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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일의 시작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떡을 파는 아주머니가 펼쳐놓은 하얀 백설기 떡에 눈이 갔다.

“얼마예요?”

“천 원”

“아가씨, 하나 줄까?” 아주머니는 검은 봉지를 들었다.

“아, 아니에요.”  


뒤돌아서 걸어오는 길엔 왠지 눈물이 흘렀다. 그땐, 그랬다. 주머니에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난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빨리 직장을 구해야겠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부모님께서 하시던 일이 잘 안되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우리 집. 집 앞쪽에는 잔잔한 호수가 있고 뒤쪽으로는 푸른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던 그 정든 고향집을 버리고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하는 것을 직접 본 언니의 말에 의하면, 새로 이사 간 집에 엄마가 아끼던 가구들이 들어가지 않아서 많은 가구들과 물건들을 버리고 가야만 했다고 한다. 엄마가 하염없이 울었다고...


막막했다. 더 이상 부모님께 대학생이라고 투정 부리며 용돈을 더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한참 작가가 되어 볼까 하고 도서관에서 현역 작가들의 책을 자주 읽던 참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대학영화제에서 시나리오 상도 받았으니,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볼까도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그 분야에 입문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먹고살만한 일정한 돈이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죽도록 열심히 글을 쓴다 해도 작가로 입문이 가능할지도 보장되지 않았다.

 

난 당장 돈이 필요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 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거나 학과장이셨던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것처럼 대학원에 갈 수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다. 빨리 직업을 구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난 내가 좋아하는 ‘책’과 나의 전공 ‘영어’를 살리는 직업을 선택했다.


책을 만드는 직업, 일하면서 영어의 강점도 살릴 기회가 있는 분야... 그리고 나의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직업.


다른 친구들처럼 여유롭게 취업을 준비하고 연봉 및 복지가 더 좋은 회사가 어디인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단시간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경쟁력이 있다고 떠올린 이 분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분야를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구직 사이트를 미친 듯이 뒤져 서류 전형 마감 일자가 얼마 남지 않으면서 이력서를 내기 적절해 보이는 회사를 찾았다. 최대한 빨리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곳... 마침 J사와 D사, G사에서 신입사원을 구하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짜며 밤을 새워 이력서를 썼다. 이력서를 세 회사에 냈고 다행히도 세 곳 모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첫 번째로 갔던 J사는 홍대 쪽에 있었는데 좁은 골목길이 많아서 길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J사는 넓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주택 건물이었다. J사에 들어서자 잠깐 어리둥절해졌다. 방송국처럼 파티션들이 내 키보다 높게 쳐 있고 사무실이 미로처럼 되어 있었다. 면접을 안내해 주시는 분을 따라 긴 복도를 걷다가 직원분들을 몇몇 보았는데, 대부분 50대로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출판사는 이렇게 고경력자들 위주로 이루어져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면접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두 번째로 갔던 대형 출판사 D사에서는 그룹 면접을 했는데, 3명의 여자 면접자가 함께 면접을 보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사급 임원이 면접을 했는데 여성 차별적 발언과 면접자들을 비하하는 멘트를 너무 스스럼없이 해서 너무 놀랐다.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이런 곳은 붙어도 절대 다니지 아야지.’ 생각했다. 세 번째 G사는 노량진의 작은 빌딩에 있었는데,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면접관들도 매우 점잖았고 회사 분위기가 편안하고 좋아 보였다.


한 십여 일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연락이 올까?’하고 매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연락이 오지 않자, '아무래도 떨어진 것인가.' 하고 다시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그러던 중 D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합격이었다. 출근 날짜도 잡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를 속으로 반복했다. 하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면접을 하시던 분의 사고와 인성, 발언을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회사에 다니면 내가 한없이 쭈그러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야겠지. 큰 회사이고 난 지금 당장 일자리가 필요해.'


D사에 출근하기로 결심하고 이틀이 지나자 G사에서 연락이 왔다. 연봉이 비교적 높지만 직원을 전혀 존중해 줄 것 같지 않은 D사와 연봉이 적지만 회사의 분위기가 좋았던 G사. 한참의 고민 끝에 철없는 나는 이성보다 감성을 택했다.


그래, 불편한 곳으로는 가지 말자. 마음이 편안한 곳으로 정하자.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정해졌고 출판사 편집자로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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