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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 만난 사람들, 악연 vs. 인연

저자: 요새 좀... 뜸하네. 다들 잘 있지요? 여기 김포 소식 전해요. 전어 축제 곧 끝난다는 소식이...

편집자 A: 전어... 함 먹어야죠. 잘 계시죠? 우리 날 잡아요~

편집자 B: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봬요. 담주 정도에 날짜 함 잡아 볼까요? 언제쯤 시간 괜찮으신가요?

거래처 사장님: 깜놀~. 흥치 뿡! 나 빼고 어디 단풍구경 갔나 했는데... 아니네. ㅋㅋ




며칠 전 저자 한 분이 연락을 하셨다.

오랜만에 김포 전어 축제에 놀러 가자는 제안이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는 책을 마감해야 하는 주여서 퇴근 시 종종 남은 업무를 집에 가져가서 하곤 했다. 마감이 있는 달은 늘 평소보다 신경이 약간 날카로워진다. 잠시 방심하면 오류가 나고, 작은 오류라 할지라도 한번 인쇄가 돌아가면 회사에는 큰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저자 분의 제안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마치 퇴근 후 추가 근무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김포까지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6시에 칼퇴근을 해서 전어 축제에 도착하면 7시 30분, 한 시간 정도 놀다가 9시에 귀가하면 아무리 집에 빨리 온다고 해도 11시가 넘는다. 갑자기 애 맡길 곳도 없고....


‘못 간다고 이야기를 할까...’


소심한 성격에 망설이기만 하다가 저자 분에게 이번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진행했던 책은 무사히 마감을 했다. 이제 인쇄 시 특별한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기만 하면 된다. 이번 책은 특히나 힘들었다. 자신의 책을 처음으로 내 보는 저자였는데, 저자가 첫 원고를 건네주는 순간부터 거의 매일이다시피 연락을 했다. 게다가 수시로 자신의 책에 새로운 원고를 덧붙이는 데 심지어는 화면 오케이를 하는 마지막 날에도 새로운 원고를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판소에서 밤 1시까지 화면 오케이를 한 후에는 넉 다운되어 바로 집에 가서 쓰러졌다.    


다음 날은 몸은 피곤했지만, 책을 끝냈다는 개운함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동료들과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책을 마감하면 뿌듯하기도 하고 한동안은 야근으로부터 벗어나 마음 편안하게 일상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달랐다. 커피 타임을 끝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저자가 전화를 했다. 보통 이런 때의 전화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이야기인데, 이 저자는 전화를 해서 결과물에 불평을 하고 꼬투리를 잡았다. 이를 악물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참다 참다 저자에게 화를 냈다. 사실 이 저자는 매우 무례한 타입이어서 작업을 하는 내내 자신의 책 외에 다른 책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혹평을 해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무례한 저자의 계속되는 전화에 갑자기 꼭지가 돌아서 퇴근 무렵에는 술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동료와 거나하게 한 잔 했다.   


고된 일 끝에 마시는 소주 한 잔은 늘 나에게 위로를 준다


회사 근처가 집인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혼자 집에 오는 길은 왠지 허탈하고 쓸쓸했다.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카톡이 왔다. 김포 전어 축제에 가자는 저자였다. 그 저자 분은 본인이 생각이 짧았다며 다들 직장인이고 퇴근해서 김포까지 오기는 무리일 테니, 본인이 서울에 오시겠다고 서울에서 보자고 말씀하셨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나 풀자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는 그 연락이 매우 따뜻하게 여겨졌다.


가끔 나를 지치게 하는 무언가에 치여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가 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그냥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때... 그런 때에 그런 나를 오래 두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함께 눈물, 콧물 쏟으며 힘든 일을 함께 한 후배도 있고, 언니처럼 나를 늘 배려해 준 동료도 있으며 눈물, 콧물 쏟게 나에게 일을 시킨 상사도 있다. 또 집필력이 뛰어나고 인덕까지 갖춘 멋진 저자도 있으며, 사람 맛이 물씬 풍기는 거래처 사장님도 있다.


오랜만에 그들을 만났다. 나이는 열 살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섞이고 함께 있으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이 일터에서 만난 이들과 쌓은 추억과 우정의 깊이가 이제 제법 구만리다. 오늘도 그들은 자주 나오지 못하는 나를 반기며 토닥거려 주었다.


늘 챙김을 받으면서도, 나만 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다. 앞으로는 나도 그들에게 조금 더 살가운 연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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