해도 촉수를 세우는 탓에 “이제 가족 물건 절대로 안 건든다.” 거듭 말해야 했다.


신발과 가방도 돌려 신는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운동화, 러닝화, 등산화. 운동용 신발만 몇 개를 가지고 있는 나와 달리 언니는 로퍼, 샌들, 슬리퍼처럼 생긴 로퍼, 슬리퍼처럼 생긴 샌들, 대체 여름 용 신발만 몇 개를 가지고 있다. 신발을 새로 안 사려고 하는 탓에, 나는 운동화 3개가 신발의 전부다. 여름 용 샌들은 사기도 전에 철이 되면 언니가 인터넷 배송으로 샌들을 4~5개씩 시켜 집에 구비해 놓는 덕에 언니와 엄마, 나는 큰 고민 없이 골라 신는다. 내 기준으로 언니는 약간의 맥시멀리스트 성향, 동생은 중간, 나는 미니멀리스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며 서로를 보완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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