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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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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9. 2018

나의 대학 5년 이야기

어느 대학생의 포트폴리오

나는 서울 4년제 대학생으로 곧 졸업을 앞뒀다.

이 글이 자극, 공감,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든 것을 탈탈 털어 글을 쓴다.


2013 : 코묻은 새내기, 학교에서의 다양한 활동


대학교 개강도 하기 전, 코묻은 새내기로 새내기 문예 연극단(이하 새문단)에 들어가서 새터에서 주인공으로 연극을 했다. 명예도 권력도 욕심없는, 공부를 좋아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산골이' 역을 맡았다. 당시 수학교육과 남자애가 '강남이'역을 했는데, 그 친구도 역할과 어울렸다. 1학기땐 하도 설치고 다녀서 부과대를 시켜준 덕분에 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다. 총엠티, 매주 과 활동, ‘산타교공’이라고 등산 무리 등 대학생활을 즐겼다. 우리 과는 매년 전시회 준비가 대부분 필수다. HRD, 미디어, 교육공학연구 학회 세 개 중에 의무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나는 미디어 학회를 들어갔다. 우리 팀은 다문화 교육 관련한 교육용 게임을 만들었다. 고생한 친구들도 있었는데(=게임개발ㅎ), 나는 교재개발팀으로 수고를 덜 했다.


6월쯤에 연애도 시작하고 모든 게 처음이라 대학 생활이며 연애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것도 설레던 시절. HACS라는 한양대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한 학생들이 모인 모임에서 인재개발부 활동도 하고, 초반에 다양한 과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MT도 갔다! 용돈 벌이로 8개월간 고3 과외를 하며 착실히 돈을 벌었다! 그 친구는 상명대 국어국문학과를 갔다 ㅎ_ㅎ 연락은 안 하지만 매주 주던 비피더스 맛도 항상 같은 거 주던 게 참 생각난다. 고마웠다.

아, 한양 단편 영화제에서 'Ctrl+z'란 작품으로 1등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tMOw95fWLo


2013년 겨울- : 전공 관련 알바와 영어 점수 따기


고3 과외가 고3 학생의 수능으로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부천의 유명한 막걸리집에서 3~4개월 정도 알바했다. 이것도 꿀잼이었다. 맛있는 밥주고, 정신노동만 하던 나라 머리를 안 쓰니깐 좋았다. 내가 과외만 하다가 막걸리집에서 알바한다니깐, 안 어울린다고 놀라던 고등학교 동창도 있었는데,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1학년 때 내가 막걸리 동동주를 좋아해, 막걸리 향이 좋아 알바에 지원했다. 진심. 화장품 좋아하는 애들이 올리브영 알바를 지원하는 느낌으로. 근데 지상 1층~지하 2층까지 있던 곳이라 챙길 것도 많고, 파전 판 이런게 무겁기도 해서 남자애들도 힘들다고 나가는 곳인데, 나는 첫 알바라 신나게 3~4달을 다녔다. 알바생들이 20살 막내라고, 가족같이 챙겨줘서 기억에 남는다.


전공 관련 알바로 롯데 인재개발원 이러닝 검수 알바를 했었다. 이 때 강의만 170개 정도 했다. 시급이 무지 세서 돈이 꽤 됐다. 알바 같이 한 학과 사람들 중엔 가장 독하게, 주시는 족족 받아서 했다. "가능하십니까?" 하면 "네! 가능합니다." 하는 식으로. 친구들이 내가 검수한 강의 개수를 듣고 놀랄 정도로 일쟁이였다. 난 돈 버는 것, 일 하는 것, 그 돈으로 사람 만나고 경험 하는 것 다 좋아했다.

2014 : 소식지 동아리 부장과 학과의 앞서가는 일꾼이었던 시절


14년도. 학과의 일손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카톡을 보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집행부가 곧 학생회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학생회에 들었다. 홍보부랑 사물함 관리를 맡았다. 주점 준비도 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학생회 애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가장 학과 사람들이랑 많이 친했던 시기인듯!

2학년이 마지막 학회 활동이었다. 3학년 때는 전시회가 안 열렸어서. 이 때는 HRD학회에 들었다. 전시회 작품 주제는 스크래치(SCRATCH)로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래밍 가르쳐주는 수업을 설계했다.


1학기 때 그리아미라는 미술동아리에서도 잠깐, 한양대 캘리그라피 소모임도 2년간 열심히 활동했다.

학과에서 소식지 동아리도 했다. 소식지면 과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거니깐, 과 소식은 내가 잡고 있었다. 사람들과 인터뷰하려면 과 사람들한테는 당연히 필수로 연락해야 해서. 카톡도 많이 하고. 재밌었다. 13년도부터 활동하던 애가 부장을 하는 게 맞는데, 신입인 내가 덜컥 부장을 맡았다. 나는 리더십 유형이 카리스마적인 리더십보다는 섬김의 리더십, 배려의 리더십 스타일. 소식지 기획팀 / 디자인팀으로 역할 분배해주고, 매달 회의 진행하고, 회계도 하고 출판도 하고. 행정적인 일을 했다. 소식지 발간하려고 합정에서 출판 업체들 찾아보러 다니고, 용지 재질 이런 거 하나도 모르는데, 출판 업체에, 친구에게 물어가며 해 나갔다.


디토 소식지

-2014년 여름- STEAM 교육기부단-부산여행, 전공을 살린 알바 경험
7월 초 경남 양산으로 STEAM 교육기부단을 갔다. 부산 여행도 하고 왔다. 과 동기 4명과 초등학생 대상STEAM 교육을 주제로 수업 설계, 진행해주는 교육봉사였다.

7월에 알바 자리를 구하다가, 운 좋게 과에서 모집하는 전공 관련 알바를 할 수 있었다. 이름 하여, 유학컨설팅 교수설계 알바. 89학번인 과 선배와 일하는 기회였다. 말하자면 교수설계자인 선배와 내용전문가(Subject Matter Expert=SME)인 유학컨설턴트 분이 있고, 우리가 알바생인건데. 과 선배님이 가이드라인 주시면 우리가 가이드라인에 맞춰 일을 실질적으로 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씩 회의 참여하며 피드백받고 단계별 점검하고, 일은 재택으로 했는데 개인적으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유학컨설팅 자체도 관심이 있었고 교수설계도 일이 잘 맞아서, 나와 궁합이 맞았다. 재택 알바란 것도 딱 내가 효율성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어, 그 정도의 일이 딱 좋다. 설계안이랑 교안, 교재를 나와 동기 친구가 같이 만들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유학컨설턴트가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비싼 유학컨설팅 전에 4박 5일짜리 시범형 수업을 하고 싶어 의뢰를 했고, 우리가 설계안, 강의안, 교재 등을 만들어 준 것.


그 알바 전에 카카오 계열 어플 사업에도 알바생으로 참여했다. 레스토랑이나 가게에 메뉴 주문하고 리뷰도 볼 수 있고, 결제에 쿠폰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는 배달의 민족+카카오맵+카카오스토리 등을 합친 느낌의 어플 스토리보드 작성을 하는 일이었다. 비록 고객용, 사업자용까지 두 버전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는데도 그 어플이 정식 앱 출시는 안 되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어플 설계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2014년도 2학기- : 25학점, 2.06의 결과를 맞이하다.
8월 말에 끝나기로 했던 카카오 어플 알바가 9월 말에 끝나게 된다. 당시 알바 끝나는 시점이 늦춰진 상황에서 개강을 맞이해, 알바생인지 학생인지 모르는 신분이 되었다. 남자친구 군대 갔으니 열심히 살아야지! 25학점을 신청한 탓에, 교육봉사의 A+ 2학점 빼고 나머지 수업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학점이 2.06. 전공 수업 F에 교양 D+에 난리도 아니었다. 아 물론, 그 이후로는 4.0 넘어도 누적평점이 잘 안 오른다. 요즘엔 학점보다 활동이나 그 사람의 경력, 능력 등을 본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본다.


2015 :  100권의 책을 읽다, 6개국의 유럽여행
이 때의 여파로 그 다음 학기는 학교를 쉰다. 그간 2년간 학과 일을 엄청 열심히 하며 과에 아주 폭 빠져있었다. 학교를 안 다니니 딱히 할게 정말 없더라. 돌이켜 생각해보니 연애, 독서, 알바, 여행이었다.


독서는 이 해에 100권 읽기 목표로, 100권의 책을 읽었다. 고전같이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지만, 소설 비소설 등으로 100권을 채웠다. 대학생활 중에 한 독서가 이 기간에 몰려있다. 유유자적 도서관만 다니던 3월 말, 막학기를 남겨둔 언니가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왜? 언니만 가? 나도 갈래." "너 모아둔 돈은 있어?" "나 모아 둔 돈 170만원 있어."


처음엔 탐탁치 않아했지만, 나는 길을 잘 찾고 언니는 길치라서, "유럽 가서 길이라도 잘 찾겠네." 하며 동행으로 껴주었다. 목표와 활기가 생겨 학원 알바를 구해서, 돈을 모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6개국을 갔다. 로마면 로마 런던이면 런던 안 가본 데 없이 돌았다

  
유럽의 다양한 먹거리.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복학을 했다. 25학점 때 느꼈던 바가 있어, 17학점을 신청하고 처음으로 용돈을 받고 다녔다. 용돈 받는 게 이런 느낌이라니. 행복했다. 대학생활의 2파트랄까. 동기 5명밖에 없는데 딱 그 친구들하고만 다녀 오히려 돈독해졌다. 일주일 중 이틀은 오후 수업인데다 친구들과 같이 듣는 수업으로 점심을 안 먹으니 대신 남는 돈으로 저녁을 맛있는 거 사먹었다. 알바도 안 하니, 딱 학교 수업 듣고, 약속 없거나 수업 일찍 끝나면 중앙선 길 따라 중랑천도 자주 걷고. 취미로 캘리그라피도 했다. 노래 들으며 감성에 맞춰 작품 만들고. 감성적이고 여유로웠다.



이 때는 동기언니와 집에서 지하철로 가까운 한국 표준협회에서 단기 알바를 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잠깐 들러 사무 알바를 해주고 시급으로 돈을 받았다. 돈은 가벼운 용돈 정도였지만, 언니랑 일 끝나고 노는 것도 재밌었고, 그 회사에서 잘 챙겨줬다. 우리는 단기 알바생일 뿐인데, 딱 "우리 인턴들~" 이런 느낌으로 챙겨줬다. 2주 일했을 뿐인데 밥도 사주시고 그릇 세트까지 챙겨주셔서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이상적인 회사와 팀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던 곳. 학교도 다시 안정적으로 다니기 시작하고,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다.

2015 겨울-캄보디아 해외봉사



2016 : 중도휴학, 2년 뒤의 자기점검
제대로 말하자면 3학년 2학기인데, 월반복학을 해서 4학년 1학기인 2016년도 1학기. 동기언니도 4학년이고, 언니가 우리 과 단일이면 전공심화 채우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지난 학기에서 자신감을 얻어 욕심을 부렸다. 3, 4학년 전공 총 21학점 신청. 수업 7개다. 여유로움을 누리던 내가.

하나를 들으면 열심히 하는 나라, 팀플 3개가 겹쳤는데 와. 다 열심히 하다가 결국 다 마치고 중도 휴학. 건강도 악화되었다. 청강이라도 부탁드릴까 하다가, 민망해서 말았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왜 그런 결론이 내려졌을까? 스트레스 유발 요인을 '일정 관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팀프로젝트에서 N분의 1이 아니라 내 몫보다 더 많은 역할을 맡게 될 경우에 그것에 대해 단호히 거절하는 스킬을 배우거나 모든 걸 잘할 필요는 없다. 혹은 회의가 길어졌을 때, 다음 팀플을 준비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8시쯤 나왔다 하더라도, 이미 2시간동안 아이디어를 내고 나의 부분인 줄거리 요약 등을 했으니, 팀원들이 나를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하긴, 자기의 사정을 말하면서 팀에 양해를 구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래도 덕분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요리 실력도 늘고, 제주도 전라도 등 국내 여행도 다니고. 일상의 행복함을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날 그 날 충실했던 나날이라 감사하다.

-2016년 여름- : 미래를 위한 고민과 차근차근 준비하다
여름방학 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못 해봤던, 대학생활의 가장 큰 꿈이었던 '외국 나가기(교환학생)'를 도전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외국 나갔다 온 친구가,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꼭 하라고 말해준 덕에 용기를 얻었다! 이 지면을 빌어 나에게 항상 자신감을 북돋아줘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영어 잘한다고, 항상 노력하는, 배우려고 하는 사람으로 좋게 봐준다. 그 때 결심하고, 2014년도 2학기 때 산 기관토플 문제집을 꺼내 공부하기 시작한다. 미국 쪽으로 가려고 토플을 보려다, 미국 생활비며, 토플 응시료가 너무 멀게만 느껴져, 맘 편한 유럽으로 돌렸다. 기관토플은 607점! 550점 이상이면 지원 가능해서, 안정권 점수였다.

-2016년 2학기- : 13학점, 삼성드림클래스에서의 영어 강사, 그리고 아름다운가게에서의 대외활동!
다시 복학한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 마음을 굳게 먹고 15학점을 신청한다. 아 그런데, 대학 졸업 전에 대외활동 하나는 해봐야하지 않겠나. 처음 신청한 게 삼성 드림클래스. 불합격이 떠서, 그래 그렇지. 하고 알아본 게 아름다운가게 나눔교육서포터즈. 나중에 둘 다 합격한 탓에, 고민 끝에 둘 다 하기로 결정. 월, 목에는 수업 끝나고, 집 근처 40분 거리의 중학교로 드림클래스를 하러 갔다.

-2016년 겨울- : HRD 기업에서의 철없는 인턴 시절, 교환학생을 지원하다
4학년인데 인턴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겨울방학 때 2달 단기로 하는 한양 단기 인턴(Hy-wep)을 지원했다. 이름을 들어본 '인키움'이라는 교육회사. 내가 희망하는 HRD 전문 교육 컨설팅 기업에, 언니가 중소기업 홍보 때 방문했던 기업이었다. 기업 소개도 마음에 들었다. 딱, "한양대에서 최초로 최저시급 보장!" 정책이 바뀌어. 그 전에는 기업지원금이 2달 80만원밖에 안 주던 것을, 우리 때는 최저시급을 모두 보장받았다. 이 당시 독립심이 매우 강해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고, 주변에 거의 도움을 요청 안 했다.


인턴을 하면서 1월쯤에 교환학생도 지원했다. 인턴 생활은 배운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한라그룹 회의 촉진 기법 강의안 PPT 작성, 번역 등 각종 사무 작업을 했다. 처음으로 9 to 6의 직장인 루틴을 경험하며 직장인은 퇴근하고 무얼 해야 하지 여가 시간에 관한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물론 인턴의 칼퇴로 가능한 고민이었지만. 첫 달에는 요가를 다니다가 그 달 말 지금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왔다. 통근 시간이 1시간 40분으로 급 는 덕에 여가에 대한 사치스러운 고민은 자연스레 멈췄다. 일상에 변주를 주고자, 집 오는 길에 뚝섬 강변을 보기도 하고, 집 근처 중고서점을 들르기도 했다.

-2017년 1학기- : 15학점(feat.공고에서의 교생)
드림클래스, 인턴 등의 활동을 연달아 해서 역시 휴학을 하고 싶었지만.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휴학하고 싶다는 마음. 그렇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필수교직과목 및 3학년 수업을 챙겨 듣는다. 아, 근데 또 다중전공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이 때 교생도 나갔다.


내가 너무 조용히 나갔다가 들어와서, 주변에서는 교생한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양공고에서 사회과목으로 잘 마쳤습니다!


-2017년 여름- : 잠시 쉼표, 다가올 미래를 위한 준비
드디어 쉼의 기간이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체코 갈 준비만 하며 논다. 이 때는 처음으로 수영을 제대로 배웠다. 집 근처 체육센터에서 자유형이랑 배영을 배웠다. 영어 회화스터디를 하면서 영어의 감을 되찾았다.


-2017년 2학기- : 체코 교환학생 라이프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11개국 여행에 다녀오고,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것도 모두 만족스러웠던. 전공도 16학점이나 챙겨오고 한 학기동안 얻은 게 많다. 요리 맨날 해먹는 것만 조금 어렵고, 나머지는 다 좋았다! 돈 아껴서 여행 가는 재미도 쏠쏠했고, 교환학생들 행사 참여하는 것도 그저 외국 여행과는 다른 재미를 주었다.




-근황과 꿈 : 나의 책, 까미노 데 산티아고 트레킹.

교환학생 하면서 브라질, 콜롬비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벨기에에서는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살사 클럽도 가고, 기억 남는 추억이 많다. 크라쿠프에서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완주하신 분의 생생한 이야기에, 나도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목표로 겨울에 한창 트레킹을 했다. 157km 서울 둘레길 완주 목표로. 처음엔 6km, 9.9km, 12.6km 늘려가며 트레킹을 했다. 그런 꿈을 향한 노력들은 나를 기쁘게 한다. 돈도 안 벌고 있으니. 다만, 체력, 정신력을 쌓다보면 나도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하고, 책도 출간하고, 강연을 하는 날이 올 거다. 남미 여행도 가고, 살사 클럽도 다시 가고, 아프리카 호주 미국 캐나다 북유럽 아이슬란드 동유럽 그리스 터키 등 일주도 하고. 미니멀 유럽여행기(가제)'라는 미니멀라이프, 유럽여행, 교환학생 이야기를 막학기를 다니며 원고를 완성했다. 작가로 돈 벌고 여행다니는 게 꿈이다.


-정말 최근의 근황- : 한양대 Hi-Buddy.
막학기 Hi-Buddy 1기로 활동했다. 교환학생 시절 버디에게 너무 큰 도움들을 많이 받아 마음의 빚을 갚고자 신청했다. 사실 너무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생활동안 나를 스쳐지나갔다. 사람 잘 못챙기는 걸로는 거의 손에 꼽히는 내가 요즘엔 사람을 잘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항상 챙김받던 내가, 이제 챙겨주는 걸 조금 알게 됐다. 남은 인연이라도 잘 챙기고 싶다! 나 스스로 인정의 욕구가 컸다면 자기 PR을 잘 하고 살았을텐데, 인정의 욕구보다 친밀감의 욕구가 커 잘 한 것 말하는 게 어색했다. 자기 PR이라고는 1도 없었다.


능력이란 것은 기회가 자꾸 생겨야 발전하는 것이다.

자기 PR을 해서 기회를 잡아도 모자랄 판에, 내 능력을 자신감 부족으로 안 드러내면, 나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못 얻는다. 자랑만 하는 사람도 비호감이지만, 자기 PR 못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내 PR을 좀 하면, 다문화 교육 영어로 논문 써서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1등, 사설 모의고사 전국 1등 학생이었다. 지금이 더 중요하지만. 대학생활에서도 25학점의 크리에 방에 누워만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름 노력했던 대학생활이었다.


누가 내게 대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묻노라면, 부딪혀보라. 선배의 조언이 당신의 인생에 큰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을 믿고, 흔들려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라. 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도 했지만, 조울증으로 고생도 했던 나다. 그럼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으니, 한양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꿈도 꾸고 있다. 나의 5년은 이러했다. 당신이 꿈꾸는 대학생활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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