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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녹아내리는 마음

다시 다음 주를 준비할 힘을 얻고

by 내가 지은 세상

이번 주에 남편이 사내 교육 및 시험이 있어 일주일 내내 밤 10시 넘어 퇴근을 했다. 원래 주중 아침 육아는 내 담당, 저녁 육아는 남편 담당이었는데 이번 주는 내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을 해서 아이를 돌봤다.


이번 주에는 나도 회사에서 서비스 배포를 할 일이 있어 조금 바빴다. chat GPT 비슷한 LLM(Large Language Model) 서비스를 기획하며 나는 주로 사용성 관련 과제를 맡는다. 이번에 서비스에 대화 기록을 검색하는 기능이 들어갔고, 드물게 검색팀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 테스트 기간이라 이슈가 나오면 해결하고 혹시 발견 못한 이슈가 있을까 봐 꼼꼼히 살폈다. 겨우겨우 주요 이슈들을 해결하고 사소한 이슈들은 다음 차수에 개선하기로 하고 금요일 오전에 상용 배포를 했다.


그런데 테스트 서버에서는 검색이 잘 되었었는데 상용 서버에 배포 후 대화 기록 대부분이 검색이 안 되는 것이었다..!! 검색팀에서는 백엔드에서 전달한 대화 기록 데이터에 이슈가 있다고 하고, 백엔드에서는 데이터가 잘 적재되어 있다면 문제없을 거라고만 했다. 원인을 파악해 보니 백엔드에서 테스트 서버에는 데이터가 적어 서비스 스펙인 n일치 대화 기록을 모두 검색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상용 서버는 실제 사용자들이 대화한 데이터가 워낙 많다 보니 임의로 일부만 보내고 나머지 데이터는 누락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검색 입장에서는 당연히 테스트 서버와 상용 서버 데이터가 다르니 상용에서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LLM 서비스 입장에서는 그동안 상용 환경에서 따로 검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보니 상용 서버에서 검증을 할 방법이 없었고, 이전처럼 테스트 서버에서 검증 통과 후 상용 서버는 배포 후 모니터링 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랐는데, 그에 따라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이었다. 빠르게 개선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검색팀에서는 심각한 이슈로 판단하고 당장 롤백(이전 버전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줬다. 같이 배포한 다른 서비스들이 엮여있어 롤백을 하지는 못하고 잠시 검색창을 미노출하기로 했다. 테스트 환경에서 상용 서비스 데이터를 임시로 매핑하고 다시 검증 후 다음 차수에 오픈하기로 했다.


팀장님께 현황을 공유드리고 향후 대응 방향을 말씀드리려고 내용을 정리해서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사업부에서 주관하는 중요한 워크샵이 진행 중이고 팀장님도 참석했기 때문에 전화는 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내놓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얼른 상황을 정리하고 유관부서와도 논의를 해야 했기에 메시지에 답이 없는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 답장이 왔다. '배포 연기만 하는 거죠? 사용자에게는 아무 티 안 나는 상황이면, 일정 연기되어도 괜찮아요~~' 한다. 휴우 다행이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이슈 생겨서 놀랐을 텐데! 괜찮아요. 그리고 어제 워크샵 위해서 준비해 주신 자료 보고에서 잘 활용했어요. 아이디어 좋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상용 배포 후 예상 못한 이슈가 생겨 당황하고 정신없었는데, 팀장님의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정말 말 한마디는 힘이 세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게 맞다.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바쁜 한 주를 잘 마무리하고 다시 다음 주를 준비할 힘이 생겼다.


나는 참 남편에게 말이 인색한 편인데... 남편이 퇴근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떠들며 하소연을 해도 육아와 회사일로 지친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면 남편은 "내 얘기에 관심이 없구나"하고 시무룩한 표정과 처진 어깨로 토라진 티를 내곤 했다. 앞으로는 남편에게 응원하고 다독여주는 말들을 더 많~~ 이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남편도 나로 인해 또 한주를 살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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